영국의 아쿠아스큐텀, 프랑스의 레노마, 이탈리아의 란체티. 이들 브랜드의 공통점은 토털패션 명품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컨셉은 다르다.엘리자베스 테일러, 험프리 보가트 등 유명 연예인들이 애용해 왔던 150년 전통의 아쿠아스큐텀은 영국 전통의 기품 있는 분위기를 연출하는 패션제품. 반면 레노마는 절제되면서도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갖고 있고 란체티는 화려하면서도 자연스러움을 표현하는 게 특징이다.또 하나의 공통점은 국내에서 팔리는 이들 3가지 브랜드의 넥타이가 한 업체에 의해 생산된다는 점이다.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에 있는 지엠인터내셔날. 지난 27년간 한우물을 판 이 회사는 국내 굴지의 넥타이 생산업체다. 종업원수 140명, 연간 생산능력은 180만장이며 지난해 매출은 165억원에 달했다. 롯데, 신세계, 현대 등 주요 백화점에 입점해 있으며 각 매장에서 넥타이 매출순위 1·2위를 다툰다. 수출액은 전체 매출의 약 10%선이며 주로 대만, 일본 등지로 내보낸다.윤종현 사장(56)은 어떻게 50만원으로 창업해 국내 정상급 넥타이업체를 일궈냈을까. 경남 합천의 두메산골에서 태어난 윤사장의 어릴 적 꿈은 의사였다. 하지만 직장생활을 하면서 꿈은 사업가로 바뀌었다. 섬유원단 공장에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시작한 사업은 넥타이 유통. 그의 첫 사업장은 서울 세검정이었다. 직장생활로 모은 50만원으로 79년 창업했다. 당시 상호는 지엠(GM)사. GM은 젠틀맨(Gentleman)에서 두 글자를 따온 것이다.이 돈을 생산업체에 맡기고 물건을 떼어다 호텔 내 토산품점을 통해 팔았다. 윤사장이 공급하는 넥타이는 관광객, 특히 일본인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이는 일본 관광객들이 손으로 만드는 홀치기 제품을 좋아한다는 것을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 홀치기는 기모노를 만드는 기법. 이 방법으로 만든 제품을 몸에 두르면 총알도 못 뚫는다는 민간신앙이 있어 선호했다. 게다가 한국산 넥타이는 값도 싸 몇 장만 사가면 여행경비를 뽑을 수 있었다.그뒤 직접 생산에 뛰어들었다가 한때 위기를 맞기도 했다. 홀치기 기법의 넥타이를 선호한다는 것을 간파한 한 일본인이 특허등록을 한 것. 이에 따라 대일수출이 어려움을 맞았다. 내수로 눈을 돌린 그는 제일모직을 찾아갔다. 그곳에서 품질을 인정받은 뒤 삼성물산, 트래드클럽, LG패션 등과 거래를 트고 내수시장에 파고들었다. 백화점에도 진출해 이제는 국내 정상급 넥타이업체로 발돋움했다.그가 지엠을 굴지의 업체로 키울 수 있었던 데는 몇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넥타이를 예술작품으로 생각하고 생산에 정성을 기울였다. 윤사장은 “넥타이는 단순한 제품이 아니다”며 “소재와 디자인, 컬러, 감촉, 느낌의 5박자가 살아야 제대로 된 제품이 탄생한다”고 설명했다.이를 위해 그는 중소기업으로선 과감하게 디자인에 투자했다. 지금도 10명이 전적으로 디자인에 매달리고 있다. 이들은 밀라노, 파리, 런던 등지를 다니며 선진 유행을 연구한다. 이 회사가 만드는 넥타이는 아쿠아스큐텀, 레노마, 란체티 등 고급제품만이 아니다. 중급제품인 이탈리아 브랜드 발렌티노 루디와 프랑스 브랜드인 크리스찬 오자르, 그리고 고유 브랜드인 포체도 있다. 발렌티노 루디는 홈플러스, 크리스찬 오자르는 이마트를 통해 팔고 있다.이들 디자이너는 연간 5,000종의 넥타이를 디자인한다. 이중 제품으로 탄생하는 것은 약 2,000종. 계절별로 500종의 새로운 넥타이를 탄생시키는 셈이다. 넥타이 역시 패션제품이어서 계절별로 새로운 유행이 생겨난다. 화려한 원색의 색상이 인기를 끄는가 하면 파스텔조의 은은한 색상이 사랑을 받기도 한다.아쿠아스큐텀, 레노마, 란체티 등 고급제품은 디자인을 현지로 보내 일일이 승인을 받는 까다로운 절차를 거친다. 때로는 유명 브랜드의 디자인을 한국화해 히트상품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이들 유명 브랜드가 한국의 넥타이 생산파트너로 지엠을 선정한 것은 이 회사의 디자인 능력과 품질관리 수준을 인정한 데 따른 것이다.대다수 넥타이업체들이 소재, 디자인, 컬러 등 3가지 요소에 중점을 두지만 윤사장은 이들 3가지 요소에 감촉과 느낌도 중시한다. 그는 “넥타이는 양복과 와이셔츠에 맞춰 맬 때 감촉과 느낌이 살아야 멋이 풍겨난다”고 설명한다. 감촉은 터치다. 매끈매끈하거나 까끌까끌한 정도를 의미한다. 느낌은 두툼하다거나 얇은 것 등을 의미한다. 이들이 조화를 이뤄야 그 사람의 분위기와 옷의 품위가 살아난다. 특히 넥타이 하나를 바꾸면 그 사람의 분위기가 확 달라진다. 이런 분위기를 살릴 수 있는 제품을 생산하는 데 전력을 쏟고 있다.둘째, 기업은 구성원 개개인, 특히 직원들이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확신하고 이를 위해 직장 내 분위기를 좋게 만드는 데 역점을 둔다. 윤사장은 “100여명이 함께 일하는데 사장 혼자 똑똑해선 절대로 기업이 잘될 수 없다”고 말한다. 디자인에 관한한 사장보다 전문디자이너가, 자금에 관한한 금융부서 직원들이 훨씬 뛰어나다고 확신한다. 따라서 사장의 역할이란 개개인이 갖고 있는 창의성과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주는 것이라는 신념을 갖고 있다. 또 한두 명의 직원이 회사를 어렵게 만들 수도 있다며 개개인을 존중하는 데 경영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신길동 본사 사옥의 중앙홀에 멋진 오디오가 자리잡고 있고 쾌적함이 넘쳐나도록 인테리어를 꾸민 것도 직원들을 배려하기 위한 것이다. “분위기가 집보다 나은 회사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윤사장은 설명한다.셋째, 명품 생산을 위해 원자재 비용을 아끼지 않는다. 넥타이를 만드는 원단에는 여러 종류가 있고 가격도 천차만별이다. 짜임새가 촘촘한 고밀도 제품의 경우 원가가 비싼데 비용이 더 들더라도 비싼 원단으로 제품을 생산하다. 윤사장은 “가끔 거친 손톱 끝에 넥타이천이 살짝 걸렸을 뿐인데 올이 빠져 넥타이를 못 매게 됐다고 하소연하는 사람들이 있다”며 “이런 제품들의 경우 원단이 좋지 않은 제품일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한다. 윤사장은 좋은 넥타이란 양복, 와이셔츠와 하나가 될 수 있는 제품이라고 설명한다. 자기 자신과 일체감을 느낄 수 있는 게 멋진 넥타이라는 것이다.그는 만학을 통해 대학을 졸업한 뒤 중앙대 국제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새벽에는 회사 부근의 SDA학원에서 영어회화를 배우고 낮에는 회사를 경영한 뒤 밤에는 대학원 공부를 하는 등 주경야독을 해왔고 숭실대 중소기업대학원, 단국대 행정대학원 등에서도 공부했다. 또 요즘에는 피터 드러커의 경영이념과 철학을 배워 기업경영에 적용하기 위한 모임인 피터 드러커 소사이어티에 가입해 활동하고 있다.지난 27년 동안 넥타이 생산 외길을 걸어온 윤사장은 고유 브랜드인 포체를 활용해 토털패션업체로 도약한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 정장, 와이셔츠, 지갑, 핸드백, 손수건 등 패션업체들과 손잡고 공동 브랜드 형태로 포체 브랜드를 활용하는 방안을 찾고 있다. 이를 위해 앞으로 1년 동안 토털패션 브랜드 사업을 준비할 예정이다.윤사장의 장기적인 꿈은 포체를 명품 반열에 올려놓는 것. 그는 “이미 제품의 디자인과 품질은 명품 반열에 올라섰지만 브랜드 육성은 단시간에 해결되는 게 아니다”며 “장기적으로 꾸준히 키워가겠다”고 밝혔다.약력: 1950년 경남 합천 출생. 79년 지엠사 창업. 87년 지엠인터내셔날로 상호변경 및 대표이사(현). 92년 세계일류화상품 선정. 2001년 중앙대 국제경영대학원 졸업(경영학 석사). 2002년 디자인연구소 설립. △수상: 2005년 롯데 베스트브랜드상. 2006년 동작세무서 모범납세 표창김낙훈 편집위원 nhkim@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