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액형이 혹시 O형 아니세요? 띠가 어떻게 되세요?”신세대 마술사 최현우씨(28)를 인터뷰하는 자리에서 돌연 인터뷰를 당하는 입장이 돼 버렸다. 기자의 질문 사이에 공백이 생길 때마다 무엇을 알아내려는지 그 역시 이것저것 질문을 던졌다.최근 마술은 하나의 산업으로 다뤄질 정도로 빠른 성장세를 보이는 분야다. 현재 한국에서 마술을 직업으로 삼아, 또는 취미 차원에서 가까이 하는 인구는 15만명 이상이다. 국제규모의 마술대회를 참관하기 위해 해외로 출국하는 극성팬도 생겼다. 또 부산에서는 8월10일부터 13개국의 세계 정상급 마술사 40여명이 참가하는 ‘부산국제매직페스티벌’이 열릴 예정이다.그래서 한국을 대표하는 신세대 마술사 중 한 사람인 최현우씨를 찾았다. 특히 그는 직접 마술전문업체를 공동 창업하기도 해 마술의 산업화와 대중화를 이끈 주역으로 꼽히기도 한다. 서른도 채 안된 그가 특정 분야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인물로 떠오를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그를 만나자마자 궁금증은 바로 해소됐다. 그 비결은 바로 인터뷰 나온 기자를 역으로 인터뷰할 정도의 강한 호기심이었다.“모든 노력을 쏟아부었을 때 대한민국 최고가 될 수 있는 분야가 무엇일까 생각해 봤죠. 그래서 마술을 하게 된 것 같습니다. 늘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제게 잘 맞는 일이거든요.”물론 마술을 처음 접한 것은 우연이었다. “고3 때 좋아하는 연상의 여인에게 잘 보이려고 마술을 배우기 시작했다”는 그는 그런 이유로 마술을 배웠다고 하기에는 이상할 정도로 처음부터 한국마술의 대부인 이흥선 선생이 운영하는 ‘알렉산더 매직 패밀리’에서 마술을 접했다. 그것도 위계질서를 중요시 여긴다는 ‘마술업계’에서 허드렛일을 해가면서.결국 여자친구를 만드는 데는 실패했지만 호기심 강한 그에게 여자보다 오히려 마술이 새로운 세계로 다가왔다. 그래서 대학에 진학한 이후에도 마술공부를 중단하지 않았다. 내친김에 2001년에는 마술전문업체 비즈매직을 차렸다.“대학교 때 일본여행을 갔다가 크게 충격을 받았어요. 백화점마다 ‘매직숍’이 있는데다 스타마술사도 많더군요. 일본에서 성공한 사업아이템은 한국에서도 통하니 분명 한국에서도 마술이 비즈니스로 각광받을 것 같다는 예감을 하게 됐습니다.”그는 경제학도(바쁜 일정 때문에 아직 졸업을 하지 못한 그는 ‘대학교 6학년 2학기 재학 중’이라고 자신의 학력을 소개했다)답게 마술을 비즈니스의 관점으로 접근한 것이다.“마술의 질이 좋아지려면 자본이 투입돼야 한다고 봅니다. 데이비드 카퍼필드의 자유의 여신상을 없애는 마술만 하더라도 대규모 장비가 동원되는 등 50억원이 필요한 마술이죠. 마술은 한마디로 쇼비즈니스의 극치입니다.”그는 자신의 직업에 대해서도 ‘매지션’이자 ‘엔터테이너’라고 생각한다. “마술은 인적자원관리(HR)사업이자 원소스멀티유스의 전형”이라는 최씨는 마술사 스스로가 ‘원소스멀티유스’로 쓰일 수 있다고 믿고 있다. 따라서 사업에 뛰어들었을 뿐만 아니라 TV 버라이어티쇼 등 대중매체를 통해서도 부지런히 활동하고 있다.공동창업자인 최병락 대표(29)가 현재 CEO를 맡고 있는 비즈매직은 마술사 매니지먼트와 마술공연 기획과 강의, 도구 판매 등을 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마술은 비즈니스와도 통하는 면이 많다.“마술은 기본적으로 혼자 하는 게 아니죠.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인터랙티브한 아트’가 바로 마술입니다. 그러니 영업적인 부분에서도 유용하게 쓰일 수 있습니다.”실제 인간관계를 좋게 하거나 면접, 영업 등에서 활용하기 위해 강의를 들으러 비즈매직을 찾아오는 수강생도 많다는 게 그의 말이다. 상호작용을 강조하는 최씨는 그래서 자신의 공연 컨셉도 늘 ‘사랑’으로 잡는다. 마술은 정성을 들인 이벤트인 만큼 사랑이 기본이라는 것. 그래서 그의 공연은 연인, 친구 사이의 정을 일깨워주는 이벤트인 경우가 많다. 특히 그는 사람의 심리를 다룬 마술을 좋아한다.그러고 보니 그가 기자를 보자마자 이것저것 물어본 게 이유가 있었다. “사람을 읽는 방법을 익히는 것이 심리를 이용한 마술에 도움이 된다고 본다”는 그는 역학, 인상학 등도 열심히 익히고 있다고 했다.평범함을 싫어하는 최씨지만 유명해지기 위한 수단으로 마술을 선택한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관객이 자신의 마음이 읽혔다고 믿으며 놀라워하는 순간, 그것이 그에게 희열을 가져다주는 포인트다. 바로 그 순간의 짜릿함이 그를 오늘날 이 자리에 있게 한 원동력이라는 이야기다.11년째 마술사로 활동하고 있는 그에게 시련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의 부모가 바라는 아들의 진로는 전문경영인이었다. 부모님이 보시기에 그가 하는 마술은 일종의 ‘밤무대쇼’일 뿐이었다.1년간 집에 못 들어가고 회사에서 생활한 적도 있다. 공연을 마쳤는데 ‘돈을 못내겠다, 환불해 달라’는 일도 있었다. ‘어려 보이는 외모 때문에 무시를 당하나’ 하고 생각했지만 결국 자신의 프로정신이 부족했다는 쪽으로 마음을 바꿔먹었다.“아마추어로 취미삼아 할 때야 누구나 자신에게 잘한다고들 말하죠. 하지만 프로가 된 이상 사회의 평가는 냉정하거든요. 다행히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은 안했어요.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만 했지.”힘들다는 생각이 들 때면 더 연습에 매달린다는 최씨는 그래서 20대의 대학생이지만 소개팅이나 MT 등 한국의 젊은이들이 일반적으로 겪는 추억거리도 만들지 못했다. 하지만 “인생이 불쌍하지 않으냐”고 볼멘소리를 내다가도 금세 “마술을 좀더 일찍 시작했으면 좋았을 것 같아요”라고 말하는 그다. 정말 그만두겠다는 생각을 한 것은 11년간 딱 한 번 있었다 하니 이런 반응도 어찌 보면 자연스럽다. (그것도 여자친구의 부모님께 잘 보이고 싶어서!)앞으로 그의 꿈은 3년 안에 미국 라스베이거스 무대에 서는 것이다.“마술은 넌버벌쇼(Nonverbal·비언어적)이기 때문에 세계무대에서도 충분히 경쟁력이 있는 분야입니다. 특히 라스베이거스에서 활동하는 마술사들의 평균 연봉은 100억원 가량 됩니다. 일부는 연간 3조원이나 벌기도 합니다.”이 정도의 포부라면 특별한 취미도 없고 술, 담배도 멀리하면서 24시간 마술만 생각한다는 것도 무리는 아닌 듯하다. 그나마 재테크가 취미라면 취미다. 재테크는 돈의 흐름을 이해하고 향후 흐름을 예측해내야 하는 과정이 필수적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고 움직이는 마술사의 일과 닮았다는 설명이다. 여기에 라스베이거스에 진출하기 위해 필요한 비용을 보태는 데도 도움이 된다.대학을 졸업한 뒤에는 경영학석사(MBA)에도 도전할 생각이다. 사업을 제대로 해서 좀더 많은 재산을 모으고 이를 사회에 환원하고 싶어서다.인터뷰를 마친 이틀 후에 최씨는 마술의 월드컵이라는 국제마술사연합회 마술대회(FISM)에 참가하기 위해 스웨덴 스톡홀름으로 출국했다. 그가 이번 대회에서 어떤 뛰어난 성과를 안고 돌아올지, 그리고 이제 막 서른을 바라보는 그가 또 어떤 행보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지 자못 궁금해진다.약력: 1978년생. 한국외국어대 경제학과 재학 중. 2002년 국제마술사협회 컨벤션 3관왕. 2002년 국제마술협회경연대회 클로즈업 부문 우승. SBS 마술 드라마 <매직> 출연 및 마술 프로듀싱. <최현우의 매직콘서트> 등 공연 다수.김소연 기자 selfzone@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