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과 이란 핵 문제에 대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며 핵 활동 중단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는 미국이 유독 인도의 핵 문제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관대한 정책을 펼치고 있어 그 배경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인도는 지난 7월 초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 전세계가 시끌벅적했을 때 북한의 미사일 발사 불과 며칠 후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발사 실험을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해버렸다.당시 대부분의 국제관계 전문가들은 인도의 이 같은 태연한 행동의 이면에는 미국과의 사전 교감이 있을 것이라고 짐작했다.사실 인도는 최근 국제사회에서 거의 유일하게 미국으로부터 핵 활동의 자유(?)를 간접적으로 누리는 국가처럼 비쳐지고 있다. 이 같은 배경에는 물론 미국의 이해관계가 깔려 있다.양국은 지난해 7월 ‘미국은 인도에 핵기술과 핵연료 등 관련물질을 제공하고 인도는 민간 핵시설에 대해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을 받는다’는 내용의 협정안에 합의했다. 이어 지난 3월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인도 방문시 이를 최종 확정했다. 미국은 핵확산금지조약(NPT) 가입국이 아닌 인도와 이 같은 협정을 체결하는 데 대해 국내외 비난을 들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인도화의 핵 협력을 밀어붙였다.인도는 NPT 가입국이 아니어서 이 같은 양국간 합의는 미국 국내법 개정을 필요로 한다.이에 따라 미 상하 양원의 국제관계위원회가 지난 6월 모두 이 핵협정안을 통과시킨 데 이어 지난 7월26일에는 하원 전체회의에서도 이 협정안이 통과됐다. 남은 절차는 오는 9월로 예정된 상원 전체회의 통과다.일각에서는 상원에서의 통과가 쉽지만은 않을 것으로 보고 있지만 상원에서도 인도와의 핵협정을 결국은 비준할 것으로 보는 것이 대체적인 시각이다.그러면 온갖 국내외 비난을 무릅쓰고 미국의 행정부와 의회가 한목소리를 내는 진정한 이유는 무엇일까.그 이면에는 바로 기업들의 이익이 도사리고 있다.<워싱턴포스트>는 최근 미·인도간 관계를 파헤치는 기사에서 ‘로비스트들이 핵장벽을 뚫었다’는 표현을 사용했다.양국간 핵협력의 이면에는 어디서든 이익을 좇는 기업들과 그들을 위해 뛰는 로비스트들의 배후 입김이 절대적 역할을 했다는 지적이다.미국기업들이 이처럼 인도시장에 혈안이 돼 있는 데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인도 정부는 앞으로 5년간 2,000억달러에 가까운 돈을 핵발전소 건설 등 인프라 구축에 쓸 방침이다.미 정부는 지난 1974년 인도가 핵실험을 실시한 이후 양국 기업간 민간 핵 분야의 모든 교류를 중지시켜 왔다. 따라서 핵협정이 비준돼 이 같은 규제가 30여년 만에 풀리면 황금어장이 열리는 셈이다.핵발전소 건설 공사는 물론 발전소에 들어가는 터빈 등 발전설비, 그리고 핵폐기물 처리까지 전 프로세스에 걸쳐 무한한 일감이 미국기업들에 펼쳐질 전망이다.이뿐만 아니다. 세계에서 11번째 경제대국인 인도는 현재 한창 경제개발을 진행 중으로 핵발전소 이외에 다양한 비즈니스가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그중에서도 특히 미국기업이 관심을 갖는 분야는 군수산업이다. 항공기를 비롯, 군수업체들도 엄청난 기회를 잡을 수 있게 될 전망이기 때문이다.지난 65년 이후 인도는 미국산 무기를 구입하지 않고 있다. 당시 존슨 미국 대통령은 인도와 파키스탄의 전쟁기간 중 인도에 대한 무기판매를 금지시켰고 이 같은 관행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그런데 양국간 핵협정이 체결되면 자연스레 무기 거래 역시 재개될 것이라는 게 대부분 전문가의 견해다.컨설팅펌인 DFI인터내셔널의 최고경영자 배리 M 벨치맨은 “인도가 저가의 러시아 군수장비와 인도 자국 내 군수산업을 당장 포기할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미국 방산업체들에는 새로운 기회가 열리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고 밝혔다.이에 따라 관련기업들의 움직임도 바빠지고 있다.지난해 인도에 11억달러어치의 발전 및 인프라 장비를 판매한 제너럴일렉트릭(GE)은 오는 2010년까지 이를 80억달러로 늘릴 계획이다.지난 1월 에어인디아에 68대의 비행기를 110억달러에 판매하기로 계약을 체결한 보잉은 인도 공군에 120대의 전투기를 납품하는 것은 물론 소형 개인용 비행기 판매도 추진 중이다. 항공기업체인 록히드마틴 역시 올해 235억달러에 달하는 인도 국방예산을 겨냥해 납품을 위한 치열한 로비를 벌이고 있다.미국의 대인도 수출은 최근 3년 만에 거의 3배로 늘어 지난해에는 80억달러에 달했다. 그러나 인도에 대한 수출비중은 아직도 미국 전체 수출의 1%도 안되는 만큼 인도시장은 무궁한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미국기업들의 이 같은 이해관계를 대변해주는 로비스트들 역시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다. 로비스트들은 떠오르는 인도시장을 잡으려는 기업들과 인도 정부 관계자들을 연결시켜 주는 역할은 물론 이번 법안이 통과되도록 상·하원 의원들을 상대로 치열한 로비전을 벌이고 있다. 이번이 로비스트들에게는 모처럼 큰돈을 만질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인도 주재 미국대사를 지낸 로버트 D 블랙윌이 대표적인 로비스트. 그가 소속된 컨설팅회사인 바버 그리피스 로저스는 연간 70만달러의 자문료를 받기로 인도 정부와 계약을 체결했으며 지난해에는 인도산업연합회로부터 52만달러의 자문료를 받았다.역시 인도 주재 미국대사를 지낸 토머스 피커링은 현재 보잉의 국제관계업무 담당 부사장으로 일하며 인도 관리들을 대상으로 항공기 판매 로비를 벌이고 있다.이 밖에 상원의원, 고위관료 출신 인사들도 다수 로비스트로 활동 중이다.로비단체들 역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미·인도 비즈니스협의회’(US-India Business Council)가 가장 대표적 단체로 인도에서 사업을 하는 180여개 미국기업들을 대변하고 있다. 회원사는 월마트, 코카콜라, IBM, 마이크로소프트, 몬산토, 록히드마틴 등으로 전문 로비스트들을 고용, 상·하원 의원들을 대상으로 설득작업에 나서고 있다.‘미·인도 정치행동위원회’(US-Indian Political Action Committee)는 상·하원 의원들을 위한 기금 모금 행사를 통해 의원들에게 로비력을 집중, 법안 통과를 위해 전력투구하고 있다.물론 양국간 핵협정이 아무런 장애 없이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것만은 아니다. 미국은 미국대로 인도는 인도대로 국내 반발에 직면하고 있다.미 의회 일각에서는 “미국이 핵에 대한 이중잣대를 내세우고 있다”는 국제사회의 비난을 의식, 핵협정에 기존 양국간 합의된 내용 이외에 다른 내용을 추가해야 한다는 의견이 최근 대두되고 있다.대표적으로 거론되는 것은 ‘인도 정부가 매년 자국의 핵 정책에 대한 미 의회의 검토를 받아야 한다’는 등의 내용들이다.미국의 이 같은 움직임에 대한 인도의 반응은 단호하다. 만모한 싱 인도 총리는 지난 7월 “미국에서 (미·인도 핵에너지 협력) 입법 과정이 진행 중이나 양국 정상간 합의에 부합되지 않는 결과가 나오면 우리는 그에 따라 다음 행동을 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싱 총리는 이 같은 발언을 하기 며칠 전에도 미국에서의 입법내용이 “양국 정상회담 공동성명 조항과 부합되지 않는다면 인도는 타협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싱 총리의 이 같은 발언은 공산당 등 인도 국내 정치권 일각에서 미국 상·하원이 입법 절차를 밟고 있는 미·인도 핵협력 법안 내용 일부가 ‘인도의 자주권을 침해하고 있다’며 반발하고 있는 가운데 나왔다.이 같은 분위기를 종합해 보면 하원과 달리 상원에서의 법안 통과에는 다소 난관이 예상되는 것도 사실이다.인도의 전략전문가인 C 라자모한은 최근 인도 한 방송에 출연, “미 상원 통과는 생각보다 어려울 것”이라며 “상원에 제출된 법안들에는 양국간 민간 핵협력을 좌초시킬 수 있는 내용들이 많이 들어 있다”고 지적했다.특히 부시 대통령과 지지자들은 이번 협정이 “양국 모두에 큰 힘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에 반대하는 일부 의원들은 아직도 NPT에 가입하지 않은 인도와의 핵 거래는 미국의 핵 정책에 치명타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는 상황이다.이들은 무엇보다 미국이 핵을 포기하도록 압박해 온 북한과 이란 등에 잘못된 선례를 남기는 것이라며 인도와 미국간 핵협력이 본격화되면 그후에는 어떤 나라에 대해서도 핵실험이나 핵 보유에 대해 미국이 자유롭게 비판하는 것이 어려워질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명분과 실리, 그리고 정치와 경제 사이에서 어느 쪽이 최종승자가 될지 지켜볼 일이다.김선태·한국경제 국제부 기자 k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