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은행 시스템 조기 구축에 총력 … 일등 은행원 육성위한 인재 프로그램도 가동

“이제는 시스템 구축에 주력할 생각입니다.”지난 11월 국민은행의 물리적 합병작업을 마무리한 김정태 행장이 합병후 제일 처음 꼽은 선결과제는 ‘통합은행의 시스템 조기 구축’이다. 화학적 통합을 위해 전국 지점을 순회방문하고 있는 김행장이 주로 논의하는 것도 시스템 문제다.김행장은 지난 98년 옛 주택은행장으로 취임했을 때도 전체적인 개혁방향을 잡고 난 뒤인 99년 초부터 대장정에 나서 그 해에만 2천3백50명의 직원과 대화를 나눴다. 김행장은 이런 친화전략으로 당시 주택은행의 분위기를 쇄신하는데 성공했지만 이제는 인원도 두 배 이상 되는 데다 덩치가 더 커진 은행의 전략을 짜야 한다는 부담이 커 지점방문을 12월15일로 마무리 지을 계획이다.김행장은 “시스템을 빨리 구축해야 세계 60위권의 초대형은행에 걸맞는 실력을 보여줄 수 있지 않겠냐”고 반문했다. 국민은행과 주택은행이 합병선언을 한 것은 지난 99년 12월. 그로부터 2년여가 지난 지금 하드웨어는 합쳐졌지만 시너지 효과를 내기 위한 시스템은 거의 없다시피 한 상황이다. 합병결과가 단순히 ‘1+1=2’라는 산술적 합계에 그친다면 외부는 물론 우선 노조에서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합병의 외형적 효과는 이미 대출동향에서 나타나고 있다. 11월 한달 동안 무려 2조원 이상의 소매 대출이 증가했다. 애초에 합병의 당위성으로 내세웠던 ‘세계수준의 소매금융기관’의 위력이 나타난 부분이다. 하지만 기업대출분야는 아직 능숙하지 않다. “합병 이전의 국민-주택은행이 소매금융에만 치우쳐 기업대출 시장은 잡기 어려울 것”이라는 세간의 비관론도 신경 쓰이는 부분이다.기업대출 시스템을 하루빨리 구축하기 위해 김행장은 취임직후 아예 새로운 시장을 찾으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렇게 해서 나온 모델 중 하나가 ‘SOHO 모델’이다. 김행장이 SOHO 모델을 구상하게 된 건 아멕스카드의 예를 듣고서다. 아멕스카드가 소규모 자영업자들에게 신용으로 대출해 주는 상품을 개발, ‘칭찬도 듣고 수익도 올린다’는 소식을 접한 것. 아직까지 세부적인 기법은 결정되지 않았지만 김행장은 이들 자영업자의 신용을 측정할 수 있는 기준을 조만간 만들어 영업에 들어가게 할 예정이다.김행장은 시스템 구축과 함께 교육에도 주력할 계획이다. 은행업이 정보지식 집약적인 산업이라는 점에 비춰 보면 국민은행의 성패는 기본적으로 인적역량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김행장은 “아무리 시스템이 좋아도 사람이 못 따라오면 무용지물”이라며 “앞으로 사람을 키우는데 시간과 노력, 자금을 투입할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세계적인 은행으로 발전한다는 게 말로만 되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각계의 전문가들에게 자문을 구하고 필요하다면 직원들을 해외에도 보내서 선진 금융기법을 배워오게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인재양성은 두 가지 방향으로 진행할 계획이다. 인재양성 기관을 별도로 설립하는 것과 안식년 제도 도입을 통한 재충전 기회 제공이 그것이다. 김행장은 미국의 제네럴 일렉트릭(GE)사를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시킨 토양이 됐던 크로톤빌(Crotonville)을 본딴 인재양성 기관을 구상하고 있다. GE의 크로톤빌은 직무교육보다는 차세대 리더를 키울 수 있는 리더십에 중점을 둔 재교육기관이다. 은행원들에 대한 직무교육은 개별지점과 사업부서에서 담당해도 충분한 만큼 은행이 보유한 연수원을 실질적인 리더십 교육기관으로 만들겠다는 포부다. 김행장은 “연수든 재교육이든 실질적인 내용으로 채울 것”이라고 강조했다.안식년 제도 도입 재충전 기회 제공그래서 퇴직예정자용 위로상품 정도로 여겨지던 안식년 제도도 앞으로는 10년차 이상 직원들을 대상으로 ‘진짜’ 안식을 허용하는 제도로 바꿀 예정이다. 김행장은 “공부를 하려면 하고 안 해보던 업무를 배우려면 배우고 아무 거나 해보면 자기를 특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며 “요즘 지점방문을 해 보면 행원들이 재교육과 안식년 제도에 대한 문의를 많이 한다”고 귀띔했다.앞으로 국민은행은 연간 직원 1인당 1백50만원, 연간 1백50억원 이상의 교육훈련비를 배정해 인재양성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하니 국내에 유래가 없는 일이 또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김정태 행장이 동원증권 사장에서 주택은행장으로 옮긴 지난 98년 이후 그를 줄곧 따라다니던 ‘개혁의 전도사’란 별칭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그를 오랫동안 곁에서 지켜본 기자의 입장에서 보면 김행장은 ‘생각이 다른 CEO’다. 따지고 보면 김행장만큼 개혁적 발상으로 성공한 케이스도 드물다. 그러나 김행장은 “내가 뛰어났다기 보다는 은행권의 관행에 문제가 많았던 것”이라고 겸손해했다. “어느 증권회사에 사장 전용 엘리베이터가 있고 수행비서가 있습디까? 제가 처음 주택은행에 와서 예정에 없이 혼자서 지점을 방문하니까 난리가 나더라구요.” 김행장의 이같은 행보는 당시 은행권에서는 신선하다 못해 ‘파격적’인 것이었고 당시 바람을 타던 구조조정 분위기를 업고 그를 일약 유명인사로 만들어버렸다.김행장이 자신의 업무를 최대한 ‘밑으로’ 위임하는 것도 그의 스타일이다. 세세한 부분까지 행장이 간섭하면 오히려 일이 안 된다는 생각에서다. 통합 은행장에 취임한 후 옛 국민은행 지점을 순회할 때도 임원들에게 “꼭 필요한 일이 있으면 전화로라도 결재하겠지만 웬만하면 내게 전화를 않는 사람이 일 잘한다는 평가를 받을 것”이란 말을 남기고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