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제 562호 (2006년 09월 11일)

국경 없는 투자 ‘스타트’…‘기대 반 걱정 반’

기사입력 2006.09.07 오후 02:53

“전에 비해 몇 배라고 말할 수도 없을 정도로 문의전화가 폭주하고 있습니다.”

외환은행 해외고객센터의 이종면 차장은 밀려드는 문의전화에 귀가 다 아플 정도라고 말한다. 정부가 외환자유화의 일환으로 지난 5월 100만달러 이하의 투자목적 해외부동산 취득을 자유화하면서 벌어진 현상이다. 해외 부동산 경기가 위축되고 있다는 언론보도가 나오면서 상담요청이 잠시 주춤했다가 최근 들어 다시 급증하기 시작했다고 이차장은 전한다. 지난 8월 외환은행이 고객을 상대로 주최한 해외 부동산 투자설명회에서도 해외 부동산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확인할 수 있다. 주최측의 예상보다 훨씬 많은 청중이 몰려 보조의자를 설치해야 했을 정도다.

실제 투자도 크게 증가했다. 재정경제부에 따르면 지난 1월 13건 487만달러에 불과했던 것이 3월에는 61건 2,071만달러로 불어난 데 이어 6월에는 145건 5,421만달러로 몸집을 키워나가고 있다. 올 상반기 총실적은 383건에 1억4,000만달러에 이른다. 2005년 전체 실적이 29건에 932만달러임을 감안하면 ‘폭발적인 증가’란 표현이 어색하지 않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해외 부동산 투자의 인기가 한층 높아질 것이라고 전망한다. 현재 100만달러로 묶여 있는 투자목적의 해외 부동산 투자한도가 머지않아 완전 자유화될 예정인데다 국내 부동산은 정부의 강력한 규제 정책으로 투자할 만한 곳이 마땅찮기 때문이다.

이종면 차장은 “투자한도가 100만달러로 제한돼 있는 만큼 아직은 투자보다 거주목적의 취득이 대부분”이지만 “한도가 없어지면 주택은 물론 대형상가도 매수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에 투자액은 불어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해외 부동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자 시중은행들은 해외 부동산 영업에 팔을 걷어붙였다. 현지의 부동산중개업체와 제휴를 맺어 거래를 알선하는가 하면 해외 지사와 법인을 통해 부동산 정보와 대출을 제공하는 등 고객잡기에 적극 나서고 있다.

해외 주식에 투자하는 펀드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국내증시가 몇 달째 조정을 받자 해외에서 기회를 찾는 투자가가 늘어나고 있는 것. 한국펀드평가에 따르면 주식형 해외펀드의 규모는 지난해 말 1조7,834억원에서 지난 8월29일 7조1,776억원으로 8개월 사이에 무려 4배 이상 불어났다. 역외펀드는 지난해 말 6조1,252억원에서 지난 7월 9조1,852억원으로 50% 가량 증가했다.

해외펀드의 규모 역시 더욱 증가할 전망이다. 수익률이 상대적으로 높기 때문이다. 한국펀드평가의 박현철 연구원은 “주식형 해외펀드의 지난 1개월 수익률은 2.87%로 높다고 할 수 없지만 국내펀드의 수익률이 여전히 마이너스임을 감안하면 투자가치가 있다”면서 “자산배분의 차원에서 해외펀드는 아직 권장할 만하다”고 말했다.

부동산, 주식, 채권 등 해외의 자산을 대상으로 한 재테크가 급증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보다 높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주식형펀드의 경우 해외투자가 국내투자에 비해 수익률이 높게 나타나고 있어 수탁고가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여기에 정부의 외환자유화 정책도 해외투자 불길에 기름을 붓고 있다. 높기만 하던 해외투자의 장벽을 대폭 낮춰 자유로운 투자환경을 조성한 것. 재경부는 지난 5월21일 당초 2011년까지 마칠 예정이던 외환자유화 계획을 2년 앞당겨 2009년까지 완료하겠다고 발표했다. 100만달러 한도 내에서 해외 부동산을 취득할 수 있는 것도 이때부터다.

사정이 이러니 국내 투자자금이 해외행을 거듭하고 있는 것은 이상하지 않다. 외환자유화의 목적 가운데 하나인 ‘원화의 국제화’를 위해서도 외환거래는 더욱 자유로워져야 하는 데도 이의가 없다. 실제로 시카고상업거래소(CME)에 원/달러 선물이 상장됐고 원화환전소가 세계 곳곳에서 신규 개장하고 있는 등 원화의 국제화 실적이 나타나고 있다. 경제규모가 세계 10위권인 ‘경제대국’ 한국이 외환거래를 규제하는 것이 오히려 시대착오적 발상인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외환자유화를 비롯한 ‘자본자유화’ 정책에 무작정 박수를 보낼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이론적으로 봐도 자본자유화에는 ‘위험’이 상존하고 있으며 학계에서도 찬반양론이 분분하다. 80년대 호황기를 누리던 일본경제가 장기불황의 나락으로 곤두박질친 가장 큰 이유 가운데 하나가 자본자유화에 따른 과도한 해외 부동산 투자의 결과였으며 97년 한국의 IMF 외환위기를 불러온 것도 자본자유화를 진행하던 과정에서 발생한 ‘재앙’이었다.

이와 관련, 고려대 경제학과의 신관호 교수는 정부의 외환자유화 계획이 일관성 측면에서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전제한 뒤 “무역자유화와 달리 자본자유화는 상당한 리스크를 안고 있다”며 “자본은 갑작스레 들고나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 국가경제 전체를 뒤흔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단순하게 생각해봐도 국내 투자자금이 해외로 빠져나갈 경우의 부작용을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우선 국내경기의 위축을 불러올 수 있다. 주식이든 부동산이든 국내에 투자될 자금이 해외에 묻히는 데 따른 결과다. 지난해 국내증시가 글로벌 증시의 동반 조정에도 불구하고 유례없는 활황을 지속할 수 있었던 이유는 적립식펀드를 통한 매수세가 워낙 강했기 때문이다. 해외펀드의 비중이 높아지면 이런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이미 국내증시는 글로벌 증시와 강한 동조현상을 보이고 있는 실정이다.

과도한 해외투자 열풍이 몰고 올 부작용도 생각해봐야 한다. 먼저 해외 부동산이 유망하다는 말만 믿고 개인들이 무분별하게 투자에 나설 경우 심각한 개인 신용불량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대출을 받아 해외 부동산에 투자했다가 해당국가의 부동산 가치가 폭락하는 경우다. 가격은 올랐지만 환율변동에 의해 오히려 손해를 볼 수도 있다. 전문가들은 해외투자는 태생적으로 환율과 해당지역의 자산가치의 변동이라는 두 가지 불확실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기 때문에 국내투자에 비해 리스크가 크다고 입을 모은다.

이종면 차장은 “해외 부동산 투자자의 대부분은 아직 여윳돈으로 투자를 하지 대출을 받는 경우는 없지만 투자한도가 없어지면 큰 물건을 매입하기 위해 대출의 도움을 받는 투자자도 생길 것”이라며 “단기투자 성향이 강한 국내 투자자들이 단기차익을 노려 무리한 투자를 할 경우 부작용이 예상되므로 3~5년 정도의 중장기 계획하에 투자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불법적인 상속과 증여의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도 있다. 정부가 모니터링을 강화한다고 하지만 기본적으로 한번 해외로 빠져나간 자금을 언제까지 완벽하게 관리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일찌감치 자본자유화를 실시하고 있는 선진국의 경우에도 해외투자를 통한 불법 상속과 증여를 원천적으로 막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해외투자 자유화에 따른 부작용과 역풍이 적지 않게 제기되고 있지만 정부의 입장은 단호하다. 득이 실보다 많다는 것이다. 재경부의 한 관계자는 “해외투자를 자유화한 국가가 한둘이 아닌데 그들 중 해외투자 자유화 때문에 곤경에 처한 국가는 없다”며 “모니터링을 강화해 부작용을 최소화해 나갈 방침”이라고 강조했다.

정부당국의 주장대로 해외투자 자유화의 공과를 섣불리 예단할 수는 없다. 게다가 아직은 이렇다 할 부작용도 없다. 투자규모가 적기 때문이다. 설사 손실을 입었다 해도 개인적인 손해에 그칠 뿐이다. 하지만 투자건수와 규모가 커질 때는 사정이 달라진다. 자칫 국가경제에 짐이 될 수도 있다. 정부의 그물망 같은 관리를 기대해본다.

hjb@kbizwee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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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06-09-07 14: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