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제 562호 (2006년 09월 11일)

제작자 변신 대성공…한류 붐 주역

기사입력 2006.09.07 오후 02:53

1980년대 가요계를 풍미했던 남성 3인조 댄스그룹 소방차. 폭이 넓은 승마바지와 선글라스, 역동적인 댄스로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지금도 ‘어젯밤 이야기’, ‘그녀에게 전해주오’, ‘통화중’ 등 당시 히트곡들은 노래방에서 단골로 불려진다.

소방차 멤버 가운데 한 명이었던 김태형은 지난 95년 엔터테인먼트회사 ‘뮤직팩토리’를 설립하고 가수에서 제작자로 변신했다. 혼성 5인조 그룹 월드로 시작해 이성진과 천명훈이 속했던 남성듀오 하모하모, 그리고 남성그룹 NRG를 스타로 키워내며 ‘한류 1세대’ 붐을 일으켰다. 김태형은 이외에도 티티마, 이제인 등의 가수를 길러냈고 어린이뮤지컬 〈헬로우 키티〉를 제작했는가 하면 한국연예제작자협회 이사로 활동하며 ‘성공한 제작자’의 길을 걸어왔다.

김태형은 90년대 말 일찌감치 중국시장을 공략해 HOT, 안재욱과 함께 NRG를 ‘원조 한류스타’로 자리매김시켰다. 한류 붐 초창기에 토대를 마련한 셈이다. 그러나 지금과 달리 11년 전 엔터테인먼트사업을 시작했을 당시에는 많은 시련을 겪었다.

김태형은 소방차 멤버로 최고의 가수로 대접만 받다가 때로는 아쉬운 소리도 해야 하는 매니저로 변신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고 털어놓는다. 그는 “사실 가수로 활동할 때는 매니지먼트가 단순히 가수를 대기실에서 무대로 이동하게 만드는 것인 줄 알았다”면서 “그런데 실제 매니저를 해 보니 음반 컨셉을 잡아 곡 의뢰, 녹음, 앨범재킷과 뮤직비디오 촬영, 방송섭외 등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다”며 웃었다.

비즈니스 관계로 만나야 하는 방송국 PD가 자신을 제작자로 봐주지 않고 여전히 가수로 생각해 일하는 데 애를 먹기도 했다. 가수 시절 형성된 인간관계의 질을 바꿔야 하는 어려움에 봉착했던 것이다.

김태형은 가수의 틀에서 벗어나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방송국에 매일 출근하다시피 해 매니저들과 친분을 쌓아가며 밑바닥부터 시작하는 심정으로 엄청난 노력을 쏟아부었다. 그렇게 몇 해가 흐르면서 차츰 김태형도 여의도 바닥에서 가수가 아닌 매니저로 자리를 잡게 됐다.

김태형이 한류 바람이 불기 전에 중국으로 눈을 돌려 NRG를 진출시킨 계기가 궁금했다. “90년 소방차가 해체되고 솔로로 활동할 때였어요. 중국 옌볜에 조선족 위문공연을 갔는데 반응이 정말 뜨거웠죠. 청바지에 선글라스를 끼고 댄스음악을 하는 가수가 없었던지라 관심을 많이 끌었나 봐요. 중국 음반사의 제의가 봇물을 이뤘어요. 그때 중국이 큰 시장이 되겠다고 막연히 생각했죠.”

98년 중국 문호 개방 후 NRG가 베이징에서 열린 KBS <열린음악회> 한·중수교 기념 공연무대에 올랐고, 자신이 중국 무대에 섰을 때와 매우 비슷한 반응을 접했다.

“남자 멤버들이 춤을 추니까 깜짝 놀라 환호하는 게 느껴졌어요. 그래서 저는 못했지만 NRG를 진출시켜 보자고 생각하고 레코드가게 문을 두드렸어요. 베이징, 상하이 등 대도시뿐 아니라 욕심을 내서 중국 구석구석 지방까지 열심히 다니며 프로모션을 했죠.”

김태형의 성공비결은 이처럼 가요계 선배로서 자신이 피부로 느낀 것을 소속 연예인들에게 불편하지 않게 잘 전달한 데서 찾을 수 있다. 그는 “제가 활동하며 느낀 부족한 점을 하나씩 풀어나간다”며 “제작자와 가수 사이가 아니라 선배가수와 후배가수로 지내면서 가려운 데 긁어주는 것”이라고 밝혔다.

김태형은 곡의 선택이나 안무, 무대매너 등에 대해 선배로서 진심어린 충고를 해준다. 또한 방송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코디네이터의 이동까지 꼼꼼히 고려해 시간을 안배하는 섬세함도 발휘한다. “제작자는 보통 가수 입장을 모르는 경우가 많아요. 5분만 시간을 주면 바로 이동할 수 있는 줄 알죠. 저는 경험에 비추어 일을 하니까 가수들이 고집을 피우지 않아요.”

김태형은 최근 중국에서 새로운 사업을 시작했다. 지난 6월 중국 베이징 조양구에 클럽 제니아를 오픈한 것이다. 때문에 한달에 보름은 중국에서, 나머지는 한국에서 지내는 ‘이중생활’을 하고 있다. 그는 “중국문화가 무서울 정도로 급속도로 발달했고 제니스는 단순히 클럽이 아니라 신인 캐스팅도 하고 중국문화를 빨리 접하는 통로이기도 하다”며 “신인가수의 쇼케이스도 열 예정”이라고 말했다.

보아, 하마사키 아유미 등이 소속된 일본의 에이벡스가 도쿄에 클럽 벨파레를 운영하며 젊은층의 구미에 맞는 음악을 빠르게 흡수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조만간 중국에서도 사무실과 연습실을 만들고 본격적인 매니지먼트사업을 벌이려고 해요. 현지 예술학교와 조인해 한국의 매니지먼트 노하우도 전수하고요.”

김태형이 중국에서 벌이는 새로운 프로젝트는 중국인을 한국에 데려와 가수로 데뷔시키는 것이다. 이미 22세의 중국여성 마틸다풍을 멤버로 하는 신인그룹 바시아가 9월 중순 데뷔할 예정이다. 한국인 남자 두 명 중 한 명은 중국유학을 다녀와 중국어에 능통하다. NRG의 천명훈이 프로듀싱을 맡고 객원래퍼로 나서 지원사격까지 한다.

한국의 수많은 연예지망생을 두고 굳이 중국인을 어렵게 훈련, 데뷔시키는 이유는 무엇일까. “중국시장을 감안하면 중국어를 잘한다는 건 큰 장점이에요. 또 최근 한국 연예인에 대해 반한류 흐름이 있는데 중국인이 포함돼 있다면 아무래도 거부감을 덜 받을 것이고요. 앞으로도 가수가 아니라 시스템을 수출하는 사례가 크게 늘 것입니다.”

물론 소속 연예인과의 갈등도 있었다. 지난 2000년 NRG 멤버 김환성이 급성호흡기 질환으로 사망한 사건과 지난 2월 천명훈이 뮤직팩토리와의 계약은 무효하다고 선언하고 독자적인 행동을 한 사건이었다. 천명훈은 지난해 재계약을 할 때 계약서를 쓰지 않은 것이 화근이었다. 김태형은 한국연예제작자협회에 이 문제를 정식으로 거론해 KBS, MBC, SBS 등 방송 3사에 천명훈의 방송출연을 금지하는 공문이 협회 차원에서 전달되는 초유의 사태로 발전했다. 결국 지난 7월 말 천명훈은 소속사로 복귀했고 둘은 화해를 했다.

“화해하면서 다시 계약서를 썼고, 그동안 계약서를 안 썼던 이성진도 새삼 계약서를 썼어요. 하지만 지금도 계약서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계약서를 써도 서로 불신하면 떠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김태형은 자신이 소방차로 활동할 당시에도 계약서 없이 활동했다.

김태형은 지난해부터 엔터테인먼트 상장 붐이 일면서 유명 연예인을 영입해 주가를 높이는 추세에 할말이 많아 보였다. 그는 “음반 제작에 대한 노하우도 없으면서 부피를 키워 실속 없이 주가만 높이는 기업을 보면 답답하다”며 “최근 (천명훈 건으로) 마음고생을 많이 했고 지금은 내실을 기하고 싶다”며 당장 상장 계획이 없음을 밝혔다.

김태형은 10년 후 중국에서 엔터테인먼트 사업가로 지금보다 더 탄탄히 자리매김하고 싶다는 바람을 갖고 있다. 그는 “사명감을 갖고 한류의 새로운 돌파구를 찾도록 노력할 것이며 외국가수를 우리 시스템으로 키워 수출하는 추세가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재원·스포츠한국 연예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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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06-09-07 14: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