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퍼니 제 562호 (2006년 09월 11일)

자전거를 유난히 아꼈던 ‘시골농부’

기사입력 2006.09.07 오후 02:53

아버지의 존재란 참으로 오묘한 것이란 생각이 든다. 가까이 다가가기에는 너무 먼 당신이기도 하고 너무 멀리 하기에는 그 그림자가 너무 크다.

내 기억 속의 아버지는 늘 좋은 모습으로만 다가오는 건 아니다. 7남매의 막내로 자라서인지 고생의 끝자락에 태어나 곡기를 거른 기억은 없으나 형들의 말에 의하면 곡기를 참 많이 건너뛰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때마다 아버지는 일본과 중국을 드나들며 무슨 무역인지를(아마 밀수가 아닐까 싶지만 아버지는 이에 대한 자세한 얘기를 않는다) 한다고 자식들의 ‘민생고’를 외면하다시피 했다. 곡기 해결조차 어머니의 몫인 경우가 많았으니 7남매를 키우랴 곡기를 걱정하랴 어머니의 고초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음은 미뤄 짐작이 간다.

하지만 나에게 아버지는 매일 과수원으로 자전거를 타고 10리 길을 출근하고 해질 무렵에나 들어오시는 시골농부의 모습이 거의 전부다. 10년 전 74세의 나이로 돌아가시기 전까지 대부분 과수원과 함께한 기억만 있다. 큰형한테 물려준 과수원을 일흔의 나이까지 꾸준히 가꾸셨다.

아버지에게는 보물 1호가 바로 자전거였다. 누구에게서 산 것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이 일제 자전거는 중고로 산 것임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인생 절반을 같이한 소중한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아들이 많은 집에서 자식들이 자전거를 탈 만도 하건만 우리가 이 자전거를 탄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자전거는 바로 아버지의 권위였다. 간혹 형이 타고 나가 탈이 없으면 몰라도 고장이라도 냈을시에는 불호령이 말도 못할 정도였다. 항상 기름칠을 해 반들반들한 아버지의 자전거. 10리 길을 일주일에 6일은 꼬박 타고 다니셔도 펑크 나는 일 외에 잔고장이 난 기억은 별로 없다. 그래서인지 이 자전거를 타보는 것은 당시 중학생인 나로서는 지금 새 차를 뽑는 것만큼 설레는 것이었다.

하지만 내 기억 속에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때로는 자전거에 대한 사랑보다도 못한 대우를 한다는 기분이 들 때도 있었다. 시골에서는 좀 한다하는 성적을 올린 나도 아버지에게 칭찬을 들은 기억이 없다. 초등학생과 중학생 시절 반장을 한 적도 여러 번 있었지만 아버지에게 학교를 찾아와 담임선생님께 인사하라는 부탁은 생각지도 못했고 때로는 내가 반장이 됐다고 하면 몇 학년이냐고 되물어보실 정도였다. 자식이 많아 일일이 학년을 기억하지 못하시는구나 하고 넘어가려 했지만 내가 자식을 키워보니 이건 너무 심했다는 생각이 든다. 하여튼 이런 아버지였으니 자식사랑이 애틋할 리가 만무했다.

내 기억 속에 가장 또렷이 자리잡고 있는 기억 하나가 있다. 중학교 2학년 때다. 오전에 비가 내려 과수원에서 일찍 일을 마치고 귀가하시던 아버지는 다른 용무차 들렀다 우연히 내가 다니던 학교 앞을 지나치게 됐고 학생들이 하교하는 길이라 나를 찾았다. 하지만 내가 몇 학년인지도 모르시던 아버지는 나이 지긋한 선생님을 붙잡고 내 이름을 댔고 선생님이 학생을 시켜 나를 찾았다. 가방을 챙겨 부랴부랴 정문을 나서니 아버지가 자전거를 대놓고 기다리시는 것이다. 집에서 학교까지 2㎞ 정도로 짧은 거리는 아니었다. 그때 나눈 아버지와의 대화는 단 두 마디였다. “아버지, 나 몇 학년인지도 몰라?” “…” “나 우리 반 반장인 건 알아?” “…”

더 이상 물어봐 무엇 하랴. 이날 집까지 가는 동안 나는 아버지의 등을 뒤에서 꼭 껴안았다. 아마 아버지의 체온을 느낀 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을 것이다. 그것도 뒤에서….

그래서인지 나는 아들이 태어날 때부터 일부러 자주 껴안아주는 버릇이 생겼다. 물론 딸은 더 심하지만. 그런데 요사이 아들은 내가 안아주는 것을 싫어한다. 자기가 중학교 2학년이라고, 아빠보다 더 크다고, 그러니 이제는 괜찮다고….

나쁜 녀석이다. 사랑을 주려고 하는 게 아니라 나의 기억 속 아버지를 느끼려고 하는 내 마음을 이놈도 아버지가 돼야지 알까 싶다. 그래도 나는 술 한잔 기분 좋게 마신 날이면 아들 방에 들러 앙칼지게 안아준다. 수염으로 얼굴도 비비면서. 다음날 제발 그러지 말라는 소리를 듣더라도….

글/박재훈 코콤포터노벨리 대표

1963년 경북 영주 출생으로 홍보컨설팅 전문회사인 코콤포터노벨리의 대표를 맡고 있다. SK그룹 홍보팀장을 역임했으며 서강대 PR전공 석사, 미 오하이오대학 객원연구원을 거쳤다. 현재 몇몇 정부부처의 홍보위원을 맡고 있으며 대기업과 정부 및 정부 산하기관의 홍보컨설팅을 주로 하고 있다.



당사의 허락 없이 본 글과 사진의 무단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입력일시 : 2006-09-07 14: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