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멜로 혹은 연애영화의 계절이 다가온 듯하다. 지난해 이 시즌의 최고 흥행작이 황정민, 전도연 주연의 〈너는 내 운명〉이었다면 과연 올 가을 시즌은 어떤 영화가 성공의 자리에 오를까. 이중에서 김해곤 감독의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하 〈연애참〉), 송해성 감독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임상수 감독의 〈오랜된 정원〉, 김대승 감독의 〈가을로〉가 눈에 띈다. 특히 김해곤, 송해성 감독은 각각 〈파이란〉의 시나리오 작가, 감독이었다는 점에서 개봉 한 주 차이로 묘한 경쟁을 하게 됐다. 〈라이방〉, 〈태극기 휘날리며〉, 〈달콤한 인생〉 등 배우로 더 얼굴을 알린 김해곤은 사실 〈파이란〉, 〈블루〉, 〈이것이 법이다〉 등 시나리오 작가로도 명성을 쌓아왔다. 때로는 거칠기도 한, 한박자 빠른 대사와 걸쭉한 입담이 그가 보여준 재능이었다. 〈연애참〉은 그의 감독 데뷔작이자 첫번째로 쓴 본격 연애담이지만 그 특유의 구수한 입담으로 가득 차 있다.어느 날 밤거리의 여자들이 영운(김승우)이 일하는 갈비집에 들어선다. 장사 끝났다는 말도 무시하고 자리를 잡은 그녀들 중 연아(장진영)가 그를 불러 앉히더니 “나 아저씨 꼬드기려 왔어”라며 영화는 시작된다. 영운은 이미 약혼한 여자가 있었지만 그때부터 룸살롱 아가씨 연아와 연애를 시작한다. 활달하고 신경질적인 성격의 연아는 어릴 적부터 거칠게 함께 자라온 영운의 남자친구들과도 잘 어울린다. 연아는 룸살롱의 악랄한 전상무(김상호)에게 당당히 대항할 정도로 아가씨들 사이의 왕언니다. 그렇게 애정표현도 싸움과 욕으로 해결하는 영운과 연아는 마치 천생연분처럼 보인다. 늘 이를 못마땅하게 여기던 영운의 어머니(선우용녀)는 약혼녀 수경과의 결혼식을 반강제적으로 성사시킨다. 하지만 영운이 결혼한 후에도 연아와 영운은 계속 몰래 만난다.김승우와 장진영은 그동안의 이미지를 말끔히 털어낼 정도로 열연한다. 남자들의 음흉하고 은밀한 욕망을 그대로 드러내는 김승우와 능청스럽고 씩씩한 왕언니를 연기하는 장진영은 말 그대로 에너지가 넘친다. 김해곤 감독 특유의 거칠고 잡다한 디테일도 영화에 힘을 보탠다. 김승우의 친구들인 남성진, 탁재훈, 임승대 등도 말 그대로 할일 없이 시간만 많은 백수들의 구질구질한 일상을 실감나게 재현한다. 지나치게 거칠고 때로는 여성관객들이 불편해할 정도의 고성방가와 방석집, 룸살롱 장면들이 영화에 대한 감정이입을 방해하는 요소라면 요소다. 시사회 후 ‘수컷의 적나라한 배설’이라는 리뷰 문구까지 나오는 것을 보면 〈연애참〉을 향한 남녀관객들의 평은 극도로 엇갈릴 것으로 보인다. ‘사회가 용납하지 않는 사랑’이라는 측면에서 〈너는 내 운명〉이 동화 같은 판타지로 성공적으로 풀어냈다면, 〈연애참〉은 어딘가 현실의 틈을 뚫지 못한 것처럼 미지근한 기분을 남긴다. q주성철·필름2.0 기자 kinoeye@film2.co.kr개봉영화▶전차남한 청년이 전철 안에서 난동을 부리는 취객으로부터 젊은 여성을 구해낸다. 청년은 한눈에 반해버린 그녀로부터 보답의 의미라며 에르메스 찻잔을 선물로 받게 된다. 연애 초보인 그는 인터넷 게시판에 전후 상황을 설명하고 도움을 요청한다. 이른바 ‘전차남’이라 불리게 된 그에게 연애코치를 해주는 네티즌들이 하나 둘 생겨나기 시작한다. 일본 인기 TV드라마를 영화화했으며 <역도산>에서 설경구의 연인이었던 나카타니 미키가 출연한다. 감독 무라카미 마사노리. 주연 야마다 다카유키, 나카타니 미키▶호텔 르완다르완다 내전은 100만명이 넘는 엄청난 희생을 요구한 인류사의 참극이었다. 이 비극의 와중에 자신이 관리하는 호텔에 1,000명이 넘는 난민들을 피신시켜 1,268명을 죽음으로부터 구해낸 호텔 매니저 폴 루세사바기나의 실화를 <하트의 전쟁>의 감독 테리 조지가 스크린에 옮겼다. ‘아프리카판 <쉰들러 리스트>’로 알려진 <호텔 르완다>는 인간 존엄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분투한 한 남자의 감동 실화극이다. 감독 테리 조지. 주연 돈 치들, 소피 오코네도, 닉 놀테, 장 르노▶사이에서<사이에서>의 대무 이혜경은 삶을 스스로 선택하지 못했기에 남들과 다르게 살 수밖에 없다. 운명을 피할 길 없어 신내림을 받고 무당으로 살아가는 그녀가 무병을 앓는 스물여덟의 황인희를 만난다. 신을 거부하는 인희를 받아들여 가르치며 무당의 삶을 보여주는 사이 다른 인연들도 혜경을 찾아온다. 막연히 알고 있을 뿐 실상을 알지 못한 무당의 인생, <사이에서>는 그 속을 파고든다. 무당과 무속을 다룬 다큐멘터리라는 점에서 <영매>와 여러모로 비교해볼 만하다. 감독 이창재. 주연 이혜경, 황인희, 손명희, 김동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