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굴리기 공격적… 재테크 문외한 ‘옛말’

이는 국립·사립대를 막론하고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미 ‘안전제일’ 스타일의 보수적인 자산 운용은 찾아보기 힘들다. 있는 대로 굴려서 최대한 수익을 내자는 쪽으로 바뀌고 있다. ‘돈이 있어야 교육도 있다’는 냉정한 현실이 대학들을 확 바꿔 놓았다.변화는 펀드시장과 부동산시장에서 가장 두드러진다. 과거 대학 재단기금이나 연구기금은 투자 안전성이 높은 채권이나 정기예금으로 운용하는 게 일반적이었지만 최근 몇 년 사이 상황이 달라졌다.펀드시장에선 2003년 나온 삼성증권의 ‘YES 아카데미펀드’가 대표적이다. 연세(Yonsei), 이화(Ehwa)의 머리글자에서 이름을 따온 이 펀드는 두 대학의 자금으로 운용하는 사모펀드로, 설정 당시 1,170억원이었던 규모가 1년 만에 2,500억원으로 늘어났다. 삼성증권 측은 “대학 측 요청으로 펀드 수익률 등 세부 사항을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며 함구하고 있지만, 업계에서는 적어도 3,000억원대로 불어났을 것으로 보고 있다.서울대의 변신은 놀랄 지경이다. 최근 서울대는 발전기금 일부를 기업인수합병 사모펀드에 투자해 화제를 모았다. 올 초 중앙저축은행 인수를 위한 KTB자산운용, 부산저축은행 컨소시엄에 참여해 50억원을 투자한 것이다. KTB자산운용은 중앙저축은행의 지분 55%를 확보하고 상호를 중앙부산상호저축은행으로 바꿨다. 이후 지난해 1,472억원이던 수신고가 올 6월 말 2,268억원으로 늘고, 순손실 구조도 순익으로 돌아섰다. 이에 따라 서울대도 상당한 수익을 거두게 됐다는 후문이다.삼성증권 한 관계자는 “확정부 이자 지급식 예금에 집중해 오던 대학들에게서 심심찮게 문의가 온다”면서 “굳이 아카데미펀드라는 단독 상품이 아니더라도 상당한 대학 자금이 펀드시장에 진출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실제로 상위권 증권사, 자산운용사들은 대학 전용 펀드를 확보하고 있다. 대학이 원하는 스타일에 따라 펀드를 설정하고 운용하는 식이다. 다만 아직은 안전성이 강한 채권형펀드가 주종을 이루고 있다.대학들의 자산 운용 실적은 아직까지는 천차만별이다. 학교마다 운용금액이나 투자대상이 다르기 때문이다. 한국사학진흥재단이 집계한 바에 따르면 지난해 주요 사립대학들은 각기 수천억원대 자금을 운용해 1.4~5.4%의 투자수익을 거둔 것으로 나타난다. 특히 서강대는 총 1,634억원을 운용해 88억원(5.4%)의 높은 수익을 거뒀다. 경영학, 경제학 교수들과 동문 펀드매니저들이 주축이 돼 채권형펀드, 양도성예금증서(CD) 등으로 운용한 결과다.한편 전국 사립대학이 출자하는 4조원 규모의 주식형펀드가 조만간 등장할 가능성이 제기돼 눈길을 끈다. 이 경우 대학 보유 자금이 본격적으로 주식시장에 유입돼 주식시장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하지만 한국사학진흥재단측은 “한국증권업협회, 한국채권연구원 등과 함께 사립대학 전용 통합펀드 구성의 필요성에 대해 논의한 바 있으나, 구체적인 내용은 결정된 것이 없다”고 밝혔다.부동산시장에서도 대학들의 활약이 대단하다. 선두는 자타가 공인하는 ‘부동산 전문’ 건국대학교다. 재단 보유 부동산 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서 엄청난 수익금을 학교 재정에 보태고 있다. 대표적인 프로젝트는 서울캠퍼스 바로 앞에 위치한 광진구 자양동 더# 스타시티. 내년 입주를 앞두고 있는 스타시티는 2003년 5월 분양 당시 청약신청자만 9만4,000여명이 몰리고 1,177가구 아파트는 75대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자산운용 실적 ‘천차만별’건국대는 스타시티 프로젝트를 위해 별도의 자산관리사 건국AMC를 세웠다. 건국AMC는 원래 야구장·골프장 부지였던 학교 앞 땅 3만여평을 고급 주상복합아파트와 대형 유통시설로 개발하기로 하고 포스코건설을 시공사로 선정했다. 당시 분양 및 시공권을 따낸 포스코건설은 사업수익 3,182억원, 임대수익 2,085억원 등 총 5,267억원을 제시했다. 건국대로선 한방에 5,000억원이 넘는 수익을 확보한 셈이다.개발 수익금은 전액 건국대 발전에 쓰여진다. 새로 개원한 건대병원에 1,600억원 정도가 지원된 것을 비롯, 산학협동관, 제2학생회관 등 시설투자에 다각도로 활용될 예정이다. 이뿐만 아니라, 스타시티 개발이 완료된 후에도 연 300억원 정도의 임대수익이 기대돼 대학 재정 확충에 적잖은 윤활유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명지대도 부동산에 관심이 많은 대학으로 꼽힌다. 명지건설이 개발 사업을 주도하면서 재정 확충에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 최근에는 명지대 용인캠퍼스 안에 실버주택 ‘명지 엘펜하임’을 분양해 눈길을 끌었다. 서울대도 부동산 활용을 통한 수익사업에 관심이 많다. 최근 나온 ‘대학 재정확충 방안에 관한 연구 보고서’에는 서울대 소유 토지를 이용해 수익사업을 벌이는 방안으로 토지임대와 개발사업이 거론됐다. 또 채권 위주로 투자하고 있는 발전기금을 부동산 펀드에 투자하는 방안이 검토되기도 했다.학교기업들도 사업이 본궤도에 오르면서 학교에 짭짤한 수익을 안겨주고 있다. 교육인적자원부에 따르면 전국 4년제 대학의 학교기업은 총 34개. 이 가운데 4개 기업이 중간평가 탈락하기는 했지만 일부는 꽤 놀랄만한 실적을 거두는 것으로 나타난다.대표적인 곳이 경희대 수원캠퍼스의 학교기업 ‘한방재료가공’이다. 2004년 6월 설립된 이 회사는 건강보조식품 ‘경희오가피홍삼대보원’ 등 5가지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현대홈쇼핑에 처음 진출, 판매 물꼬를 튼 이래 9월엔 매출 100억원을 돌파하는 기염을 토했다. 대표를 겸하고 있는 김무성 한방재료가공과 교수는 “한방재료 가공에 관한 전문 지식과 인력을 바탕으로 품질만큼은 최고를 자부한다”면서 “전국 학교기업 가운데 선두의 성과를 내고 있다”고 밝혔다.대학이 보유한 특허들도 돈벌이 수단으로 부상했다. 연구실에 갖히기 일쑤인 신제품과 신기술들이 기업과의 연계를 통해 상용화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교육인적자원부와 한국학술진흥재단의 조사에 따르면 전국 146개 대학의 특허 출원 건수는 2003년 1,832건에서 2004년 2,151건, 2005년 2,861건으로 매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이에 따라 특허 수입도 증가해 기술료 수입은 2003년 31억8,000만원에서 2005년 63억2,000만원으로 늘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