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1위 로레알도 우리 제품에 반했죠’

로레알, 존슨앤드존슨, 태평양, 엘지생활건강, 더페이스샵…. 이들의 공통점은? 첫째, 국내외 굴지의 화장품회사라는 것. 둘째, 코스맥스로부터 화장품을 공급받는다는 것.코스맥스는 화장품업계에서 ‘얼굴 없는 강자’로 통한다. 이 회사는 화장품 제조업체이지만 자사 브랜드로 판매하는 제품이 없다. 그러나 매년 4,600만개의 화장품이 경기도 화성 코스맥스 공장에서 나온다. 코스맥스는 제품 개발부터 디자인까지 자체 기술력으로 생산하는 제조자설계생산(ODM) 전문업체다. 국내외 100여개 화장품업체에 ODM과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을 통해 제품을 공급하고 있다. 화장품 소비자들은 코스맥스는 몰라도 이 회사가 만든 화장품은 한 번쯤 써보기 마련이다.“화장품 연구·생산이라는 한우물만 팠더니 국내는 물론 세계 화장품업계로부터 인정을 받게 됐습니다. 화장품 사업의 변화를 잘 읽어낸 것도 회사 성장요인으로 꼽을 수 있겠지요.” 이경수 대표(60)의 말이다.국내 화장품 ODM업계 ‘대부’로 떠오른 그는 원래 제약회사 출신이다. 서울대 약대를 졸업해 1981년부터 92년 코스맥스를 차리기 전까지 11년 동안 대웅제약에서 근무하며 마케팅 전무까지 역임했다. 제약 분야 외곬인생을 살아오던 그가 제약사를 그만두고 업계 경력이 전무한 화장품 분야를 창업아이템으로 택한 것. 원료개발에서 완제품 생산까지 모든 개발과정에서 인체 적용시의 효능과 부작용을 고려해야 한다는 점에서 제약과 매우 유사한 사업분야라는 판단에서였다.“한국은 화장품 사업을 하기에 유리한 나라입니다. 매년 4계절을 맞이하니까 겨울용 화장품을 개발하면 한대지방에 팔고 여름용 화장품을 개발하면 열대지방에 팔 수 있지요. 게다가 우리나라 사람들이 손재주도 좋고 예능적인 감각도 뛰어나 화장품 사업이 유망하다고 봤습니다.”그는 창업결심을 하자마자 즉시 일본으로 건너가 현지 시장을 살펴봤다. 당시 일본 화장품업계는 생산과 판매가 분리되는 추세였다. 이대표는 국내에도 이 같은 추세가 그대로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그래서 창업 당시부터 코스맥스를 ODM 전문업체로 키우기로 마음먹었다.그는 무엇보다 연구개발(R&D)에 회사역량을 집중시켰다. “회사 창립 때부터 아예 경영방침으로 연구개발을 선두에 내세웠어요. 회사 로고인 사과 3개 가운데 하나가 바로 항상 연구하는 자세를 상징하는 ‘뉴턴의 사과’지요.”인간에게 선과 악을 가르쳐 준 ‘이브의 사과’와 그리스신화의 패리스가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에게 바쳤다는 ‘아름다움의 사과’와 함께 ‘뉴턴의 사과’는 이대표 경영철학의 상징으로 꼽힌다.그는 국내 일류 화장품회사들로부터 우수 연구진을 영입하고 서울대, 이화여대, 아주대 등 대학들과 공동연구를 진행했다. 이탈리아 인터코스 등 세계적인 화장품 ODM 업체들과의 기술제휴에도 발벗고 나섰다. 매출 대비 7% 가량을 매년 연구개발 비용으로 쏟아부었다.이 같은 연구개발 투자는 서서히 성과를 나타내기 시작했다. 태평양, 코리아나, LG화학, 더페이스샵 등 국내 대표 화장품기업들이 코스맥스의 기술력을 인정하고 잇달아 ODM을 맡겼다. 2004년에는 세계 1위 화장품업체인 미국 로레알로부터 색조화장품 ODM을 따내 업계를 놀라게 했다. 당시 로레알은 일본과 유럽의 유수 화장품 ODM 업체들과 코스맥스를 저울질하다 코스맥스를 최종 파트너로 선정했다. 코스맥스는 현재 로레알을 비롯, 존슨앤드존슨, 뉴트로지나, 메리케이 등 외국 브랜드에 전체 생산물량의 20% 가량을 공급하고 있다.코스맥스가 생산하는 화장품 가운데 90% 이상은 자체 연구소에서 개발한 제품이다. 최근에는 국내 화장품업체로는 처음으로 호주연방약품관리국의 품질관리인증을 획득하는 개가까지 올렸다. 지금까지 식품의약품안전청으로부터 승인받은 기능성화장품 품목만 300여건에 달한다.중국시장 개척 통해 지속성장코스맥스의 성장에는 화장품업계의 시장변화도 한몫을 했다. 2004년부터 불어닥친 저가 화장품 열풍이 그것이다. 더페이스샵 판매물량의 대부분을 공급해 온 코스맥스는 더페이스샵이 저가 화장품으로 업계의 다크호스로 떠오르면서 덩달아 급성장했다. 2003년 경기침체로 전년에 비해 7.2% 감소했던 연간 매출은 2004년에는 더페이스샵 공급물량이 폭증하면서 48.2%나 증가했다. 영업이익은 10배로 뛰어올랐다. 지난해에도 매출이 34% 늘어나는 고속성장을 이어갔다.그러나 코스맥스가 유리한 상황만을 맞고 있지 않다. 최대 고객인 더페이스샵에 대한 판매물량이 감소될 우려가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화장품 ODM 업계 경쟁사인 한국콜마가 최근 더페이스샵의 관계사인 믹스앤매치를 인수해서다. 이에 따라 코스맥스 공급물량의 상당부분을 한국콜마가 가져갈 가능성이 큰 상황이다. 코스맥스의 더페이스샵 매출은 전체 매출의 38%에 달한다. 이대표는 이에 대해 “더페이스샵 공급물량은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면서도 “위기는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그동안 더페이스샵 일변도로 매출을 키워오다 보니 더페이스샵 경쟁사들과 거래할 수 있는 기회가 적었습니다. 현재 그동안 제품을 공급하지 못했던 3~4개 업체와 제품공급을 논의하고 있습니다. 단기적으로는 매출이 줄겠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새로운 거래처 확보로 더욱 커질 것으로 봅니다.”이대표는 해외사업도 강화할 계획이다. 지난해 매출의 20%를 차지했던 수출비중을 올해는 25%로 늘린다는 목표다. 코스맥스 제품이 일본 경쟁사 제품보다 30~50% 가량 저렴해 해외시장 개척은 크게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중국시장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그는 “중국이 앞으로 2~3년 후에 코스맥스의 가장 큰 해외시장이 될 것으로 보인다”며 “한국에서 14년 만에 일궈놓은 성과를 중국에서는 5년 만에 얻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또 특정 회사에 품목 일부만 공급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해당 회사의 모든 품목을 공급하는 방안도 추진해 매출을 극대화하기로 했다.이대표는 이 같은 회사의 성장성을 토대로 코스맥스를 코스닥에서 코스피시장으로 이전하는 작업도 진행하고 있다. 기업의 대외신인도를 높이고 주가의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그는 “기관과 외국인들도 유가증권시장에 속할 경우 펀드편입이나 주식 추가 취득에 좀더 자유로울 수 있다며 이전을 원하고 있다”고 밝혔다. 코스맥스측은 상장심사가 성공적으로 끝나면 12월께 상장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이대표는 ODM 화장품 사업의 전망을 밝게 보고 있다. 화장품의 생산·판매 분리 추세가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또 우리나라도 프랑스 등 선진국처럼 화장품에 대한 제조자 표시 의무가 없어지면 ODM 수요가 더욱 늘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이대표는 ‘회사 키우기’에 몰두하느라 요즘 매일 밤 11시께 집에 들어간다. 그는 “일이 너무 바빠 좋아하는 바둑도 잘 두지 못하고 있다”고 고충을 털어놓았다. 그는 아마3단의 실력자다.이대표는 ‘만화광’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서울 사무실과 경기 화성공장, 거래처를 차로 오가며 주로 만화를 보며 시간을 보낸다. 하루 읽는 만화책이 평균 2~5권 정도.“어렸을 때부터 책읽기를 좋아했어요. 그러다 직장생활을 하면서부터 독서시간이 부족해 읽는 데 시간이 적게 걸리는 만화를 주로 보게 됐지요. 만화라면 종류를 가리지 않고 볼 정도로 좋아합니다.” 최근에 인상 깊게 읽은 만화책은 와인을 소재로 한 <신의 물방울>. 이외에도 <미스터 초밥왕>, <시마과장>, <대사각의 요리사>, <고스트바둑왕> 등이 그가 추천하는 작품들이다.“<미스터 초밥왕>에서는 초밥 하나도 애정을 가득 담아 만드는 주인공의 장인정신이 소개됩니다. 저도 이런 장인정신으로 최고의 화장품을 만들고 싶어요.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인정받는 그런 화장품 말입니다.”이대표는 “지금처럼 화장품 연구·생산에 주력하면 앞으로도 좋은 결과가 있을 것으로 본다”며 “코스맥스를 세계 일류회사로 키워낼 것”이라고 말했다.약력:1946년 경북 포항 출생. 66년 포항고 졸업. 70년 서울대 약학과 졸업. 73년 동아제약 마케팅팀 근무. 76년 오리콤 근무. 81년 대웅제약 근무(마케팅 전무이사 역임). 89년 서울대 경영대학원 최고경영자 과정 이수. 92년 코스맥스 창업 및 대표이사(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