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소리다!’가전제품 외피를 장식한 아름드리 꽃밭 위로 나비가 날아들고빨강, 노랑, 초록의 옷을 입은 형형색색의 CI가기업 이미지를 대표하는, 그야말로 ‘디자인 시대’다.식상하게 들릴 정도로 너도나도 디자인의 중요성을 역설하는이때에 마케터들이 관심을 갖고 챙겨야 할 게 또 하나 늘었다. 다름 아닌 청각 디자인.가격 대비 효용성이 좋다는 이유로, 또는 감성적인 접근이 쉽다는 점에서 노래와 소리로 무장한 TV 광고와 기업 홍보 방식이 늘었다. 소리와 마케팅,과연 어떤 관계이기에 사방팔방 독특한 노랫소리가 울려 퍼지는 것일까.평소 출근 준비를 하며 아침 TV뉴스를 즐겨보는 직장인 김지현씨(31)는 채널을 돌리다 잠시 멈추고 멍하니 TV 화면을 바라봤다. 평소 같으면 광고를 피하기 위해 벌써 채널을 돌렸을 그녀지만 친근한 멜로디가 흘러나오는 광고가 독특해 눈을 뗄 수 없었던 것. 그녀의 시선을 사로잡은 광고는 최근 방영을 시작한 한 적립카드 광고로 늘씬한 여자모델이 나오는 것과 달리 부조화에 가까운 트로트 멜로디가 흘러나와 김씨는 출근 준비를 멈추고 TV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시킬 수밖에 없었다. “평소 뉴스를 틀어놓고 소리만 들으며 출근 준비를 하는 편인데 코믹한 CM송 때문에 화면을 보게 됐다”는 김씨는 “노래가 은근히 중독성이 있어서 아침 내내 흥얼거렸다”고 말했다.김씨의 사례에서 보듯 마케팅의 중요한 요소로 ‘징글’(Jingle)이 최근 주목받고 있다. 김씨처럼 TV광고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던 소비자를 CM송을 활용해 적극 공략하고 있다는 이야기다.본래 징글은 기업이나 상품의 이름을 인상적으로 전하기 위해 특별히 제작한 소리나 음악을 말한다. 넓은 의미로는 단순한 음향효과부터 브랜드 로고에 간단한 음이 붙는 로고 사운드, 가사가 붙는 CM송까지 확장해 볼 수 있다.징글 등 광고의 소리는 바꾸기 쉬워 소비자에게 늘 다른 느낌을 전달할 수 있다. 따라서 요즘처럼 시각적 표현요소가 홍수를 이루는 경우 적은 비용 부담으로 다른 느낌을 주기 위해 종종 활용된다.이 같은 특징의 징글을 효과적으로 적용한 대표적인 사례가 에쓰오일(S-Oil)이다.지난 4월부터 에쓰오일은 광고모델인 배우 김태희, 차승원, 영화감독 박찬욱 등이 ‘오늘은 왜 이리 잘나가는 걸까… 나는 에쓰오일, 에쓰오일이니까’라는 노래를 흥얼거리는 CM송 광고를 내보내 소비자들의 머릿속에 브랜드명을 확실히 각인시켰다.제일기획이 제작한 이 광고는 최근에는 배우 손예진, 차승원, 가수 싸이로 모델만 교체해 같은 CM송 광고로 계속되고 있다.직장인 김지현씨가 TV 화면에 시선을 고정케 한 오케이캐쉬백 광고 역시 징글을 재치 있게 활용한 예다. TBWA가 제작해 11월1일부터 방영을 시작한 이 광고는 트로트 멜로디에 ‘열 번 찍어 안 넘어간 그 아가씨, 넘어 갔네 넘어 갔어~ 행복해 죽겠나봐’라는 코믹한 가사를 넣어 묘한 중독성을 지닌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노래는 대외홍보에도 효과 만점징글의 다양한 활용은 광고 분야에만 그치지 않는다. 광고업계에서 CM송이 대세라면 각 기업의 홍보와 애사심 고취 수단으로 대대적으로 쓰이는 것은 로고송이다. 기존에 기업에는 사가라는 것이 있지만 감성경영 차원에서 젊은 직원들이 좋아하는 록이나 힙합 버전의 기업 이미지 송을 만드는 사례가 늘고 있다. 특히 이렇게 제작된 로고송, 또는 기업의 CM송을 응용한 비즈링(biz-ring)을 활용하는 기업이 많아진 게 요즘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트렌드다. 비즈링은 기업체가 원하는 음악이나 멘트를 회사 임직원 휴대전화 통화연결음으로 쓸 수 있게 하는 ‘대외 서비스용 통화연결음’이다. 서비스와 직접 관련이 있는 이동통신업체에서나 활용했던 비즈링 서비스는 최근에는 금융권을 중심으로 널리 확대되는 추세다. 비즈링 전문업체 애드사운드에 따르면 올해 비즈링 서비스 이용 기업은 지난해에 비해 2배 이상 늘었다. 현재 비즈링 이용 고객은 10만명 이상으로 추산된다. 그중에서도 징글을 넣은 고급화된 비즈링이 요즘 트렌드라는 게 김유진 애드사운드 사장의 말이다. 그에 따르면 애드사운드 이용 기업의 80% 이상이 기업의 CM송을 비즈링의 음원으로 쓰고 있다. 그는 이처럼 비즈링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로 자리잡고 있는 배경에 대해 “장기적으로 기업 이미지의 호감도를 상승시켜 주는 수단이 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일종의 세뇌효과가 나타난다는 것. 따라서 보험, 교육업체 등에서 비즈링에 대한 뜨거운 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설명이다.비즈링을 적극 활용하는 대표적인 사례는 우리은행, 신한은행 등 은행권이다. 이들 역시 노래를 활용한 비즈링의 대외 홍보 효과나 직원들의 애사심 고취 효과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이다. 2004년 여름부터 희망 직원에 한해 비즈링 서비스를 제공해 온 신한은행의 한 관계자는 “번호이동으로 비즈링 서비스가 함께 해지된 경우에도 꼭 다시 비즈링 서비스를 신청할 정도로 직원들의 반응이 좋다”고 말했다. 신한은행은 1만4,000여 직원 중 3,000여명이 비즈링 서비스를 이용 중이다. 은행측은 비즈링 서비스를 시작한 계기에 대해 “비용은 저렴하지만 홍보효과는 좋기 때문”이라면서 “요즘은 멘트는 줄이고 음악 위주의 음원을 쓴다”고 설명했다. 결국 로고송과 IT기술이 만난 비즈링이 비용 대비 효과가 높은 대외 홍보 겸 직원들의 자부심 강화 도구로 거듭난 셈이다.중독성에 어필하는 CM송 늘어사실 로고송은 이미 각종 이벤트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로 자리를 잡았다. 일부 기업의 경우 CEO가 기업의 비전을 설명하는 데 로고송을 활용하기도 한다. 그밖에도 선거 등 정치 이벤트에서도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게 로고송이다. ‘하이서울’(Hi Seoul)로 도시 마케팅을 적극 펼치고 있는 서울특별시 역시 ‘하이서울 징글송’과 같은 로고송을 적극 활용하기도 했다.그렇다면 왜 지금 이렇게 청각효과가 중시되는 것일까. 징글을 쓴 광고가 많아진 이유에 대해 광고제작자들은 우선 감성마케팅이 주류로 떠오른 데서 그 이유를 찾고 있다. 에쓰오일 광고 제작사인 제일기획측은 “‘품질이 우수하다’는 내용을 감성적으로 접근하기 위한 수단으로 노래를 떠올리게 됐다”고 제작배경을 밝혔다. 기획을 맡은 이원열 AE는 “광고를 기획했을 당시 에쓰오일은 매장수가 많지 않은데다 시장점유율도 높지 않았지만 품질이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마니아층이 많았다”면서 “하지만 품질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를 하기 어려운 정유업계 특성상 사실 제시보다 감성적으로 이 같은 사실을 강조하자는 게 기획의도였다”고 말했다.사회적인 분위기도 CM송 등 징글의 확산을 부추기는 요인이 된다. 전문가들은 노래는 시각적인 것보다 재미나 흥미를 직접 유발할 가능성이 더 높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등 오감 중 청각이 감정 유발 효과가 가장 크다는 이도 있다. 특히 요즘처럼 대내외적으로 암울한 이슈가 많은 때일수록 기업 브랜드를 흥미와 재미를 유발하는 방향으로 포장해야 설득력이 강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펀(Fun)마케팅 차원에서 재미를 부여한 CM송이 인기를 얻으며 확산되고 있다는 분석이다.최근에는 UCC(User Created Contents) 등장으로 인한 콘텐츠 파급효과도 간과해서는 안될 청각 마케팅의 주요 배경이다. 일부 코믹한 CM송을 쓴 광고의 경우 각종 동영상 UCC에 패러디 형식으로 변형돼 새로운 콘텐츠로 변신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아예 UCC를 자사 사이트에서 직접 만들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이 등장하기도 했다.사실 TV광고에서 징글이 새로운 기법은 아니다. 하지만 최근 광고들을 보면 CM송 등 청각 요소가 유난히 많기도 하고 또 예전과 그 컨셉부터 달리하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손이 가면 손이 가~ 아이 손, 어른 손, 자꾸만 손이 가’처럼 스토리 중심의 CM송과 달리 요즘 광고에 등장하는 노래는 주로 쉬운 멜로디에 무조건 브랜드명만 반복해 읊조리는 경우가 많다. 한마디로 중독성, 또는 세뇌효과를 노린 CM송이 늘고 있다는 이야기다. 롯데삼강의 아이스바 ‘초코퍼지’ TV광고의 경우 ‘쫀득쫀득 초코초코 초코퍼지’라는 단순 반복되는 가사가 담긴 CM송을 배우 김아중이 부르면서 춤을 추는 게 내용의 전부다. 이 광고를 기획한 대홍기획의 김상훈 AE는 “단순 반복을 통한 중독성을 노렸다”면서 “요즘 ‘골목대장 마빡이’라는 코미디 프로그램이 인기 있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단순 반복되는 현상에 대해 사람들이 중독되는 것을 요즘 트렌드로 봤다”면서 “‘초코퍼지 따라하기’라는 동영상이 등장했을 정도로 광고에 대한 반응이 뜨겁다”고 자평했다. 그에 따르면 요즘처럼 바쁜 시대에는 TV나 라디오를 보거나 듣지 않아도 항상 틀어놓는 이들이 많다. 따라서 이런 시청자와 청취자들의 귀를 번쩍 뜨이게 해줄 수 있는 CM송은 이처럼 브랜드명만 가지고 친숙한 운율을 붙인 스타일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최근 새로 기획한 다른 클라이언트의 광고도 CM송 광고로 만들었다. 광고주의 반응도 좋았다는 게 그의 말이다. 또 아웃백스테이크하우스의 광고에 등장하는 CM송 역시 ‘아웃백 아웃백 아웃백~’처럼 브랜드명만 반복하는 형식이다.무엇보다도 광고전문가들이 말하는 청각마케팅 트렌드의 주요인은 청각효과의 특성 그 자체에 있다. 삼성전자만 하더라도 유례없이 최근 노트북 등의 가전제품과 관련해 윙크와 독특한 차임벨 소리로 시각과 청각을 자극하는 광고를 만들어 집행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박정현 LG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청각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던 삼성전자가 이제 ‘귀까지 사로잡겠다’는 각오로 나선 것”이라면서 “글로벌 업체 인텔의 사례처럼 광고와 정보의 홍수 시대에 설명보다 청각으로 소비자 머릿속에 확실히 브랜드를 각인시키겠다는 의도로 분석된다”고 말했다.<한국형 마케팅 불변의 법칙 33>의 저자인 여준상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33가지의 한국형 마케팅의 하나로 ‘청각 자극 효과의 법칙’을 꼽기도 했다. 여 교수는 “한글과 영어로 된 브랜드는 문자 특성상 시각적 자극을 더했을 때보다 청각적 자극을 추가했을 때 호감도가 높아진다는 심리학 실험 결과가 있다”면서 “요즘 기업통합이미지(CI)를 새롭게 바꾸는 기업이 많은데 이런 경우 청각적 자극을 겸하면 효과가 높아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청각 자극은 종류가 많은데다 비용 대비 효과가 크다”면서 “특히 CM송의 경우 사람들에게 무의식적으로 따라 부르게 하는 효과가 있어 브랜드 인지도를 높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청각효과가 마케팅 차원에서 언제나 활용할 만한 가치를 지니는 것은 아니다. 여 교수는 “일상용품 등 저가 제품의 경우 CM송의 효과가 탁월하게 나타나지만 고가 제품의 경우는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김소연 기자 selfzone@kbizweek.comINTERVIEW 박순 광고 오디오 프로듀서‘소리에도 색깔이 있는 것 아세요?’“광고에서 징글은 꾸준히 쓰이는 기법이지만 최근에는 과학화되는 경향이 있습니다.”TV나 라디오 광고에서 음향효과와 배경음악(BGM) 선곡 등 제작의 소리와 관련된 모든 것은 오디오 프로듀서가 담당한다. 광고업계에서 전문가로 손꼽히는 오디오 프로듀서 중 한 사람인 박순 프로듀서(35)는 “10년 넘게 오디오 디자인을 해 오면서 요즘처럼 과학화된 청각 디자인에 신경 쓴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음계 중에서 ‘솔’이 가장 사람을 편하게 하는 소리라고 하죠. 그것처럼 광고에서 어떤 음을 쓰느냐에 따라 기업의 이미지도 달라집니다.”그는 징글 사용이 광고업계에서 보편화됨에 따라 최근 소리와 색채를 연계한 방식을 시도하고 있다고 밝혔다. 오디오 프로듀서의 감에 의한 청각 디자인에서 한 차원 진화된 방식을 쓰고자 한다는 이야기다.박 프로듀서에 따르면 최근에는 거의 대부분의 기업이 징글을 제작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그 이유를 “영상과 오디오의 정보량이 다르다”는 데서 찾았다.“최근 본 영화라고 해도 모든 장면이 기억에 남지는 않죠. 하지만 영화음악은 오랜 시간이 흘러도 기억됩니다. 또 음악을 활용하면 그 음악을 들었던 시기로 돌아가게 하는 일종의 ‘회상’(recall) 기능을 하기도 합니다.”박 프로듀서는 특히 ‘오디오는 영상물의 반’이라고 할 만큼 막대한 영향력을 미친다고 강조했다. 그는 오디오의 이런 역할을 두고 ‘귀에는 귀꺼풀이 없다’는 말을 하곤 한다. 눈에는 눈꺼풀이 있어 정보를 가려서 받아들일 수 있지만 귀로 듣는 정보는 거부할 수 없어서다. 결국 오디오만 잘 활용해도 장문의 카피보다 기업이미지를 더 잘 전달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그는 광고의 청각 요소를 디자인할 때 중요한 것 중 하나는 ‘풋 인 도어’(Foot In the Door) 테크닉이라고 강조했다. 단시간에 소비자 마음에 파고들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발을 들여놓는 게 성공의 반이라는 겁니다. 물건을 팔고자 하는 마음 이전에 일단 문을 열고 들어가서 이야기하자는 거죠. 그러니 음악이나 사운드 디자인으로 당장 물건의 장점을 이야기한다기보다 소비자가 광고의 멜로디를 흥얼거릴 수 있게 만드는 게 중요합니다.”예컨대 그가 오디오를 맡았던 ‘국제전화001’의 경우 크리스마스캐럴 중 ‘Joy to the World’의 멜로디를 따서 만든 식이다.대한민국광고대상 등 국내 광고상과 클리오·칸 등 해외 유명 광고제에서 수상하기도 박 프로듀서는 “광고음악이 음반시장에서 하나의 장르가 됐을 정도로 소리는 좋은 비즈니스 아이템”이라면서 “광고 오디오 디자인을 ‘뮤직 비즈니스’로 발전시키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