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거리 구세군의 종소리와 자선냄비가 연말이 되었음을 알린다. 올해도 어김없이 신문엔 불우이웃돕기 성금으로 어떤 독지가와 기업이 얼마를 쾌척했다는 흐뭇한 기사가 눈에 보인다. 최근 이러한 우리 사회의 나눔 운동에도 서서히 변화의 바람이 일고 있다. 해마다 기부 활동 참여자들의 숫자와 1인당 기부금액이 늘어날 뿐만 아니라 기업들의 사회적 책임 활동이 획기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우리나라 기업들이 지출하는 사회책임 비용도 2000년 7000억 원 수준에서 작년 말에는 2배나 늘어나 1조4000억 원을 넘어섰다. 그러나 그 규모보다 큰 변화는 의식의 변화다. 주로 감성적이고 일회성 기부 활동에 머무르던 것이 점차 지속적이고 참여적인 사회책임 활동으로 옮아가고 있다는 점이다.이렇게 기업의 사회책임 활동이 해마다 증가하는 데도 우리 사회의 기업에 대한 불만과 비판은 늘어나고, 반기업 정서는 더 빠른 속도로 높아만 가고 있다. 그 이유는 기업이 예전보다 더 부패했다거나 더 투명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라 경영환경의 변화 때문이다. 첫째는 기업에 대한 기대치가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져 실제 기업의 사회책임 활동과 격차가 점차 커진다는 것이다. 기업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이에 상응하는 사회적 책임을 요구한다.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하라든가, 환경오염에 책임을 지라든가, 노동자나 소비자를 착취한다든가 등의 다양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둘째는 기업을 둘러싼 이해관계자 집단이 많고 다양해졌다는 점이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홈페이지 정도를 가지고 있는 비정부기구(NGO)만도 5000개에 이른다고 한다. 이들 단체들은 대개 특정한 이슈를 중심으로 모이며 자신들의 이익 추구에 적극적이다. 그리고 구성원의 단체에 대한 충성도가 강하며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이들 단체가 모두 반기업적 성격을 가진 건 아니지만 대부분 기업에 비판적인 시각을 가진 경우가 많다. 셋째는 정보통신의 발달이 이해집단을 조직화하고 이들의 주장을 확산하는 데 효과적이라는 점이다. 사이버 공간은 시공을 초월해 같은 생각을 가진 동조자를 모으는 데 효과적이며, 순식간에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예전 같으면 몇 사람의 종업원이나 고객에 국한됐을 사건도 전체 종업원 혹은 고객의 문제로 쉽게 확대된다. 마지막으로 향상된 생활 수준과 높아진 교육 수준이 국민들에게 비판적 시각을 갖게 만들어 놓았다.이렇다보니 자유 시장경제 학자였던 밀턴 프리드만이 말하는 ‘기업의 유일한 책임은 경제적 이익을 내는 것’이라는 20세기적 기업의 정의가 더 이상 적용되기 어렵다. 21세기를 맞으면서 컨퍼런스보드(conference board)는 6개 대륙의 주요 인사 1000명을 대상으로 ‘21세기 기업의 책임이 무엇인가’에 대해 설문조사했다. 그 결과 사회적 가치를 위해 헌신하며, 환경을 생각하고, 기업의 이익을 서로 나누며 올바른 방식으로 이윤을 창출하는 기업이 곧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이런 착한 기업이 성공하는 기업이냐는 것인데, 지금까지의 결과에 의하면 착한 기업이 오래 살아남는다는 것이다. 사회적 책임을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기업은 소비자에게 좋은 이미지를 심으며, 종업원들의 모럴을 높여 매출 증대와 수익성 향상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실제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 활동을 반영한 미국의 ‘다우존스 지속가능성 지수(DJSI)’의 뛰어난 실적이 이를 반영하고 있다.그런데 이젠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자발적인 활동으로만 놔두지 않을 전망이다. 국제표준화기구(ISO)는 기업 및 정부, NGO 등에 적용 가능한 사회적 책임의 국제표준을 제정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늦어도 2008년에는 마무리될 것으로 보이는 ‘ISO 26000’ 사회적 책임의 표준은 인증 목적이 아니고 지침임에도 불구하고 준규범적 성격을 가진 국가 표준이 될 전망이다. 이뿐만 아니라 자본시장에서는 사회적책임투자(SRI) 펀드의 규모가 커지면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압박하고 있다.성공하기를 바라는 기업, GE처럼 100년을 넘게 지속가능한 경영을 원하는 기업은 기업에 대한 사회의 새로운 요구에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착한 기업이 곧 좋은 기업으로 최후의 승리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김주현 현대경제연구원장 jhkim@hri.co.kr1952년 경북 울산 출생. 80년 서강대 영문과 졸업. 89년 미 애리조나주립대 경영학박사. 2000년 현대경제연구원 경영전략본부장. 2004년 현대경제연구원 대표이사 원장(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