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종연횡 가속…‘대형화 넘어 산업화로’

지난 3월 2일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관심을 집중시킨 일이 있었다. 신동엽 유재석 등 최고의 MC들을 보유한 DY엔터테인먼트(이하 DY)가 팬텀엔터테인먼트그룹(이하 팬텀)에 합병된 것이다. 이 인수·합병(M&A)의 의미는 단순히 한 업체가 또 다른 업체를 인수했다는 것 이상의 ‘사건’이었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최근 무섭게 덩치를 키워가고 있는 팬텀이 명실상부한 업계의 ‘공룡’으로 자리매김했고 이에 따라 쇼 오락 프로그램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미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이와 관련, 팬텀의 이주현 이사는 “예능 프로그램은 드라마에 비해 제작비가 적게 들어 안정적인 수익 창출이 가능한 데다 강호동이 진행하는 <엑스맨>이 중국에 진출하는 등 드라마에서 시작된 한류 열풍이 예능 분야로 옮겨가고 있다”며 “<황금어장> 등 오락 프로그램의 자체 제작 경험을 결합해 시너지 효과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한 우물로는 생존 어렵다’엔터테인먼트 업계가 대형화되고 있다. 과거 엔터테인먼트 기업들은 매니지먼트, 음악 사업, 드라마 및 영화 제작 등 분야별로 특화된 사업을 중심으로 성장해 왔지만 최근에는 이 모두를 영위하는 종합 엔터테인먼트 기업을 지향하며 몸집 불리기에 가속도를 내고 있는 것이다.대형화를 물꼬를 튼 것은 정우성 조인성 김혜수 전도연 등 유명 영화배우들이 대거 소속된 IHQ였다. 매니지먼트로 시작한 이 회사는 2003년 영화 제작사인 아이필름을 설립한데 이어 2005년에는 게임 개발사인 엔트리브와 케이블 방송 PP 사업자인 YTN미디어를 인수했고 지난해에는 영화 제작사 청어람에 지분 투자를 했다. 이에 따라 IHQ는 매니지먼트, 영화 제작, 미디어 사업, 게임 퍼블리싱 등을 영위하는 종합 엔터테인먼트사로 업그레이드됐다.최근 들어 대형화 측면에서 가장 주목받는 기업은 팬텀이다. DY와 결합은 한 예에 불과하다. 2005년 음반 기획사 이가엔터테인먼트, DVD 업체 우성엔터테인먼트, 플레이매니지먼트를 인수했고 지난해엔 영화 배급 업체 인터클릭과 영화 제작사인 팝콘필름을 인수했다. 그 결과 팬텀은 매니지먼트, 음악, 영화 및 드라마 제작, 예능 프로그램 제작, 영화 유통 등 엔터테인먼트에 속하는 거의 모든 영역의 사업을 할 수 있게 됐다.티엔터테인먼트(이하 티)의 약진도 관심을 모은다. 코스닥 게임 업체인 나코엔터테인먼트가 2006년 음악 전문 기업인 티를 인수한 후 사명을 바꾼 이 회사는 같은 해 매니지먼트 기업인 지티비엔터테인먼트를 합병하며 대형화의 길에 들어섰다. 이어 지난해 말에는 차승원 유지태 손예진 송일국 등이 소속된 바른손필름의 모회사인 컴퍼니브이의 최대 주주로 올라서며 대형 매니지먼트 기업으로서 입지를 강화했다. 또 지난 3월에는 <주먹이 운다> <야수와 미녀>를 제작한 시오필름을 인수해 제작 사업도 겸하게 됐다.HOT 보아 동방신기 등 아이돌 스타의 산실인 SM엔터테인먼트(이하 SM)는 최근 김민종 윤다훈 등 중견 탤런트들을 영입하며 연기자 매니지먼트 사업에 진출한 상태다. 기존의 소속 연기자인 손지창 오연수 고아라 이연희 등과 시너지를 내는 한편 신인 연기자 발굴을 통해 연기자 매니지먼트 사업을 강화하고 궁극적으로는 종합 엔터테인먼트 기업으로 성장한다는 방침이다.업계가 앞 다퉈 대형화에 나서는 이유는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기존의 메이저 업체들이 이미 대형화돼 있는 데다 대기업들이 출자한 회사들이 등장하면서 경쟁은 더욱 격화됐고 이 틈바구니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덩치를 키우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한 가지의 사업만으로는 수익을 내기 힘든 구조”라며 “대형화의 일차적인 목표는 점유율 확보이고 궁극적인 목표는 수익 창출”이라고 말했다.지속성장 위한 전문성 확보 ‘시급’업계의 관계자들은 “한 우물을 파서는 도저히 먹기 살기 힘든 구조”라고 한목소리를 낸다. 연기자 매니지먼트의 경우 소속 연기자들과 계약 관계를 계속 유지하려면 영화든 드라마든 출연을 시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연기자들은 다른 둥지를 찾게 마련이다. 물론 소속 연기자들을 좋은 작품에 마음먹은 대로 출연시킬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운 얘기다. 반면 대형 스타를 많이 보유하고 있거나 직접 영화를 제작한다면 고민은 사라지게 된다.기존의 사업 모델로는 수익을 내기 힘들다는 것도 대형화, 종합화의 요인이다. 국내 엔터테인먼트 업계는 이례적으로 스타 의존도가 높아 수익의 상당 부분을 스타가 차지한다. 심지어 ‘11 대 0’ 구조라는 말까지 한다. 전체 수익을 10으로 했을 때 스타가 11을 가져가는 일도 있다는 것이다. 사정이 이쯤 되면 기존의 사업을 기반으로 새로운 수익 모델을 모색할 수밖에 없다. 최근 기업들이 신인 발굴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도 스타들의 몸값이 지나쳐 수익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드라마 제작을 주력으로 하는 팬의 한 관계자는 “최근 스타들과 작가들의 몸값이 2~3배 올랐지만 방송사의 제작비 지원은 제자리걸음이어서 시청률이 높아도 수익을 내기 어려울 지경”이라며 “한 번 오른 몸값은 잘 내려가지도 않아 어려움을 겪는 업체가 부지기수”라고 우려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팬의 <소문난 칠공주>는 대형 스타가 없이도 높은 시청률을 올렸다”며 “유명 연예인 없이도 흥행할 수 있는 기획력을 갖출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대형화 트렌드 자체가 대형화를 부추기기도 한다. 대형 엔터테인먼트 기업의 힘이 강해지면서 소형 업체들의 영향력은 상대적으로 축소되고 있고 이에 따라 너도나도 몸집 불리기에 나선다는 것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한국의 콘텐츠가 한류를 일으키며 해외에서도 관심을 끌고 있고 이 시장이 점점 커지고 있는데 작은 기업이 연예인들의 해외 진출을 제대로 지원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며 “업계의 대형화 바람은 한동안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수익 창출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업체들이 극심한 실적 부진에 빠져 있다. 매니지먼트 업계의 삼성전자라고 불리는 IHQ가 지난해 54억 원의 적자를 기록한 것을 비롯해 SM 팬텀 티 등 상장 기업들의 상당수가 적자를 냈다. 팬과 태원엔터테인먼트 정도가 지속적으로 흑자를 내고 있다. 팬의 당기순이익은 2004년 24억 원, 2005년 26억 원, 2006년 36억 원으로 매년 꾸준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실적 악화에 따라 상장된 엔터테인먼트 기업들의 주가는 전고점에 비해 절반 이하로 떨어진 상태다. 유명 연예인을 영입하거나 소속 스타들에게 유상증자를 한 경우 또는 우회상장에 성공했을 무렵에 반짝 상승하다가 곧바로 내리막길을 걷는 움직임을 반복하고 있다. 한두 기업이 아니라 업계 전체가 역성장하고 있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시장은 성장하는데 수익을 내는 기업이 손에 꼽을 정도고 실적에 상관없이 한 업종에 속하는 종목 전체가 곤두박질치는 모습은 분명 비정상적이다.우리투자증권의 이왕상 애널리스트는 “상당수의 엔터테인먼트 기업들이 관련 규정이 허술한 우회상장을 통해 주식시장에 진입한 만큼 적지 않은 불확실성이 존재한다”며 “스타들에 유상증자를 했다고 기업의 내재가치가 개선되는 것은 아니므로 투자에 유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이 애널리스트는 “엔터테인먼트 기업들의 불확실성이 제거되지 않는 한 관련 보고서를 접하는 것도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스타들이 아니라 기업의 시스템에 의한 수익 창출이 미래의 지속 성장을 위해 절실하다는 점에 이의를 제기하는 관계자들은 거의 없다. 엔터테인먼트 사업의 ‘산업화’가 이뤄져야 하며 최근의 대형화 종합화는 산업화를 앞당기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아직은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산업화 과정은 이미 시작됐다고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팬텀의 이주현 이사는 “업계의 화두가 대형화를 거쳐 수익 창출로 넘어갈 것”이라며 “고유한 수익 모델과 전문성을 확보하고 있다면 소형사라도 얼마든지 생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