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 코미디와 환상 로맨스 ‘결합’

사랑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은 무엇일까. 섣불리 답을 구하기 전에 질문 자체에 어폐가 있음을 지적해야 할 것 같다. 실연의 상처에 적용되는 가장 효과적인 약은 시간이되, 시간은 말 그대로 충분한 회복기를 제공해야만 비로소 그 약효를 발휘하기 때문이다. 산뜻하게 봉합되지 않는, 지난하고 고통스러운 시간의 터널을 지나며 이별의 날카로운 상처는 아물어가고 심장을 도려낸 듯한 아픔에 괴로워하던 이는 이전의 자기 자신과 조금은 다른, 새로운 자신을 발견하며 한 발짝 걸음을 내딛는다.‘아픈 만큼 성숙해진다.’ 〈캐쉬백〉은 새삼 놀랄 것 없는 이 통속적 진리를 제시하되, 그것을 시간에 대한 재치 있는 사유로 조리하는 영리한 작품이다.미대생 벤(숀 비거스태프 분)은 여자 친구 수지에게 호되게 차인 뒤 ‘도대체 사랑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끝도 없이 징글징글한 불면증에 시달리던 그는 결국 넘쳐나는 시간을 다른 일에 활용하기로 마음먹고 대형 마트에서 야간 근무를 시작한다.벤은 마트의 야간 근무자들이 지루한 시간을 흘려보내는 각자의 비책을 갖고 있음을 깨닫는다. 우스꽝스러운 권위 의식과 은근한 성추행으로 소일하는 점장, 시계를 절대 쳐다보지 않음으로써 시간 자체를 의식하지 않으려는 샤론, 유아적인 장난질로 시간을 보내는 맷과 베리.그러던 어느 날 벤은 역설적이게도, 시간을 멈춤으로써 시간을 버텨내는 방법을 발견하게 된다. 사진처럼 정지된 시간 속에서 벤은 어린 시절부터 매혹의 대상이었던 여성들의 나체를 감상하고 화폭에 옮기면서 그동안 자신이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놓쳐 왔던 삶의 소소한 순간들, 그리고 그 순간 안에 스며 있는 아름다움을 발견하기 시작한다.저명한 패션 사진가 출신인 숀 엘리스 감독은 벤이 시간을 멈출 때 나타나는 ‘프로즌 월드(frozen world)’를 통해 시각적인 유희를 극대화했다. 소비 사회의 전시장이라고도 할 수 있는 대형 할인 마트는 벤의 상상 속에서 예술 작품을 위한 무대 공간이 되고, 진열장에 빼곡히 늘어선 상품들은 앤디 워홀의 작품을 연상시키는 화폭의 다채로운 배경으로 변화한다.정지된 시간의 무대 위에 선 여성들의 나체는 남성의 관음증을 충족하는 개체라기보다는 일상의 공간에 균열을 내는 하나의 초월적인 상징에 가깝다. 본래 숨 막히는 현실을 잊기 위한 일종의 도피처로 ‘프로즌 월드’를 만들어낸 벤은 결국 정지된 시간을 음미하며 자신의 예술적 욕망을 채우는 동시에 침묵이 가져다주는 성찰을 통해 집착을 벗고 새로운 사랑을 찾는다. 결국 실연의 고통은 시간을 통한 성숙으로 아픔의 대가를 돌려받게(cashback) 되는 것이다.〈캐쉬백〉은 본래 2004년 발표됐던 17여 분 분량의 단편을 장편으로 확장한 것이다. 아카데미 단편 부문에 노미네이트됐고 각종 영화제를 휩쓸었던 단편의 충격 효과는 사실상 어쩔 수 없이 감소됐고 전체적으로 크게 달라지지 않은 줄거리 역시 장편의 러닝타임을 견디기엔 다소 밋밋한 감이 있다. 하지만 실연이라는 흔한 소재를 취해 그것을 시간에 대한 성찰로 확장하고, 그 사유의 결과를 시각적으로 완벽에 가깝게 재현해 낸 〈캐쉬백〉은 쉽게 흘려보내기 너무나도 특별한 사랑 이야기다. q최하나·씨네21 기자 raintree@cine21.com개봉영화▶쉬즈 더 맨셰익스피어의 대표적 희곡 〈십이야〉를 각색한 로맨틱 코미디물. 축구에 푹 빠져 있는 여고생 비올라는 여자 축구팀이 학교에서 해체되자 쌍둥이 남동생 세바스찬으로 가장해 그가 다니는 학교의 축구팀에 잠입한다. 케이블 채널 ‘니켈오디언’의 간판 프로 〈아만다 쇼〉의 아이돌 스타, 아만다 바인스가 비올라로, 〈스텝 업〉의 채닝 테이텀이 비올라와 연애 곡선을 그리는 듀크로 등장한다.▶스파이더맨3샘 레이미 감독의 블록버스터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 이제 대중의 영웅으로 떠오른 스파이더맨(토비 맥과이어 분)은 메리 제인(커스틴 던스트 분)과의 결혼을 꿈꾸며 행복한 고민에 빠지지만 샌드맨과 고블린, 베놈 등 새로운 악당들의 출현으로 또 다른 싸움에 돌입한다. 3억 달러라는 할리우드 영화사상 최대의 제작비를 들였다.▶아들살인을 저지르고 무기수로 복역 중인 강식에게는 세 살 이후 얼굴을 보지 못한 아들 준석이 있다. 모범적으로 수감생활을 한 덕에 단 하루의 휴가가 주어지자 강식은 아들을 만나기로 한다. 어색한 두 사람 사이에는 침묵이 흐르지만 장진 감독 특유의 유머와 판타지를 통해 부자간의 끈끈한 정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국경의 남쪽〉 이후 다시 코미디가 아닌 감성적 연기를 펼치는 차승원이 아버지 역을, <천하장사 마돈나>의 통통했던 류덕환이 ‘완소 훈남’으로 변신해 아들 역을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