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소녀의 파란만장 궁중 체험기

종종 역사 속 인물들은 허구의 창조물이 쫓아갈 수 없는 극적인 드라마로 다양한 서사 장르를 매혹하곤 한다. 프랑스 대혁명 당시 단두대에서 죽음을 맞이한 마리 앙투아네트가 바로 그러한 인물이다. 루이 16세의 왕비였던 그녀는 허영과 사치, 성적 방종 등으로 비난받으며 민중의 증오를 한 몸에 받던 여인이었으며, 그녀의 삶은 소설과 영화 등 온갖 매체를 통해 극화됐다.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딸로도 잘 알려진 소피아 코폴라 감독의 영화 〈마리 앙투아네트〉는 사치와 방종으로 점철된 마리 앙투아네트의 기존 이미지를 답습하는 대신, 그녀의 삶을 지극히 개인적이고 내밀한 방식으로 조명한다. 어리고 철없는 한 소녀,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낯설고 적대적인 세상에 홀로 던져진 소녀는 무엇을 느꼈으며 어떻게 살아갔을까.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가의 황녀로 태어난 마리 앙투아네트는 오스트리아와 프랑스의 동맹 관계를 공고히 하기 위한 수단으로 열네 살의 나이에 프랑스 황태자와 결혼하게 된다. 눈이 부시도록 화려하되, 일거수일투족을 일일이 재단하는 규율들이 숨통을 죄는 베르사유 궁전에서 그녀는 점차 빛을 잃어간다. 인간적인 정이라곤 느껴지지 않는 남편은 모든 대화를 단답형으로 하고 마리의 몸에 손도 대지 않는 반면, 오스트리아 궁정은 두 나라의 관계를 안정시키기 위해선 마리가 빨리 아이를 임신해야 한다며 그녀를 끊임없이 몰아세운다. 남편의 사랑도,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상대도 얻지 못한 마리는 옷과 구두를 사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노름하는 것에서 위안을 얻으며 궁정 생활에 적응해 나간다.소피아 코폴라 감독이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데뷔작 〈처녀 자살 소동〉의 촬영을 마쳤을 때였다. “마리 앙투아네트가 프랑스의 왕비가 됐을 때 철없는 십대였지”라며 친구가 지나가듯 던진 말에 그녀는 매혹됐고, 마리 앙투아네트의 삶을 소녀의 시점에서 조명해 보고자 결심했다. 감독은 그녀를 욕망의 화신으로 깎아내리지도, 역사의 희생양으로 미화하지도 않는다. 궁 밖의 삶을 알 능력도, 기회도 주어지지 않은 소녀. 그녀는 ‘악녀’가 아니라 어쩌면 이해할 수 없는 세계 속에서 나름의 방식으로 살아남고자 했던 쓸쓸한 존재였다.그래서 〈마리 앙투아네트〉는 밤새 호화로운 파티를 즐기다가도, 다음날 아침 홀로 욕조에 몸을 웅크리고 있는 소녀의 젖은 어깨를 담담히 응시한다. 섬세한 심리 묘사 외에도 〈마리 앙투아네트〉의 놓칠 수 없는 독특함은 현대적인 감각에서 비롯된다. 빠른 리듬의 팝 음악과 발랄한 핫 핑크의 색상을 사용하는 영화는 마리 앙투아네트를 역사책의 페이지 속에 박제시키는 대신 현대의 관객들의 시선 앞에 그녀의 존재를 바짝 가져다 놓는다. q최하나·씨네21 기자 raintree@cine21.com개봉영화▶와일드 이노센스젊은 영화감독 프랑수아는 마약 중독을 이겨내려는 한 여성을 다룬 영화를 준비 중이다. 하지만 제작비를 구하지 못해 괴로워하던 중 어느 날 거리에서 여배우 지망생 루시를 만나 첫눈에 사랑에 빠지고 그녀를 자신의 영화에 주연으로 캐스팅한다. 포스트 누벨바그의 대표주자 필립 가렐 감독의 연출작으로, 2001년 베니스 국제영화제 국제 비평가상을 수상했다.▶넥스트필립 K 딕의 소설 〈골든 맨〉을 영화화한 SF 스릴러. 2분 후의 미래를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라스베이거스의 마술사 크리스(니콜라스 케이지 분)는 카지노에서 총기 강도 사건을 예견하고 사고를 방지하려다 도리어 총기 강도 사건에 휘말린다. 한편, 그의 능력을 알아챈 FBI 요원(줄리안 무어 분)은 로스앤젤레스에 핵폭탄이 설치된다는 정보를 입수, 이를 해결하기 위해 크리스의 행방을 쫓는다. 〈007 어나더 데이〉의 리 타마호리 감독.▶우리에게 내일은 없다현실로부터 탈출을 꿈꾸는 종대(유아인 분)는 진짜 총을 갖는 게 꿈이고, 대리 운전으로 힘겹게 살아가는 기수(김병석 분)는 몰디브에서 멋진 드럼 연주를 하는 게 희망이다. 어느 날, 그들은 안마시술소에서 폭행 사건에 휘말려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내몰린다. 〈마이 제너레이션〉으로 평단의 주목을 받은 노동석 감독의 두 번째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