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앞의 돈을 보면 잃는 것이 더 많아’

딱 1년 전이었다. 그룹 오션의 전 멤버인 오병진(31)이 남자들을 위한 쇼핑몰에 대한 모종의 계획을 꾸미고 있을 때, 그를 말리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이미 쇼핑몰이 넘쳐났기 때문이다. 남자들을 위한 쇼핑몰은 여자들을 타깃으로 하는 쇼핑몰에 비해 상대적으로 수요가 적다는 이유도 작용했다.하지만 그의 생각은 달랐다. 수십, 수백 개의 쇼핑몰을 둘러보았지만 자신을 만족시켜 줄만한 쇼핑몰은 없었다. 싸이월드 개인 홈페이지를 운영하면서 올린 사진 한 컷마다 ‘형이 쓴 모자, 어디서 구입하신 거예요?’, ‘형처럼 멋진 스타일링을 하고 싶어요’ 등등의 질문과 찬사가 담긴 쪽지와 댓글이 쏟아졌다.비슷하고 허접스러운 다수의 것과 제대로 된 한 가지 중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선택은 언제나 ‘제대로 된 한 가지’에 집중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머릿속에 아이디어가 넘쳐났고, 그 아이디어를 실현할 방법들도 너무 뚜렷했다.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그가 가진 자산, 주변에 그 일을 함께 할 수 있는 사람들만 힘을 실어준다면 분명 승산이 있는 사업이었다.그리고 그의 생각은 단박에 적중했다. 2개월의 준비 기간, 그리고 오픈 9개월. 가진 것이라곤 각자의 전문성과 스타일, 그리고 아이디어가 전부였던 그는 다른 세 명의 남자(김도경 윤태원 예학영)와 손을 잡고 온라인 쇼핑몰을 오픈했다.이 회사가 지금은 월매출 수억 원과 직원 23명의 ‘기업’으로 성장했다. 스타일과 패션에 관심 있는 남자들이라면, 혹은 스타일에 죽고 못 사는 여자들까지도 ‘로토코(www.loto-co.com)’를 모르면 ‘간첩’이다. 남자들을 위한 쇼핑몰 중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단연 1위의 온라인 쇼핑몰로 급부상한 것이다. 어지간한 용기가 아니면 손을 대기 어려운 오프라인 숍도 청담동 한복판에 문을 열었다.오병진의 이력은 정말 다채롭다. 가수와 모델이라는 직업은 그의 이력서 한쪽에 아주 조그맣게 기록될만한 작은 일부에 불과하다. 유통업에 종사하는 아버지 덕에 갓 스물의 나이에 유통 업체 지점장으로 일하며 물류의 흐름을 배웠고 대학 다닐 때는 그의 스타일리시한 외모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가락시장 야채 장사도 했다. 금융업에 종사하는 매형을 따라 금융 업계에서도 일했다. 레스토랑과 인테리어 업체도 운영해 봤다.전문성과 인맥이 최고의 무기무엇이든 거저 얻어지는 것은 없다. 성공이든 실패든 그에겐 모든 게 자산이다. 사업가로서의 기질은 그냥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체육학과를 졸업하고 경영학과에 편입해 새롭게 공부를 시작한 것도 그 때문이다. 물론, 이론과 실전은 매우 달랐다.“지금 경제 분야의 전문가라고 하는 분들도 아마 직접 사업을 해 보면 성공할 확률이 높지 않을 거예요. 이론과 실제는 정말 천지차이니까요. 이론과 실무를 모두 갖추지 않으면 성공하기 힘들어요. 거기에 철저한 자기 관리, 성실성은 기본이죠.”연예인이라는 타이틀만 내건, 겉멋만 부린 사업은 애초부터 그에게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지금도 하루 수면 시간은 5시간 이내로 철저히 제한된다. 아무리 늦게 잠들어도 아침 7시면 일어나 하루도 빼놓지 않고 운동을 하는 자기 관리가 병행된다. 술과 담배도 그와는 맞지 않는 기호품이다.쇼핑몰을 계획하면서 가장 먼저 생각한 것은 같이 사업을 꾸려나갈 동업자들을 모으는 일이었다. 연예계의 마당발인 만큼 이리저리 아는 사람도 많고, 사업을 구상하는 이들도 많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남자들을 위한 스타일 숍’에 걸맞은 전문성이었다. 아무리 아이디어가 좋아도 그것을 실현시켜 줄 탄탄한 전문성이 없으면 헛일이라는 것이 그의 판단이었다. 유명한 연예인들과 함께 하면 초반에 반짝 매출을 올릴 수는 있겠지만 그 뒤로는 감당할 수 없는 일이 너무 많아진다는 것도 반드시 고려해야 할 점이었다.“저는 운영과 기획 등 실무 전반을 책임질 만한 경험과 노하우가 있었어요. 필요한 건 스타일을 제대로 보여주는 일이었죠. 그래서 모델이자 연기자인 학영이가 스타일을 보여주는 일을 맡아 주었으면 했죠. 그리고 우리의 비주얼을 비주얼답게 보여줄 사람이 필요했어요. 그래서 뮤직비디오 감독인 도경이에게 사업을 제안했습니다. 우리만의 차별화된 스타일을 만들기 위해선 신예 디자이너인 태원이의 도움도 절대적으로 필요했고요.”전문가 4명. 잘 되면 좋지만 대박이 나지 않으면 들인 공에 비해 각자에게 돌아가는 수익이 많지 않아 힘겨워질 수도 있었다. 대단한 위험 부담이었다. 하지만 정말 제대로 하기 위해선 꼭 필요한 사람들이었고 그의 아이디어에 세 남자 모두가 흔쾌히 동의했다. ‘돈이 안 되면 어떤가. 우리를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는, 다른 사람들도 동참하고 어울릴 수 있는 멋진 스타일 숍을 만들자’, 그것만으로도 동기 부여는 충분했다. 지금은 개인적인 사정으로 모델 예학영이 뉴질랜드로 떠났고, 그 빈자리를 모델 전준홍이 채우고 있다. 전준홍은 2004년 사진작가가 선정하는 올해의 남자 모델상을 수상했을 정도로 경력이 화려하다. 지금은 배우가 된 주지훈과 함께 패션계를 주름잡던 모델계의 투톱이었다.남자들의 끈끈한 동지애. 그들의 합작품인 로토코 사이트를 클릭해 보면 가슴이 두근거릴 만큼 멋지게 펼쳐지는 화보와 금요일 밤의 근사한 클럽 파티를 연상시키는 음악이 마음을 사로잡는다. 사이트에서는 화보에 나오는 옷과 소품, 심지어 그들이 화보를 위해 이용한 선탠 프로그램까지도 품목별로 구매가 가능하다. 구매 고객에게는 평소 친분이 있던 홍대 클럽 DJ들이 리믹스한 라운지 음악과 하우스 음악 앨범을 함께 보내준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남자들이 닮고 싶은 스타일의 모든 것을 판매하고 선물하는 것이다.홍대 앞 등서 파티 통해 ‘스타일’ 전파자체 디자인을 늘려가면서 단순한 쇼핑몰이 아니라 브랜드로 입지를 굳히는 것에도 한발 성큼 다가섰다. 쇼핑몰이 잘 되니까 한번 해보자가 아니라 처음 사업 구상 단계에서부터 철저하게 계획했던 일이다. 준비 기간이 2개월이라고는 하지만, 시간이 길다고 제대로 준비되는 것은 아니다. 해야겠다고 마음먹는 순간부터 ‘공격적으로 일하는 것’이 오병진의 사업 스타일이다. 하지 않고 후회할 바엔 해 보고 느끼는 게 낫다는 것이 그의 첫 번째 경영 마인드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 돈에 연연해 사람을 보지 못하면 돈은커녕 가장 중요한 사람마저 잃고 만다. 함께 일을 하기로 했으면 무조건 믿고 함께하는 것, 그래서 그의 회사에서는 갓 입사한 막내의 아이디어와 의견조차도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소중한 자산이다. 로토코의 모든 구성원은 유기적인 관계 속에서 자유롭게 움직이는, 모두가 각자의 몫을 해내는 물, 혹은 공기와 같다.“금전적 손해는 만회할 수 있지만 사람을 잃으면 아무 것도 회복할 수 없어요. 며칠 전 첫 세일을 진행했는데 그 수익금의 절반은 불우한 아이들을 돕는 데 기부하기로 했어요. 나만 잘 먹고 잘 사는 게 무슨 소용이겠어요. 사람이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어요. 지금의 로토코도 모두가 함께 만들어 가고 있다는 게 가장 중요한 존재 이유죠.”로토코는 모든 운영을 담당하는 총괄팀과 물류 배송을 책임지는 물류관리팀, 자체 디자인을 담당하는 디자인 생산팀, 인터넷 쇼핑몰을 관리하는 웹팀, 그리고 오프라인 매장을 운영하는 오프라인팀 외에 다른 회사에는 없는 독특한 업무를 담당하는 기획부서가 하나 더 있다. 파티와 스타일을 기획하는 팀이다. 얼마 전 홍대 앞 클럽에서 파티를 열었고, 오는 6월 두 번째 파티를 기획하고 있다. 판매를 하는 것에 그치는 것은 그들이 원하는 바가 아니다. 스타일을 전파하고 그들과 함께 어우러지기를 원하는 사람들과 언제나 함께하는 것. 스타일을 꿈꾸는 사람들과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는 진정한 스타일 마니아들의 공간이 되기를 바라는 네 명의 패기 넘치는 젊은 남자들의 꿈은 서서히 현실이 되어 가고 있다. q글=김지은 객원기자 likepoolggot@empal.com사진=서범세 기자·사진자료 제공=로토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