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제 605호 (2007년 07월 09일)

대중 속으로 파고드는 ‘음악 전도사’

기사입력 2007.07.03 오전 11:25

대중 속으로 파고드는 ‘음악 전도사’
아이가 초등학교 다닐 즈음이면 피아노 학원에 보내고, 얼마간 시간이 흐르면 피아노 한 대쯤 들여놓는 것이 대한민국 가정의 통과의례가 되었다. 이렇듯 피아노 보급률은 꽤 높은 데도 클래식을 아끼고 좋아하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은 것은 안타까운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어릴 때는 한번쯤 접해 보았을 피아노지만 어른이 되어서는 대중음악 무대에 구색 맞추기로 끼어든 연주를 간간이 듣는 것으로 끝나고 마는 것이 다반사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일반인들이 알고 있는 피아노곡은 손가락에 꼽을 정도다. 베토벤이나 쇼팽이 작곡한 작품 중에서 영화나 광고에 삽입되거나 대중음악에 응용된 몇몇 개 수준이다. 클래식을 들을 기회가 많지 않은 데다 많은 연주가들이 대중을 만날 수 있는 무대에는 서지 않거나 대중이 듣는 자리에서는 흔히 들을 수 있는 곡만을 반복해 들려주는 것이 한 원인으로 지적된다.

악보를 연구하는 피아니스트

연주가와 대중의 만남이 흔치 않은 현실 속에서 피아니스트 김연정 씨(38)의 존재는 매우 값지다. 김 씨는 아름다운 가게의 나눔 음악회, 다일공동체(밥퍼)-테홈의 자선 음악회, 경찰청 시무식 등 열린 무대에 종종 서 왔다.

청계천 광장과 인테리어 매장처럼 정식 무대가 아닌 자리도 마다하지 않는 그녀의 모습은 그 자체로 많은 이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다. 게다가 그녀가 선사한 곡들은 라흐마니노프와 쇼팽의 작품 가운데 일반인들이 쉽게 들을 수 없는 것들이어서 더욱 신선했다. 대중 속으로 깊숙이 파고들고 있는 것이다.

“좋은 피아노곡이 참 많아요. 어떤 곡은 웬만한 댄스음악보다 신나고, 러시아나 헝가리의 음악 가운데는 한국인의 정서에 잘 어울리는 곡들도 많고요. 오랜 옛날부터 시대별로 다른 음악들이 나타났고, 지금도 예술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창작곡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사는 동안 과연 몇 퍼센트나 들을 수 있을까요. 1년에 서너 곡씩 새로운 레퍼토리를 개발하는 일은 연주하는 저와 듣는 사람 모두를 행복하게 만듭니다.”

처음에는 그녀도 일반인이 많은 곳이라면 으레 대중 매체에서 전파를 탔을 만한 곡을 골라서 연주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독주회에서 피아노 연주회라고는 난생 처음 왔을 듯한 직장인들이 낯선 클래식 연주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모르는 음악이라 해도 나름대로 느낌을 살려 즐기는 능력은 누구에게나 있었던 것이다. 그날 이후에는 확신을 가지고 자신이 소개하고 싶은 다양한 레퍼토리를 풀어내게 됐다. 지금은 눈물을 보이는 사람까지 있을 정도로 연주를 할 때마다 청중의 반응이 점점 좋아지고 있다.

김 씨에게 악보는 퍼즐이다. 악보를 연구해 연주로 풀어낼 때의 쾌감은 다른 것에 비교할 수 없다. ‘철저한 이성을 기반으로 감성을 증폭하는 객관적인 연주’가 김 씨가 추구하는 음악이다. 나이가 들수록 새 레퍼토리, 특히 대곡(大曲)을 개발하기 힘들다는 것이 음악계의 정설이지만, 그녀 자신은 계속 연구하는 자세가 연주가의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노력이 청중의 호응으로 돌아올 때 한결같은 자세를 유지할 수 있는 에너지를 얻곤 한다.

피아노를 연습하고, 이런저런 공연 무대에 서고, 모교에서 강의하는 것. 피아니스트인 김연정 씨 삶의 전부다. 피아노를 치고 있지 않는 순간에도 그녀의 머릿속에는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피아노가 들어차 있다.

여덟 살에 피아노를 시작한 이후 다른 방식의 삶은 상상해 보지 못했다. 그녀는 피아노를 사랑하는 사람에 비유한다. 그것 없이 살 수 있다고 해도 스스로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버리고 삶이 모든 의미를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에는 그림을 그릴 생각도 잠깐 했었어요. 피아노로 여러 콩쿠르에 입상하기 시작했고, 예원 콩쿠르 우승으로 장학생이 되면서 피아노만을 하게 되었습니다. 보스턴음악원을 마칠 때까지 거의 장학생으로 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피아노를 배우는 동안 물질적인 한계를 느낀 적은 거의 없습니다.”

‘피아노만으로 충분히 행복한 삶’

대중 속으로 파고드는 ‘음악 전도사’
한계는 자기 자신 안에 있었다. 피아니스트치고는 작은 손과 몸집은 그녀가 극복해야 하는 콤플렉스였다. 한때는 피아노 옆에서 먹고 자면서 하루 열세 시간씩 연습하던 시절도 있었다. 그야말로 피나는 노력을 한 것이다. 콤플렉스를 극복하는 데는 보스턴 시절의 은사인 피아니스트 김정자 선생의 도움이 컸다.

선생의 지도를 통해 손끝과 피아노를 연결해서 일체로 받아들이고, 소리를 내기 전에 소리를 생각하는 방법을 배웠다. 이제는 마음과 몸이 완전히 준비되었을 때 편하게 연습하는 여유가 생겼고, 오히려 작은 몸에서 나오는 큰 음악과 강한 연주가 그녀의 강점이 되었다.

유일한 취미이자 특기이자 직업인 피아노를 하고 있어서 감사하다는 김연정 씨. 더 좋은 연주에는 철학, 문학, 역사를 아우르는 지식이 필요하기에 책을 읽는 정도의 곁눈질이 외도의 전부다. 휴식은 하루에 한 시간 정도 남편과 안단테 템포로 걷는 산책만으로 충분하다. 앞으로는 더 많은 사람들과 자신이 사랑하는 피아노를 나누는 일만이 남았다.

“음악을 하면서 그동안 여러 무대에 서 왔지만, 기억에 남는 두 번의 연주회가 있습니다. 우선 자선 음악회를 통해 연주로 누군가를 돕는 일은 아주 좋은 경험이었고, 앞으로도 계속 하고 싶어요. 그런가 하면 2000석이나 되는 미국 무대에서 전원 기립 박수를 받았던 기억도 생생합니다. 많은 사람과 의미를 나누는 무대가 저에게도 가장 큰 의미가 됩니다.”

7월 4일에는 대전 예술의 전당에서 열리는 대전경찰청 개청 기념 음악회에 선다. 음악에 관한 한 철저하기로 유명한 강창우 씨의 지휘로 이뤄지는 공연이라 기대가 더욱 크다.

올 연말에도 어김없이 자선 음악회가 준비되어 있고, 세부 계획은 밝힐 수 없으나 차차 다양한 통로로 대중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늘려나갈 예정이다. 사실 예술과 대중의 폭 넓은 만남은 모든 예술가가 풀어야 하는 숙제 가운데 하나다.

좋은 예술이 무엇인지를 대중에게 보이고, 대중에게 받은 평가로 더 좋은 예술을 창조하는 쉼 없는 전진이 예술가가 짊어진 숙명이다. 아니 어찌보면 피할 수 없는 ‘업보’이기도 하다. 피아니스트 김연정의 활동이 대중과의 접촉면을 무한히 넓혀가기를 기대해 본다.

약력: 1970년생, 89년 서울예고 졸업, 93년 연세대 기악과 졸업. 98년 보스턴음악원 연주박사. 한국일보 콩쿠르, 예원 콩쿠르 우승. 보스턴 Honors 콩쿠르 Honors상 수상.

김희연 객원기자 foolfox@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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