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퍼니 제 605호 (2007년 07월 09일)

판치는 포퓰리즘… 경제 ‘난장판’

기사입력 2007.07.03 오전 11:47

판치는 포퓰리즘… 경제 ‘난장판’
중국 증시가 과열됐다는 지적이 많다. 상하이종합지수가 올 들어서만 50% 이상 올랐으니 거품 논쟁도 제기될 만하다. 그러나 이 정도로는 명함도 내밀지 못하는 나라가 있다. 바로 아프리카의 약소국 짐바브웨. 이곳의 종합지수(ZSE)는 연초 대비 상승률이 이미 4000%를 훌쩍 넘어섰다. 중국이 ‘거품’이라면 짐바브웨는 거의 ‘애드벌룬’ 수준이다. “짐바브웨 증시가 카지노로 변하고 있다”는 <파이낸셜타임스>의 최근 지적은 ‘비유’가 아니라 ‘사실’인 셈이다.

짐바브웨 증시가 이처럼 얼토당토않은 상승률을 기록하게 된 원인은 살인적인 물가에 있다. 갈수록 가치가 떨어지는 화폐를 조금이라도 유용하게 활용해 보려는 투자자들이 모두 증시로 몰리면서 세계 1위의 상승률을 달성한 것이다.

짐바브웨의 지난달 소비자물가는 전달에 비해 무려 55% 뛰었다. 연간으로 계산하면 전년 대비 4350%에 달한다. 이것도 경제 정책의 과오를 숨기려는 정부 발표치가 그렇다는 얘기다. 짐바브웨 경제를 잘 아는 전문가들은 실제 물가 상승률이 1만%가 훨씬 넘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최근 영국 신문 <가디언>과 인터뷰를 한 크리스토퍼 델 짐바브웨 주재 미국 대사는 한술 더 떠 “연말께 짐바브웨 인플레이션이 150만%에 달할 것”이라는 충격적인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손가락으로 숫자 하나하나를 되짚어 볼 정도로 믿어지지 않는 물가 상승률이다.

물가가 이처럼 미친 듯이 오르다 보니 짐바브웨 공식 화폐인 짐바브웨 달러는 거의 휴지 조각이 됐다. 짐바브웨 정부는 미화 달러당 250짐바브웨 달러로 환율을 고정해 놨지만 암시장에서는 1달러가 수십만 짐바브웨 달러의 가치를 지닌다. 1만 짐바브웨 달러짜리 고액지폐를 한 다발 들고 가봐야 고작 1달러짜리 지폐 한 장도 손에 쥐기 힘들다는 얘기다.

주식 시세판에 적힌 가격 역시 허상이다. 물가 상승률을 감안하면 별반 오른 것도 아니다. 현지 증권 브로커는 “메드테크라는 회사 주식 200주를 팔아봐야 시장에서 빵 한 조각 겨우 살 수 있다”고 설명했다.

무능한 정치권은 인심만 ‘펑펑’

기록적인 물가 상승으로 만화 같은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한다. 골프장에서는 음료수를 사 먹고 그 자리에서 돈을 지불하려는 고객들과 한사코 받지 않으려는 골프장 측의 승강이가 벌어지기 일쑤다. 18홀을 다 돌고 나면 음료수 값이 얼마나 더 오를 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최근 연금회사로부터 더 이상 공지문을 보낼 수 없다는 통지를 받았다. 그의 계좌에 남아 있는 돈이 우표 값에도 못 미친다는 것이다. 일부 회사들이 임금을 돈으로 주지 않고 식료품으로 지급하는 사례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휴지 조각과 다름없는 짐바브웨 달러보다 차라리 먹을거리를 달라는 근로자들의 요구가 거셌기 때문이다.

짐바브웨의 살인적 고물가는 무능한 정치권으로부터 비롯됐다. 가난의 원인을 외국 자본에 돌리는 무책임한 포퓰리즘(대중 선동정치)이 횡행하면서 국가 경제가 시들기 시작했다. 1987년 집권한 로버트 무가베 현 대통령이 2004년 실시한 농장 압류 조치가 대표적인 케이스. 외국인 소유의 민간 농장 2000여 곳을 국유재산으로 귀속하는 바람에 외국인 투자자들이 앞 다퉈 빠져나갔고 공장은 줄줄이 문을 닫았다. 생활필수품이 품귀 현상을 빚게 된 것은 당연한 수순. 무가베 정권은 국민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바닥난 외환 보유액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생필품 수입을 늘리기 위해 무작정 돈을 찍어냈다. 선거가 있을 때마다 엄청난 양의 화폐를 발행해 광부나 농부를 위한 보조금으로 지급하기도 했다. 최근엔 짐바브웨 증시에 상장돼 있는 외국인 소유 회사들의 지분 가운데 최소 50%를 짐바브웨 국민들에게 강제 매각하라는 법안도 준비 중이다. 이것 역시 내년 대선을 앞둔 선심 정책이다. 인플레이션을 자초하고 있는 셈이다.

〈블룸버그통신〉은 최근 남아프리카공화국 언론의 보도를 인용해 “짐바브웨의 무가베 대통령이 하야 후 망명을 고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20년 동안 이어진 철권통치도 인플레이션 앞에서는 속수무책인 모양이다.

안재석·한국경제 기자 yag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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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07-07-03 11: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