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퍼니 제 605호 (2007년 07월 09일)

원칙·소신으로 난제 풀어…금융시장 안정화에 기여

기사입력 2007.07.03 오전 11:48

원칙·소신으로 난제 풀어…금융시장 안정화에 기여
‘뚝심의 시장 지킴이.’ 윤증현 금융감독위원회 위원장 겸 금융감독원장에게 따라 붙는 수식어다. 윤 위원장은 지난 2004년 8월 취임 이후 강력한 카리스마와 업무 추진력으로 우리나라 금융 감독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오는 8월 4일 임기가 끝나면 ‘임기를 다 채운 첫 금감위원장’이라는 또 다른 수식어가 더해지게 된다.

금감위원장은 금융 분야의 사실상의 ‘수장’으로 불린다. 금융 관련 법률의 재·개정은 재정경제부 소관이지만 금융시장을 실제로 관리·감독하는 곳은 금감위다. 금융 정책의 파워는 신뢰에서 나온다. 시장 참여자들의 믿음을 얻지 못하면 무용지물인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금감위원장은 정부 내 관료 중에서 정권에 관계없이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법으로 임기가 보장되는 몇 안 되는 자리 중 하나다.

임기 채우는 첫 금감위 ‘수장’

하지만 4명의 역대 금감위원장 중 3년 임기를 온전히 채운 경우는 아직 없다. 경제부총리로 영전한 이헌재 초대 위원장을 빼고는 모두 ‘자의 반 타의 반’의 경질성 인사로 중도 하차하고 말았다. 금감위원장은 그만큼 외풍(外風)이 센 자리로 꼽힌다. 임기를 채운 첫 금감위원장의 탄생이 그 자체만으로도 큰 의미를 갖는 것도 이 때문이다. 1998년 출범한 금감위와 금감원의 통합 감독 체계가 10년 만에 비로소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다는 증표인 셈이다.

일각에서는 윤 위원장의 ‘장수(長壽)’가 의외라는 반응을 보인다. 장관급인 윤 위원장은 그동안 현 정부 내에서 드물게 ‘할 말을 하는 ‘고위관료’로 불려왔기 때문이다. 그는 예민한 사안에 대해서도 거침없는 소신 발언을 해 왔다. 때로는 참여정부 ‘코드’와 충돌하기도 했지만 전혀 개의치 않았다.

취임 이듬해인 2005년 터져 나온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분리를 규정한 ‘금산분리 원칙’을 완화해야 한다는 그의 발언은 이를 금과옥조로 여겨온 청와대 386 참모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하지만 윤 위원장은 “양심을 걸고 얘기하면 우리는 지금 어리석은 일을 범하고 있다”며 발언 수위를 지속적으로 높였고, 결국 금산 분리 재검토라는 숨은 현안을 사회적 공론의 장으로 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윤 위원장의 이러한 소신은 현 상태로는 매각을 앞둔 대형 은행들이 외국 자본에 넘어갈 수밖에 없다는 절박한 현실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여론과 정권의 눈치를 보지 않는 그의 강단 있는 업무 스타일은 생명보험사 상장이라는 18년 묵은 난제에 종지부를 찍는 원동력이 됐다. 생보사 상장은 보험사의 투명성 제고와 자본 확충을 위해 반드시 필요했지만 상장 차익의 계약자 몫 배분이라는 암초에 걸려 번번이 좌초했다. 역대 금감위원장이 하나같이 취임 일성으로 생보사 상장을 공약했지만 이해 관계자들의 첨예한 대립과 정치적 부담 때문에 얼마 지나지 않아 슬그머니 없었던 일이 돼버리곤 했다.

하지만 윤 위원장은 남다른 뚝심으로 생보사 상장을 밀어붙였다. 2005년 7월 “법과 원칙에 따라 상장안을 처리하겠다”고 발표한 것을 시작으로 이듬해 2월 상장자문위원회를 구성했다. 시민단체의 강력한 반발로 위원회 활동이 지지부진하던 2006년 7월에는 “생보사를 이대로 놔두면 구멍가게 수준으로 전락할 것”이라며 꺼져가던 상장 논의에 다시 불을 지폈다. 보험 업계의 적극적인 사회 공헌 활동을 주문해 1조5000억 원 규모의 공익 기금 조성 계획을 이끌어 낸 것도 그였다. 윤 위원장은 “생명보험사 상장 문제는 지난 18년간 뜨거운 감자였다”며 “이 감자를 만지려고 하니 너무 힘들다”고 숨겨진 고충을 토로하기도 했다.

윤 위원장을 가장 힘들게 한 건 특정 기업을 편든다는 일부 정치권과 시민단체의 공격이었다. 그는 이에 대해 “관료에 대한 모독”이라며 맞받아쳤다. 지난 4월 26일 금융감독위원회 정례회의에서 상장안이 최종 승인되는 순간 윤 위원장의 감회는 남달랐다. 임기 말인데 무리하는 것 아니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그는 담담하게 이렇게 답했다. “임기가 무슨 소용입니까. 할 일은 하는 거지요. (생보사 상장과 관련해) 18년 동안 정부가 시장에 죄를 지은 겁니다. 언제까지 미뤄둘 겁니까. 누군가 해야지요. 그래서 내가 한 겁니다.” 경제 리더십이 실종됐다는 지적이 나오는 현실에서 그의 행보는 더욱 두드러질 수밖에 없었다.

시장 관계자들은 취임 이후 ‘글로벌 스탠더드’와 ‘원칙’을 내걸고 금융시장의 안정과 금융회사의 경쟁력 제고를 이끌어낸 윤 위원장의 성과를 높이 평가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윤 위원장은 글로벌 시장의 변화 조짐이 나타날 때마다 선제적인 조치로 금융시장 안정화에 기여했다. 평소 선이 굵다는 평가를 받는 윤 위원장의 금융감독 철학은 ‘거시적 감독(macro-prudential supervision)’이라는 말로 요약된다. 금융회사들에 대한 미시적 감독에서 벗어나 금융 환경 변화에 신속하게 대응해 위기를 사전에 막는 선제적 대응의 중요성을 강조한 개념이다. 부동산 투기를 막기 위한 주택 담보대출 규제와 과거의 분식회계를 자진 고백하는 기업에 대한 처벌 경감, 외환위기 이후 금융시장의 불안 요인이었던 옛 5개 투신사와 카드사들의 구조조정 마무리 등도 윤 위원장의 작품이다.

뚜렷한 소신과 과감한 추진력으로 ‘역대 최고’라는 평가를 받는 윤 위원장이지만 과거 그에게도 시련의 계절은 있었다.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1971년 행정고시(10회)에 합격해 관료 생활을 시작한 윤 위원장은 재무부 과장 시절 탁월한 업무 능력으로 일찌감치 ‘차세대 장관감’으로 꼽히던 선두 주자였다. 정부 담당자들의 낮은 업무 이해도와 전문성 결여에 분통을 터트리던 금융사 관계자들은 윤 위원장을 만나면 그의 해박한 금융 지식에 깜짝 놀라곤 했다. 하지만 1997년 터진 외환위기는 승승장구하던 윤 위원장에 아픈 상처를 남겼다.

강력한 리더십과 추진력 돋보여

금융실명제 추진단장, 증권국장, 금융국장, 세제실장을 거쳐 1997년 1월 재정경제원 금융정책실장을 맡으면서 윤 위원장은 ‘환란’의 한복판에 서게 됐다. 그 후 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고 법적인 책임에서는 벗어났지만 한동안 ‘변방’으로 밀려났다. 1998년 세무대학장을 거쳐 1999년부터 5년 동안 아시아개발은행(ADB) 상임이사로 외국을 떠돌았다.

하지만 이때의 시련은 오히려 그가 금융계의 ‘거목’으로 다시 태어나는 밑거름이 됐다. 그는 ADB 생활 5년 동안 모든 것을 잊고 금융 서적 탐독과 영어 공부에 몰두했다. 이 시기 관료의 틀을 깨고 시장을 새롭게 배웠다는 것이 주변의 평가다. 국제 금융계 인사들과 친분을 쌓으며 국제적 시각도 한층 넓어졌다. 마침내 2004년 8월 5대 금융감독위원장으로 화려하게 컴백하며 그는 역량을 펼 수 있는 새로운 기회를 잡았다.

재임 기간에 윤 위원장이 각별한 관심을 쏟은 분야는 활발한 ‘금융 외교’다. 취임 후 2개월 만에 미국으로 가 앨런 그린스펀 당시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M) 의장을 만난 것을 시작으로 중국 일본 영국 독일 홍콩 태국 등으로 그의 발걸음은 거침없이 이어졌다. 월가를 비롯한 세계 주요 금융회사 최고경영자(CEO)들과의 라운드 테이블도 수시로 가졌다. 외국 금융당국자들을 직접 만나 국내 금융사들의 적극적인 해외 진출을 위한 지원 사격도 아끼지 않았다. 구조조정에만 매달리던 이전 금감위원장들과는 확연하게 달라진 모습이었다.

글로벌 활동에 나선 윤 위원장에게선 강한 자신감이 묻어났다. 그의 시선은 과거보다는 한국 금융의 미래로 향해 있었다. 우리나라가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글로벌 스탠더드를 정착시킨 만큼 국제 금융시장에서 제대로 대접을 받고 제몫을 해야 할 때가 됐다고 확신했다. 윤 위원장은 “외환위기 때 외국자본에 지불한 금융 수업료를 이제는 중국 인도 등 아시아 시장에서 회수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금융 산업은 한국 경제의 가장 확실한 성장 동력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금융사들이 좁은 국내 울타리에서 과당경쟁할 게 아니라 글로벌 플레이어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윤 위원장은 금감위와 금감원의 이미지 쇄신에도 상당한 공을 들였다. 기존의 딱딱하고 권위적인 모습에서 벗어나 국민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기 위해 농촌마을 자매결연 등 사회 봉사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윤 위원장은 항상 “금융도 이제는 부드러워야 한다”고 강조하곤 했다. 금감원 직원들에게도 금융 지식뿐만 아니라 문화적 마인드를 함께 갖출 것을 주문했다. 윤 위원장은 시장 친화적 검사 제도를 도입하기도 했다. 고압적 조사보다는 지도 위주의 금융 감독을 지향했다. 이를 위해 금감원 검사역들의 전문성 제고를 강조해 상당한 성과도 거뒀다.

윤 위원장은 현 정부 관료 중 거의 유일하게 여야를 뛰어넘어 높은 점수를 받고 있다. 이에 따라 연임이냐 또다른 자리로의 중용이냐를 놓고 시장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원칙·소신으로 난제 풀어…금융시장 안정화에 기여


약력: 1946년 경남 마산 출생. 69년 서울대 법대 졸업. 1989년 재무부 금융실명거래실시준비단장. 92년 재무부 증권국장. 96년 재정경제원 세제실장. 97년 재정경제원 금융정책실장. 98년 세무대학장. 99년 아시아개발은행(ADB) 상임이사. 2004년 금융감독위원회 위원장 겸 금융감독원장(현).

장승규 기자 skjang@kbizwee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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