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적극 권장 나서 ㆍㆍㆍ러시아 ㆍ투르크메니스탄 등과 에너지 협력

세계는 중국을 블랙홀로 부른다. 세계의 자본·인재·원자재를 싹쓸이하듯이 빨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원자재 가운데 원유 구리 등에 이어 최근에는 천연가스까지 중국의 ‘블랙홀 리스트’에 올랐다.환경 문제로 골치를 썩고 있는 중국 당국이 천연가스 사용을 적극 권장하는 정책을 쓰면서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전체 에너지 소비에서 천연가스가 차지하는 비중을 지난 2005년 2.8%에서 2010년까지 5.3%로 끌어올린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이에 따라 중국 내 천연가스 수요가 2005년 650억㎥에서 2010년에는 1000억㎥로 급증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그 영향은 이미 나타나고 있다.우선 천연가스 소비가 급증하고 있다. 지난해 세계 에너지 소비는 2.4% 증가에 그쳤지만 중국은 8.4% 급증할 만큼 에너지 소비가 급증하고 있다. 특히 중국 내에서 석탄과 석유 소비는 전년도에 비해 9.6%, 7.1% 증가한 반면 천연가스는 19.9% 늘어날 만큼 소비 증가 속도가 가장 빠른 에너지원으로 자리 잡고 있다. 덩달아 천연가스 수입도 늘고 있다. 중국에서는 2020년까지 천연가스 수요의 절반이 수입을 통해 충당될 것으로 예상한다.중국이 지난해 수입한 액화천연가스(LNG)는 67만7500톤. 전년도의 483톤보다 무려 1400배 급증했다. 올 들어서도 4월까지 이미 72만2800톤을 수입해 지난해 전체 수입 규모를 앞질렀다. 중국 언론은 2010년이면 연간 LNG 수입 규모가 1000만 톤에 이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중국의 천연가스 수입 급증은 국제 원자재 시장에 또 다른 가격 충격을 몰고 올 수 있다는 점에서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지난 17일 베이징에서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과 투르크메니스탄의 구르반굴리 베르디무하메도프 대통령이 회담을 가진 뒤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 양국을 잇는 파이프라인의 건설을 가속화하자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작년 말 사망한 투르크메니스탄의 사파르무라트 니야조프 대통령이 지난해 4월 중국 방문 때 중국은 투르크메니스탄으로부터 30년간 연간 300억㎥ 규모의 천연가스를 수입하는 내용의 계약을 체결했다. 이를 위해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을 경유하는 파이프라인을 2009년까지 깔기로 했다. 후 주석과 베르디무하메도프 대통령이 이 합의 내용을 조기에 실행하기로 약속한 것이다. 중국 최대 석유 업체인 CNPC(중국석유)는 이미 2000년부터 투르크메니스탄의 구노르타 엘로텐 가스전으로부터 천연가스를 공급받는 작업을 준비해 왔고 두 차례의 양국 정상회담을 통해 결실을 보게 됐다.투르크메니스탄은 옛 소련 연방 국가 가운데 러시아에 이어 2위의 천연가스 생산 국가로 약 2조8000억㎥의 천연가스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투르크메니스탄은 중국으로의 직수출을 통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로부터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동안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를 통해 천연가스를 수출해 왔지만 이들 국가와 가격 마찰을 빚을 때마다 천연가스 수송로가 차단됐기 때문이다.중국은 원유에 이어 천연가스를 수송하는 파이프라인 건설을 러시아와 협의 중이다. 특히 러시아는 유럽에 천연가스를 제공하는 주요 공급처로서 중국의 등장은 유럽 입장에선 천연가스 조달에 차질을 줄 수 있는 변수인 셈이다. 중국은 또 서부 신장위구르자치구와 인접한 카자흐스탄에도 원유 수송관을 세운데 이어 천연가스관 건설을 추진 중이다.중국 최대 경제도시 상하이는 올해 초 말레이시아로부터 LNG를 25년간 공급받기로 계약했다. 오는 2009년부터 초기 3년간 연간 110만 톤을 수입하고 2012년부터는 연간 300만 톤을 들여온다는 게 골자다. 이를 공급할 말레이시아 국영기업 페트로나스는 한국과 일본에도 LNG를 공급하고 있다. 중국은 또 지난해 엑손모빌을 통해 러시아 사할린의 천연가스를 공급받기로 했고, 인도네시아로부터도 천연가스 구매 계약을 체결했다. 작년 초 중국의 3위 석유 업체인 CNOOC(중국해양석유)는 호주산 천연가스 수입을 개시했다. 이를 위해 광둥성에 LNG 터미널을 세웠다. CNPC 시노펙(중국석화) CNOOC 등 중국의 3대 석유 업체가 오는 2020년까지 수입할 LNG는 6000만 톤에 이를 것으로 중국 언론은 예상했다.중국은 원유 확보를 위해 미국과 적대 관계에 있는 국가와도 손을 잡았듯이 천연가스 확보 전략에서도 매우 공격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미국과 껄끄러운 관계에 있는 이란과 손을 잡은 게 대표적이다. CNOOC는 이란의 POGC와 지난 4월 가스전 개발에 합의하고 8월 말 계약할 예정이다. 중국이 일본과 동중국해에서 영토 분쟁을 벌이면서 한 치의 양보도 하지 않는 것도 막대한 천연가스가 묻혀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춘샤오 가스전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다. 중국은 현재 일본과 춘샤오 가스전 공동 탐사를 논의 중이다.중국은 천연가스 확보를 대외 수입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2005년 479억㎥ 규모의 천연가스 생산량을 2010년까지 920억㎥로 늘리기 위해 가스전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난 5월 쓰촨성의 동부 도시 다저우에서 3조8000억㎥ 규모의 천연가스가 매장된 것으로 추정되는 가스전을 발견한 것은 이 같은 노력의 일환이다. 신장위구르자치구에서 지난해에도 가스 매장이 추가 확인되면서 지금까지 확인된 가스 매장량만 해도 1조2900억㎥에 이른다. 중국 최대 규모다. 신장의 천연가스 총매장량은 10조㎥로 추정된다. 지난해 중국의 천연가스 생산량은 전년보다 16.9% 증가해 역사상 최고 수준에 달했다.중국은 특히 천연가스가 대부분 서부에 매장된 것을 감안, 서부의 천연가스를 동쪽으로 옮기는 서기동수(西氣東輸) 프로젝트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신장의 타림분지에 있는 천연가스를 무려 4000km에 걸친 파이프라인을 통해 상하이 등 동부 34개 도시에 공급하는 첫 번째 서기동수 프로젝트는 이미 2004년 말 끝나 상업 가동에 들어갔다.중국은 이뿐만 아니라 신장에서 남부 광둥성으로 천연가스를 보낼 2차 서기동수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길이만 해도 6500km에 이른다. 연간 수송될 천연가스 양만 300억㎥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내년 8, 9월에 시작해 2010년에 완공될 예정이다. 시노펙은 이와 별도로 쓰촨성의 푸광가스전의 천연가스를 동부로 수송하기 위해 오는 2010년까지 1702km의 파이프라인를 깔기로 했다. 이를 통해 연간 120억㎥의 천연가스를 보낼 예정이다. 시노펙은 이를 위해 200억 위안(26억 달러) 규모의 회사채를 발행하기로 했다. 중국 기업이 발행하는 회사채로는 가장 큰 규모다.중국에서는 천연가스 확보를 위해 경쟁사끼리도 손을 잡기도 한다. 지난 5월 시노펙과 CNOOC는 천연가스 공급 및 비축과 가스관 건설 분야에서 상호 협력하기로 하는 전략적 제휴를 맺었다.중국의 대대적인 천연가스 확보 전략은 외국 기업에는 위기와 동시에 기회다. 국제 천연가스 가격 급등을 야기할 수 있는 측면도 있지만 중국의 천연가스 시장에 진출할 비즈니스 기회를 제공한다는 얘기다. 중국 정부가 천연가스 가공 마케팅 사업에 나서는 외국 기업에 올해부터 세제상의 혜택을 주기로 한 게 대표적이다. 순익을 낸 해로부터 2년간 법인세 면제, 이후 3년간은 절반을 면제하는 게 골자다. 외국 기업의 특혜를 없애는 요즘이지만 필요한 외국 기업에는 특혜를 계속 주겠다는 중국 정부의 방침에 따른 것이다.특히 중국의 2차 서기동수 프로젝트를 통해 건설될 파이프라인은 지선까지 합칠 경우 무려 2만km에 이른다. 여기에 들어갈 자금만 1000억 위안(약 12조 원)으로 추정된다. 중국 언론은 가스관 관련 밸브 컴프레서 철강 제품을 만드는 외국 기업으로선 엄청난 시장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중국은 불과 1993년에 원유 수입을 시작했지만 이미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가장 많은 원유를 수입하는 나라로 떠올랐다. 천연가스라고 그 길을 가지 말란 법은 없다. 지난 2분기에만 1994년 이후 13년 만에 가장 높은 경제성장률인 11.9%를 기록할 만큼 고공 행진을 하는 중국의 에너지 수요가 폭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천연가스 블랙홀 전략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되새겨볼 때다.오광진·한국경제 기자 kj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