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기지 회사 상당수 문 닫아, 기업들 자금조달 차질 '불가피

잘나가던 뉴욕 증시가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 담보대출) 부실 파문에 발목이 잡혀 있다. 하루 오르면 어김없이 서브프라임 파문이 나타나 주가를 끌어내리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미국 경제는 누가 뭐래도 아직은 ‘세계 최고’다. 글로벌 경제의 30%를 차지하고 있는 ‘메이저 경제’다. 그런 만큼 뉴욕 증시가 상승세를 계속해야만 글로벌 증시의 동반 상승을 위한 필요조건이 충족된다.그렇다고 뉴욕 증시가 서브프라임 모기지라는 늪에 허우적거릴 것이란 얘기는 물론 아니다. 더 정확히는 늪에 빠졌는지, 아니면 조그만 개울에 불과한데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자는 심리에 사로잡혀 있는지는 아직 모른다. 비록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이란 복병이 잊혀질 만하면 나타나지만 월가에서는 여전히 낙관론이 우세하다.그렇지만 최근 나타나고 있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파문은 만만치 않다. 모기지 회사뿐만 아니라 헤지 펀드 부실로 연결되면서 관련 채권 전체에 대한 불신이 팽배해지고 있어서다. 채권 인수를 꺼린다는 것은 기업들의 자금 조달에 차질을 빚는다는 걸 의미한다. 흔한 말로 신용경색 조짐이 일고 있다는 얘기다.신용경색의 파장은 엄청나다. 우리나라에서 카드 대란이 일었던 것이 단적인 예다. ‘믿을 게 없다’는 심리가 확산되면 채권은 버림을 받는다. 은행들도 대출 창구를 닫는다. 기업들의 자금 조달이 막히고 유동성은 고갈된다. 유동성 고갈은 곧 증시에 직격탄을 날리게 된다.이런 점에서 최근 뉴욕 증시에 번지고 있는 신용경색 조짐을 간과해서는 곤란하다. 비록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파문이 예상외로 크지만 아직 경제의 다른 부문으로 전이될 조짐은 없다”는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다 해도,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파문을 꼼꼼히 살펴보는 것은 앞으로의 증시 예측에 필수적이다.올해 초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파문이 퍼졌을 때 확산 시나리오는 3단계였다. 첫 번째는 서브프라임 모기지를 취급한 회사가 직격탄을 받게 된다는 것. 이를 거쳐 두 번째는 서브프라임 모기지를 담보로 발행된 채권을 인수한 투자은행이나 헤지 펀드 등 투자자들이 손실을 보게 될 것이란 우려가 나왔다. 마지막으로 채권에 대한 불신이 확산되면서 채권 인수를 꺼리게 돼 신용경색이 나타나고 결국 글로벌 금융시장에 엄청난 파문을 일으킬 것이란 시나리오였다.이런 3단계 시나리오는 6개월여가 지나면서 점차 현실화되는 추세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를 취급했던 회사는 이미 엄청난 타격을 받았다. 상당수 모기지 회사들이 문을 닫았다. 돈을 빌려주고도 제때 원리금을 받지 못하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는 주택 경기에 영향을 줬다. 높아진 은행 문턱으로 인해 모기지 금리는 상승세를 탔다. 담보 주택이 압류되면서 매물이 무더기로 쏟아졌다. 매물은 넘쳐나고 금리는 올라 돈을 조달할 수 없게 되면서 주택 경기 침체의 골은 더욱 깊어졌다.그러다 보니 FRB조차 “주택 경기 침체가 예상외로 길어지면서 경제에 지속적으로 악영향을 주고 있다”며 올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하향 조정했다. 골드만삭스와 씨티그룹은 당초 올 하반기엔 주택 경기가 바닥에서 탈출할 것으로 봤으나 내년 상반기까지 침체가 이어질 것이라는 수정 전망을 내놓기에 이르렀다. 미 최대의 모기지 회사인 컨트리와이드 파이낸셜의 최고경영자(CEO)인 안젤로 모질리오는 “미 주택 경기가 2009년 이전엔 회복되기 힘들 것”이란 비관적인 전망도 내놓았다.그래도 여기까지는 괜찮았다. 비록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파문이 예상보다 컸지만 파문은 모기지 회사와 주택 경기 침체에 국한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비록 주택 경기가 침체돼 경제에 악영향을 주더라도 세계 경제 호황과 탄탄한 기업 실적, 양호한 노동시장 덕분에 미 경제는 회복 국면에 접어들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파문에 따른 파장을 어느 정도는 상쇄할 수 있었던 셈이다.그러나 우려했던 두 번째 시나리오가 현실화되면서 ‘아,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파문이 다른 쪽으로 번질 수도 있구나’라는 우려를 심화시켰다. 물론 서브프라임 모기지를 담보로 발행된 채권을 대규모로 인수한 대형 투자은행의 실적은 끄떡없었다. 비록 관련 채권 투자에 따른 손실이 있었지만 사상 최대 규모로 이뤄지고 있는 기업 인수·합병(M&A) 등으로 골드만삭스 메릴린치 등의 순이익은 사상 최대치에 근접했다.문제는 헤지 펀드에서 터졌다. 베어스턴스가 운용하는 2개의 헤지 펀드가 청산 위기에 몰려 버린 것. 베어스턴스는 16억 달러의 긴급 자금을 투입하는 노력을 기울였으나 2개 헤지 펀드는 결국 청산의 길을 걷고 있다.베어스턴스는 급기야 최근 주주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1개의 헤지 펀드 가치는 거의 없고, 나머지 1개의 가치도 미미하다”고 털어놨다. 다만 헤지 펀드에 돈을 빌려줬던 투자은행들의 환매 요구에 대해선 얼마든지 응할 수 있다며 파장이 확산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하기는 했다.사정이 이렇게 되자 불신이 확산됐다. 또 어떤 헤지 펀드가, 또 어떤 투자은행이 손을 들고 나올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한 것. 이러다 보니 헤지 펀드에 돈을 빌려주는 것을 꺼리게 됐고 자연스럽게 관련 채권 인기도 뚝 떨어졌다.설마 설마 하던 세 번째 단계인 신용경색 우려도 마침내 현실화되고 말았다. 사모 펀드인 칼라일과 오넥스에 넘어간 제너럴모터스(GM)의 자회사 알리슨 트랜스미션이 채권 발행을 통해 31억 달러를 조달할 계획이었으나 인수자가 나서지 않아 채권 발행을 연기한 것. 칼라일과 오넥스는 채권 발행을 통해 조달한 자금으로 알리슨 트랜스미션의 차입 매수(LBO)를 마무리 지을 예정이었다. 그러나 자금 조달에 차질을 빚으면서 인수 작업이 제대로 끝날까 하는 의구심도 생겨났다.이에 앞서 사모 펀드인 아펙스 파트너스에 인수된 톰슨 러닝은 지난 6월 25일 채권 발행을 통해 21억4000만 달러를 조달할 계획이었으나 인수자 부족으로 5억4000만 달러를 조달하지 못했다. 역시 사모 펀드인 KKR와 클레이톤 듀빌리어 앤드 라이스에 넘어간 US푸드서비스도 지난달 두 차례나 채권 발행을 연기해 35억5000만 달러를 제때 조달하는 데 실패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로 대출채권담보부증권(CLO)이나 자산담보부증권(CDO)의 가치가 폭락함에 따라 채권 인수자가 나서지 않거나 높은 금리를 요구한 탓이었다.물론 일부 기업이 자금 조달에 실패했다고 해서 신용경색이 현실화됐다고 단언하기는 이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파문이 발생하기 이전에도 이런 경우는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또 서브프라임 모기지와 관련되지 않은 채권조차 기피되고 있는 것은 지나친 우려감이 작용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따라서 신용경색이 확산될지 여부는 조금 더 지켜보는 게 현명하다. 월가에서는 그 지렛대로 사모 펀드인 서버러스그룹이 인수하기로 한 크라이슬러가 계획하고 있는 200억 달러를 제대로 조달할지 여부를 꼽고 있다. 서버러스는 크라이슬러가 조달하는 200억 달러를 가지고 다임러그룹으로부터 크라이슬러를 분리 인수하는 작업을 마무리할 예정이다.크라이슬러의 주간사 은행인 JP모건체이스와 골드만삭스, 씨티그룹 모건스탠리 등은 이미 몇 달 전부터 채권 소화를 위해 투자자들을 설득하고 있으나 여의치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일부에서는 자금 조달 규모를 100억 달러로 축소할 것이란 얘기도 나오고 있다. 그러다 보니 “크라이슬러의 자금 조달 성공 여부가 신용경색 여부를 재단할 분기점이 될 것(세계 최대 채권 펀드인 핌코의 투자 전략가 빌 그로스)”이란 얘기가 힘을 얻고 있다.그렇지만 현재로선 신용경색의 급속한 확산은 없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한 편이다. 당장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관련 채권이 전체 채권의 3% 미만에 불과하다. 기업들의 실적이 괜찮은 만큼 다른 채권의 신용도도 양호하다. 다만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파문이 어느 정도 확산될지 모른다는 심리적 불신감이 작용하고 있어 파문을 더욱 키우고 있다. 따라서 서브프라임 모기지 관련 채권의 실체가 드러나면 극단적인 신용경색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많은 편이다.물론 전망은 어디까지나 전망일 뿐이다. 특히 시장은 심리가 좌우한다. 순간적으로 극단적인 쏠림 현상이 발생할 수 있는 만큼 지나친 낙관은 금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 경제의 초호황, 미 경제의 완연한 회복 국면 등을 감안하면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파문은 ‘한순간의 복병 역할’에 그칠 것이란 전망이 여전히 힘을 얻고 있다.하영춘·한국경제 특파원 ha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