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제 609호 (2007년 08월 06일)

‘기회가 왔다’… 금융회사 직접투자 ‘붐’

기사입력 2007.08.01 오후 02:34

‘기회가 왔다’… 금융회사 직접투자 ‘붐’
최근 중국 개발은행이 세계 최대 규모의 은행 인수전에 뛰어 들었다. 영국의 바클레이스금융그룹이 네덜란드계 ABN암로를 인수하는 데 필요한 자금 일부를 대기로 했다. 이를 두고 개도국에 있는 자본이 선진국으로 역류해 가는 흐름을 단적으로 보여준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세계 자금의 블랙홀인 중국이지만 오히려 자본이 해외로 나가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초부터다. 중국 기업들은 거액을 베팅하면서 외국 기업을 인수하는 행보를 보여 왔다.

상하이자동차의 쌍용자동차 인수나 롄상의 IBM PC사업 인수, TCL의 프랑스 톰슨 TV사업 인수, CNPC(중국석유)의 페트로카자흐스탄 인수 등은 일부 사례일 뿐이다. 그러나 중국 자본의 쩌우추취(走出去: 해외 진출) 주체는 제조업이나 에너지 업종 기업이 대부분이었다. 이들은 외국 기업들이 오랜 세월 쌓아 온 브랜드나 기술을 단숨에 따라잡기 위해서, 때로는 에너지의 안정적인 공급을 보장받기 위해서 해외에서 기업 사냥을 했다. 중국 전문가들은 이를 중국 자본의 1단계 쩌우추취라고 해석한다.

개발은행의 이번 행보는 중국 자본의 쩌우추취가 2단계에 진입하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중국 금융자본이 전면에 나선 쩌우추취라는 점에서 그렇다.

중국 금융자본의 쩌우추취는 현재 두 가지 방향으로 나타나고 있다. 우선 바클레이스은행에 대한 투자처럼 해외 금융회사에 대한 직접 투자가 한 줄기이고, 다른 하나는 해외 자본시장에 대한 투자다.

해외 금융회사에 대한 투자는 지난해 9월 중국은행이 싱가포르 항공리스사를 9650만 달러에 인수한 것을 시작으로 그해 12월 공상은행이 인도네시아 하림은행 지분 90%를 인수하는 등 줄을 잇고 있다. 외환 당국이 외환보유액에 있던 30억 달러를 미국의 사모 펀드 블랙스톤에 투자한 것이나 건설은행이 공개적으로 해외 은행 인수 방침을 밝히고 나서고 있는 것도 이 같은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개발은행의 바클레이스 투자는 특히 중국 금융자본의 해외 투자가 갈수록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우선 규모가 종전과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커졌다. 개발은행은 우선 22억 유로(2조8000억 원)를 투자해 바클레이스 지분 3.1%를 취득하고 또 바클레이스가 ABN암로 인수에 성공하게 되면 76억 유로(9조6000억 원)를 추가 투자해 합병 은행의 지분 7.7%를 확보할 계획이다. 개발은행이 이 프로젝트를 위해 투자하는 규모가 135억 달러에 이르는 것이다. 성사되면 금융자본 여부를 떠나 중국 자본이 해외에서 단행한 가장 큰 규모의 투자가 된다. 중국의 3대 석유 업체인 CNOOC(중국해양석유)가 미국의 석유 생산 업체 유노컬 인수를 위해 185억 달러를 베팅한 적은 있지만 미국 내 정치적 반발에 밀려 무산됐기 때문이다.

개발은행의 바클레이스 투자는 속전속결형이라는 특징을 갖고 있다. 바클레이스가 ABN암로 인수를 위한 베팅 규모가 경쟁사인 로열뱅크오브스코틀랜드(RBS) 컨소시엄에 비해 떨어지자 자금 확보를 위해 중국으로 눈을 돌린 게 5월 말이고 바클레이스 파견 인사가 베이징으로 날아가 개발은행의 천위안 총재를 만난 게 6월 중순. 그리고 단 5주 만의 협상 끝에 개발은행의 과감한 투자 결정이 이뤄진 것이다. ‘중국=만만디’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규제 동시다발적으로 풀어

투자 과정도 더욱 세련된 모습을 보였다. 투자 과정에 참가한 미국의 사모 펀드인 블랙스톤은 영국의 정치 경제 리더들과 사전 조율을 통해 과거 CNOOC의 미국 유노컬 인수 과정에서 불거졌던 정치적 후폭풍을 사전에 차단하는 세련됨을 보였다.

중국 금융자본의 쩌우추취는 세계 증시에 대한 차이나 달러의 진격으로도 나타난다. 중국 정부가 자국의 금융회사에 허용한 해외 투자 자금인 QDII(해외 투자 적격기관) 자금이 세계 금융 업계의 판도를 흔들고 있다(파이낸셜타임스)는 외신의 보도까지 흘러나오고 있다.

중국 정부는 사회보장기금뿐만 아니라 은행 증권 자산운용사 보험 등 거의 모든 금융회사를 통한 해외 투자 규제를 동시 다발적으로 풀고 있다. 지난 25일 중국보험감독위원회가 보유 자산의 5%로 제한됐던 중국 보험회사의 해외 투자 한도를 자산의 15%로 확대한 게 가장 최근의 조치다. 현재 중국 보험회사의 총자산은 3300억 달러 규모로, 이번 조치에 따라 이들의 해외 투자는 최대 500억 달러까지 늘어날 수 있게 됐다. 2004년 해외 투자가 허용된 중국의 15개 보험회사들은 지난해 말까지 58억 달러 규모의 해외 투자에 대해 정부의 승인을 받았으며 지난달 말까지 실제 투자된 규모는 26억 달러에 이른다.

이번 조치로 중국의 자본이 글로벌 자본시장으로 들어갈 수 있는 길이 더욱 넓어지게 됐으며 중국이 자본 수입국에서 자본 수출국으로 전환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게 중국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JP모건의 징 울리히 증권부문 회장은 “중국의 금융회사는 글로벌 리더가 되려고 하는 야망을 갖고 있다”며 “현 추세가 지속된다면 2020년까지 중국의 해외 투자는 1조5000억 달러를 넘어설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의 해외 투자 금액은 앞으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며 이는 국제 금융시장의 판도를 완전히 바꿔 놓을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이에 앞서 중국은 지난 5월 은행들이 운용하는 해외 펀드의 편입 대상을 해외 채권 등 고정 수익 상품에서 주식으로 확대했고, 이어 6월엔 해외 펀드를 운용할 수 있는 금융회사로 증권사와 자산운용사에 대한 요건을 만들어 시행에 들어갔다. 이미 선인완궈증권 등이 QDII 자격을 신청한 상태로 현재는 화안관리기금이라는 자산운용사만이 시범적으로 해외 펀드를 운용해 왔으나 연내 해외 펀드 운용 증권사와 자산운용사가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중국 당국은 또 개인의 해외 주식 직접 투자도 검토하고 있다. 특히 자본금 2000억 달러 규모의 국가외환투자공사가 곧 설립돼 해외 금융시장의 큰 손으로 부상하게 된다.

외환보유액 상반기만 2663억 달러 늘어
중국 금융자본의 쩌우추취는 우리에게 두 가지 메시지를 던져준다. 세계 금융 산업에서 큰손으로 부상하는 중국 금융자본과 제휴할 경우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힘을 키우는 데 도움을 얻을 수 있다는 게 첫 번째다. 바클레이스가 중국 개발은행을 선택한 것은 막강한 자본력도 있지만 중국 금융자본과 손을 잡을 경우 급성장하는 중국 금융시장에 대한 진입 기회도 확대될 수 있다는 이점 때문이다. 특히 앞으로 우후죽순 생겨날 중국의 해외 펀드의 운용사로 나설 경우 적지 않은 수수료 수입을 챙길 수 있다. 외국계 자산운용사들이 국내에서 해외 펀드로 엄청난 수입을 올리고 있는 것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중국 사회보장기금의 해외 투자 운용사로는 지난해 말 세계의 쟁쟁한 운용사들이 선정됐으며 이 가운데 한국 금융회사는 한 곳도 없었다. QDII 자격을 받은 중국 금융회사를 상대로 투자 정보 및 자산 관리 서비스를 시작한 크레디스스위스은행 도이치뱅크 등 외국계 금융회사들이 늘고 있지만 한국의 금융회사에는 이 같은 소식이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물론 중국 금융자본의 쩌우추취가 세계 증시에 미칠 영향력을 감안한 투자 전략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중국 전문가들은 홍콩 증시가 가장 큰 수혜를 볼 것으로 전망한다. 이 때문에 QDII 대상이 확대되면서 상승 탄력을 받고 있는 홍콩 증시에 대한 투자에 적극 나설 때라는 주문도 그래서 나온다. 물론 차이나달러는 국내 증시에도 적지 않은 영향력을 발휘할 것으로 보인다. 국내 증시의 외국인 투자자로 차이나달러가 가세할 것이라는 얘기다. 최근 방한한 중국의 자산운용사들은 해외 펀드를 운용하면 편입 대상에 한국을 포함하겠다는 뜻을 내비치기도 했다.

중국 전문가들은 중국 증시의 활황과 위안화 절상 등으로 해외 투자가 크게 활성화되지 못한 측면이 있지만 주가 상승 속도가 다소 둔화되는 데다 고수익형 해외 펀드가 나올 수 있는 여건이 형성되면서 중국 금융자본의 쩌우추취가 가속화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특히 지난 6월 말 외환보유액이 1조3326억 달러로 올 상반기에만 2663억 달러 늘어날 만큼 외화가 밀려들면서 통화량 증가-인플레 우려-긴축 차질 등의 악순환을 끊어야 하는 중국 당국으로서는 금융자본의 해외 진출을 적극 권장할 수밖에 없다.

국내 증권사나 자산운용사 등 금융회사들도 중국 금융자본의 쩌우추취에서 비즈니스 기회를 잡는 노력이 필요한 때다.

오광진·한국경제 기자 kjo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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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07-08-01 14: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