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하고 호소력 짙은 목소리 자랑, 9월 인천서 <라 트라비아타>공연

예술을 직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을 대할 때는 왠지 일반인과는 다른 가치관이나 생활 방식을 가졌으리라는 선입견이 앞선다. 남보다 조금은 더 예민한 감수성을 가졌을 것이므로 어울리기에 까다로울 것이라는 예상도 하게 된다.평소에는 흔하지만 바삐 돌아가는 생활과 동떨어져 유유자적하며 살 것이라는 뭔가 다른 모습을 상상해 볼 때도 있다. 어찌 보면 그만큼 예술과 일상의 거리가 떨어져 있고, 우리가 예술가를 멀게 느낀다는 이야기일 것이다.그러나 오늘의 주인공인 소프라노 김희정 씨(46)는 노래를 대하는 태도를 통해 프로의 세계는 어디나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조용히 일깨워 준다. 무엇보다 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스스로 ‘프로’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며 성실한 직업인의 자세를 강조하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성악가로서 무대에서나 연습에서나 자신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 그녀가 세워 놓은 기준들을 들으며 진정한 프로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오는 8~9월 인천에서는 세계 오페라 페스티벌이 열린다. 2014년 아시안게임 유치 기념으로 열리는 이 행사에는 체코 프라하극장의 <카르멘>과 이탈리아 제노바극장의 <라 트라비아타>가 무대에 오른다. 김희정 씨는 9월 7~9일 미나 타스카-야마자키와 함께 ‘라 트라비아타’의 비올레타 역을 맡아 인천 종합문화예술회관에 선다. <라 트라비아타>는 우리에게 <춘희>라는 제목으로 더 친숙하다. 오페라 속에서 사교계의 여왕인 비올레타는 순수한 젊은이 알프레도와 사랑에 빠지지만 그의 미래를 위해 곁을 떠난 후 병에 걸려 죽음을 맞이한다.그녀는 유난히 비올레타 역할을 자주 제안 받는 편이라고 한다. 비올레타는 오페라 여주인공들 중에서도 차지하는 비중이 굉장히 큰 배역이다. 이렇듯 중요한 배역이 그녀에게 자주 들어오는 이유는 화려하고 호소력 짙은 음색이 한때는 사교계의 여왕이었다가 끝내 쓸쓸히 죽어가는 비올레타의 기구한 운명을 표현하기에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그녀는 자신의 음성이 <라 보엠>의 미미처럼 시종일관 병에 걸려 가련하기만 한 여주인공과는 다른 중층적인 느낌을 표현하는 덕분이라고 짐작하고 있다.“똑같은 주제를 가지고도 오페라 가수마다 감성을 다르게 연출해 내거든요. 미묘한 감성을 표현하는 끼는 어느 정도 타고나야 해요. 그런 면에서 저는 행운이라고 생각하지요. 제 소리에는 그 자체에 미묘한 표현이 실려 있어서 좋은 감정을 지녔다는 평가를 받습니다.”음색을 통한 표현력 다음으로는 무대 매너도 중요하다. 우선 그녀는 어느 정도 몸집을 가진 다른 성악가들에 비해 굉장히 마른 몸을 가지고 있다. 병에 걸린 여주인공을 풍채 좋은 가수가 연기할 때 관객이 느끼는 어색함을 극복할 수 있는 좋은 조건이다. 그녀도 이탈리아와 미국 유학 시절에는 지금보다 살집이 좋았지만 귀국 후 몸집을 줄이고 그에 적합하도록 발성법을 바꾸어 소리 자체에서 카리스마를 찾았다. 시각적으로나 청각적으로 기본적인 역량을 갖추고 관객과 호흡하는 무대 매너까지 더했으니 오페라나 음악회에서 그녀를 대하는 관객의 반응은 늘 호의적이다.“새 배역을 맡으면 이야기를 만들어가며 연습을 하는 과정에서 그 배역에 몰입하게 됩니다. 예전에 맡았던 배역이라도 함께하는 연주자들이 달라지면 완전히 다른 무대지요. 프로가 될수록 무대 위에서는 쇼맨십도 늘어나고 전체적으로 공연을 부드럽게 이끌어 가는 능력이 생깁니다.”오페라 무대 외에도 그녀를 찾을 수 있는 공간은 많다. 음악회 섭외가 연일 끊이지 않고 때로는 공연끼리 일정이 겹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녀는 ‘내가 노래를 부를 가치가 있는 무대인가’라는 질문에 답이 정해지면 공연의 크고 작음을 가리지 않고 달려간다. 그간의 공연 목록을 일일이 나열하기가 어려울 정도이고 무대 경험 역시 그만큼 두터워졌다. 이제 조금은 쉬어가며 노래해도 되지 않을까.“연주자가 연주를 많이 하는 건 당연합니다. 성악가도 직업을 가지고 프로답게 일해야 하는 사람이니까요.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으면 무대에 꾸준히 서야지요. 물론 무한한 음악 세계를 대중에게 보여 줄 책임도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시간을 들여 공부하고 레퍼토리를 개발해 나만의 음악 세계를 보여주는 독창회를 틈나는 대로 준비하는 것이고요.”요즘은 공연이 아무리 많아도 이틀 연속되는 연주 일정은 가급적 피한다. 몸이 악기인 성악에서 목과 체력 관리는 매우 중요하다. 최대한의 능력을 발휘할 수 없는 두 번째 날의 연주는 연주자를 혹사하는 것이기도 하고, 청중이나 관객에게도 최고의 경험이 될 수가 없다. 그녀는 평일에 공연이 없을 때는 운동으로 체력을 관리하고, 공연 전에는 특히 잘 먹고 잘 잔다. 공연 전에는 긴장해 덜 먹고 공연이 끝나야 비로소 지쳐서 음식과 휴식을 찾는 성악가들에 비하면 꽤 좋은 습관이다.“음악이 저에게 전부니까요. 목이 아프면 몸 전체가 다 아프고 마음이 우울해지니까 조심해야지요. 최근에 음악과는 다른 일들을 조금 해 볼 기회가 있었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일이 음악이었다는 생각이 다시금 들었어요. 저는 아주 어릴 때부터 노래를 잘한다는 소리를 듣고 활동하면서 그저 성악가로만 지내왔습니다. 그동안 단 한 번도 내 일이 재미없다고 느낀 적은 없습니다.”그녀에게 생의 전부인 음악인만큼 일반인들도 음악을 좀 더 가까이 하길 바라게 된다. 같은 클래식이라 하더라도 기악곡보다는 사람의 목소리가 담긴 성악이 좀 더 친숙하게 느껴질 것이라는 기대를 하고 있다. 그녀는 우리나라 관객들이 영화나 뮤지컬을 보러 가듯이 다양한 음악회를 즐겼으면 한다. 음악을 자꾸 들을수록 귀가 뚫리면서 관심이 넓어지게 되는 자연스러운 단계를 밟아 클래식을 접했으면 하는 바람이다.“제게는 공연이 끝나고 관객의 박수갈채를 받는 순간이 노래하는 보람이지요. 내가 만족할 수 있는 최고의 연주를 선사하고, 관객도 내 연주에 교감해 받는 기립박수가 가장 큰 기쁨입니다. 반면에 최고의 컨디션이 아니더라도 나를 가다듬고 최선을 다해 몰입하는 모습을 보여 줄 때에도 관객은 열렬하게 호응해 줍니다. 연주자 혼자 좋은 무대는 없는 법이지요.”김희정 씨에게는 무대가 가장 좋은 선생이다. 성악에서는 호흡과 발성의 기본을 다듬어 좋은 소리를 내는 것이 최우선이지만 올바른 발성법을 찾아가는 길은 무대 위에 있다. 제아무리 석·박사 학위를 딴다고 한들 무대에서는 누구나 초짜라는 것이 그녀의 생각이다. 그래서 주변의 후배나 학생들을 보면 안타까울 때가 많다. 무대 경험 없이 얻은 지식만으로 부정확한 발성법을 훈련 받은 결과 성대를 상하는 일이 많아서다. 기본을 잘못 쌓으면 돌이킬 수 없다는 진리는 성악에서도 엄격하다.“이제 후배 양성이나 좋은 무대를 기획하는 책임에 대해 생각할 나이가 됐습니다. 더불어 스스로를 잘 관리해 언제까지나 좋은 노래를 부를 수 있도록, 끝까지 현역으로 남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테고요. 지나온 길에는 늘 노래만이 있었고,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겁니다.”약력: 1961년생. 경희대 성악과. 이화여대 성악과 석사. 이탈리아 니노로타 아카데미아. 미국 리버티대 음악교육학 박사. 카네기홀, 이탈리아, 예술의 전당, 세종문화회관 등에서 독창회 10회 개최. <별들은 따뜻하다> CD 발매.김희연 객원기자 foolfox@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