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심슨가족, 더 무비’
“텔레비전 시리즈를 왜 돈 내고 영화로 봐? 바보.” 영화가 막을 열자마자 관객을 맞이하는 것은 노골적인 비아냥거림이다. 그러나 분노보다는 공모의 낄낄거림이 먼저 튀어나온다. 소파에 눌러 붙어 도넛을 집어삼키며 TV 보는 것을 낙으로 삼는 아버지, 그런 아버지에게 종종 목조임을 당하는 사고뭉치 아들, 아버지를 가르치는 조숙한 딸과 고무꼭지와 젖병을 상시 흉기로 사용하는 젖먹이 막내.이 기괴하고 엽기적인 가족의 역사는 유구하다. 1987년 버라이어티쇼 ‘더 트레이시 울맨 쇼’에서 꼭지 사이를 잇는 24초짜리 만화로 등장해 쇼의 주목을 앗아갔던 ‘심슨가족’은 2년 뒤 크리스마스 특집을 통해 30분짜리 시트콤으로 재탄생했다. 이후 2007년까지 총 18시즌, 401개의 에피소드가 방영됐고, 40개 언어로 번역돼 전 세계의 전파를 탔으며, 에미상을 20여 차례나 수상했다. 극장판 ‘심슨가족, 더 무비’는 2001년 영화화를 위한 각본 작업이 시작된 후 무려 100번 이상 수정 과정을 거쳐 탄생했다.아놀드 슈워제네거가 대통령이 된 미국, 그러나 심슨 가족의 일상은 여전하다. 더 이상 한심할 수 없는 아버지 호머는 변함없이 바트의 목을 졸라대고, 부자는 치졸한 장난에 열을 올리고 있다. 한편 스프링필드의 환경오염도가 위험 수준에 이르면서, 명민한 딸 리사는 정화 운동을 펼치지만 호머는 공짜 도넛에 눈이 멀어 호수를 돼지 분뇨로 오염시킨다. 스프링필드의 환경오염이 손 쓸 수 없을 지경에 이르자 미국의 환경보호국은 마을 전체를 돔으로 격리하는 극단적인 정책을 선포한다.브라운관에서 스크린으로 무대를 옮긴 심슨 가족은 4배로 길어진 러닝 타임만큼이나 확장된 스펙터클을 자랑한다. 생전 스프링필드 밖을 벗어나 본 적이 없는 심슨 가족이 무려 알래스카까지 발걸음을 옮기는 것은 물론이고, 마을 전체의 명운을 저울 위에 올려놓은 이야기는 블록버스터를 연상시키는 대규모의 갈등 구도로 확장됐다. 시리즈의 묘미였던 번뜩이는 재치의 맛이 그만큼 희미해진 것도 사실이지만, 영화는 본연의 미덕을 잃지 않았다.거침없는 유머와 해학, 조롱과 비틀기가 유발하는 변칙적 웃음. ‘심슨가족, 더 무비’는 앨 고어부터 ‘타이타닉’에 이르기까지 종횡무진 패러디를 펼쳐 보이고, 아놀드 슈워제네거를 내세워 무능한 정치인을 신랄하게 조롱한다. 심지어 영화 중간 화면 아래로 “‘심슨’은 폭스 채널에서 방송됩니다. 우리는 영화 중에도 광고를 하죠”라는 자막을 흘려보내며 광고 패러디를 통한 역발상의 깜찍한 광고를 던지기도 한다.하지만 무엇보다도 영화가 선사하는 최대의 쾌감은 역시, 무식하고 저속하며 뻔뻔하기 이를 데 없는 호머의 엉망진창 세상에서 모든 짐을 털어 버리고 한바탕 실컷 놀아보는 것이다. ‘심슨가족, 더 무비’는 비단 시리즈를 사랑하는 팬뿐만 아니라 이 엽기 가족의 주접에 기꺼이 동참할 준비가 되어 있는 이라면 누구에게나 즉각 탑승을 권할만한 난장판의 롤러코스터다.▶약지의 표본이리스는 어느 날 일하던 음료공장에서 실수로 약지 끝을 잘리는 사고를 당한 뒤 일을 그만둔다. 새로운 일자리를 찾기 위해 낯선 항구 도시에 도착한 그녀는 표본실 조수를 찾는 구인공고를 보고 운명처럼 그 곳에서 일을 시작한다. 표본실에는 잊고 싶은 것들을 표본으로 만들면 그 기억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고 믿는 사람들이 찾아온다. ‘박사가 사랑한 수식’ ‘임신 캘린더’의 오가와 요코 소설 원작으로, 프랑스 감독 디안느 베트랑이 메가폰을 잡았다.▶관타나모로 가는 길파키스탄계 영국 청년 네 명은 친구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파키스탄으로 향한다. 우연히 들른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의 폭격을 만나고, 테러 용의자로 몰려 연합군에 생포된 이들은 미군에 넘겨져 관타나모로 끌려간 뒤 2년이 넘는 세월을 감금된 채 살아가게 된다. 실화에 바탕을 둔 영화로 2006년 베를린영화제 은곰상을 수상했다. ‘원더랜드’ ‘인 디스 월드’의 마이클 윈터바텀 연출.▶두 사람이다막내 고모가 첫째 고모를 살해하는 장면을 목격한 가인(윤진서 분)에게는 계속해서 불길한 사건들이 일어난다. 같은 반 친구와 담임선생님이 자신을 살해하려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 것. 매번 현장에서 그녀를 주시하던 동급생 석민(박기웅 분)은 가인에게 “아무도 믿지 않으면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라는 말을 남긴다. 강경옥 원작의 동명의 만화를 영화화한 작품.최하나·씨네21 기자 raintree@cine21.com©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