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발음 완벽한 어린이 수두룩 ㆍㆍㆍ외국인 대상 사교육 '새 시장'

“자녀 교육이 가장 큰 걱정이에요. 외국인 학교 대기자 명단에 넣었지만 인기 학교는 아직 자리가 나지 않아 가정교사를 쓰고 있습니다.”한국에 온 지 몇 달 안 된 외국계 기업의 임원 L 씨가 성토했다. 외국인 100만 명 시대, 가족과 함께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도 급격히 증가했다. 자녀를 학교에 보내야 하는데 언어의 장벽 때문에 한국 학교는 사실상 어렵다. 외국인 학교에 보낼 수밖에 없지만 학교 수가 아직 부족하다. L 씨처럼 ‘교육 인프라 부족’을 한국 생활의 어려운 점으로 꼽는 사람이 적지 않다.이런 점을 파악한 정부는 외국인학교 설립 신청이 들어오면 적극 돕고 있다. 이와 같은 분위기 속에서 최근 설립 인가를 받은 외국인 학교가 부쩍 늘었다.8월 28일 서울시교육청은 ‘레인보우외국인학교’의 설립을 인가했다. 터키와 중앙아시아 문화권·영어권 국가의 초등학생까지를 대상으로 한다. 9월부터 서울 서초구 양재동에서 수업을 시작한 이 학교는 영어와 터키어로 수업을 진행한다.이에 앞서 8월 16일 서울 노원구 월계동에 서울 아시아태평양 국제학교(APIS)가 문을 열었다. 학교법인 염광학원의 평생교육원 건물 두 개 층을 사용하며 유치원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의 과정을 가르친다. 입학 자격은 국내 거주 외국 국적자와 대한민국 국적의 외국 영주권 소유자, 5년 이상의 해외 거주 경력이 있는 내국인 등이다.신설 학교 외 현재 운영 중인 외국인 학교는 40여 개에 이른다. 대표적인 곳은 연희동의 서울외국인학교(SFS), 이태원동의 서울국제어린이조기학교(ECLC), 한남동의 서울용산국제학교(YISS) 등이다. 수도권에는 의정부의 인디언헤드외국인학교(IIS), 성남의 서울국제학교(SIS), 수원 영통구의 수원외국인학교(GSIS) 등이 있다. 서울 개포동의 일본인학교, 서초구 반포동의 프랑스인학교 등 또한 국가별로 특화된 외국인 학교다.그 밖의 부산 해운대구에는 부산외국인학교와 부산국제학교가 학생을 교육 중이다. 전남외국인학교, 대전 크리스천국제학교 등 전국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앞으로 외국인 학교는 더욱 많아질 전망이다. 서울시의 경우 핵심 사업 중 하나인 글로벌화 전략 가운데 ‘외국인 학교 신설’이 포함돼 있다. 서울시는 2012년까지 서초구 잠원동과 마포구 상암디지털미디어시티(DMC) 일대에 외국인 학교를 세울 계획이다. 영종도에도 외국인 학교가 건립될 전망이다. 인천도시개발공사는 운북복합레저단지 274만3150㎡(옛 83만 평)의 리포인천개발 사업 구역 안에 9만9150㎡(옛 3만 평) 규모의 외국인 학교 설립을 추진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외국인 학교는 국내 학부모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특히 국내 제도권 교육을 신뢰하지 않는 한국의 부모들은 외국인 학교에 자녀를 보내려 한다. 국내 재벌가 4세 가운데도 외국인 학교를 다녔거나 현재 재학 중인 학생이 적지 않다. 외국인이 아니더라도 외국 영주권을 갖고 있거나 5년 이상 해외 거주 경험 등이 있으면 입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기 이유는 ‘조기 유학’ ‘기러기 아빠’와 다르지 않다. 일단 학급당 학생수가 20~25명 정도이고 모든 수업은 토론식 위주로 펼쳐진다. 학교 안에서 이뤄지는 활발한 방과 후 활동도 특징이다.외국인이 가파르게 증가하다 보니 사교육에도 새 시장이 열렸다. 외국인을 대상으로 새로운 기회를 찾는 것이 최근 교육 시장의 트렌드다. 한국에 온 외국인 또한 음악 체육 미술 등 특기 적성 교육을 시키려 한다. 이런 이유로 영어로 수업을 하는 미술 학원, 태권도 학원 등에 외국인 아이들이 몰리고 있다.외국인 학교 증가는 외국인이 늘면서 나타난 변화상이다. 하지만 역으로 전략적으로 외국인 학생을 유치하는 곳이 있다. 바로 대학들이다. 특히 지방대가 적극적이다. 한국인 입학생이 줄어드는 자리를 외국인 학생으로 채우겠다는 포부에서다. 또 외국인 유학생 유치로 글로벌 이미지를 높이겠다는 효과도 노린다. 교육인적자원부에 따르면 국내 대학에 다니는 외국인 유학생은 지난해 기준으로 3만2557명에 이른다. 이 가운데 수도권 대학을 제외한 지방대에 재학 중인 외국인 학생은 1만7498명으로 전체의 무려 53.7%에 이른다. 서울과 수도권에 비해 등록금과 생활비가 싸고 장학 제도도 다양해서다. 대전의 배재대는 중국 몽골 대만 인도 러시아 등에 25곳의 한국어교육원을 설립, 외국인 학생 유치의 징검다리로 쓴다. 대구대는 역시 140명 규모의 외국인 전용 기숙사를 지었고, 순천향대의 순천향대 글로벌 기숙사에는 200여 명 이상의 외국 유학생이 살고 있다.요즘 영어 발음이 ‘완벽’에 가까운 초등학생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외국에서 살다 왔느냐”고 물으면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다. 굳이 해외 거주 경험이 없어도 영어 실력이 수준급이다. 어릴 때부터 원어민 강사한테 말하기, 듣기를 교육받아서다.국내 사립대학의 한 교수는 “과거에는 자녀의 영어 교육을 위해 안식년에 해외에 나가는 교수가 많았다”면서 “최근에는 굳이 그럴 필요가 없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원어민 교사가 많아진 덕에 한국에서 자란 토종 아이들도 영어를 잘한다”고 덧붙였다.실제로 대형 어학원의 외국인 강사는 2000년대 이후 급증했다. 파고다어학원 강사지원팀의 윤지영 과장은 “2000년 이후로 외국인 강사가 2배 늘었다”면서 “그 당시 80명이었지만 현재 155명 수준”이라고 말했다.학원가뿐만 아니라 초·중·고등학교의 원어민 보조 교사 또한 증원돼 글로벌 교육을 앞당기고 있다. 대전을 예로 들면, 대전시교육청은 대전 초·중·고 및 연수원에 배치된 원어민 영어 보조 교사를 지난해 35명에서 올해 57명으로 61% 증원했다. 대전시교육청은 내년에도 원어민 영어 보조 교사 30명을 늘려 도심지 외곽 지역의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집중 배치할 계획이다. 다중 언어 교육…외국인 학생 ‘몰려’서울 청담동에 본원을, 동부이촌동에 연구소를 둔 플래뮤는 ‘뮤지엄식 아트’ 교육기관이다. 지난해 2월 문을 연 뒤 한국인은 물론 외국인 수강생이 급증했다. 16개월 아기부터 열세 살 어린이까지 다양하다.김지영 플래뮤 원장은 “지금까지 플래뮤를 거쳐간 아이들은 500~600명”이라면서 “이 가운데 외국인이 200~300명”이라고 답했다. 서울 예원학교와 서울예고, 서울대 미대를 졸업한 김 원장은 영국 유학 시절 ‘뮤지엄식 아트’ 교육을 접했다. 그는 “영국의 박물관은 크게 전시와 교육 두 파트로 나뉜다”면서 “박물관에 전시된 미술작품을 감상하며 자란 아이들은 ‘창의력’을 기반으로 다방면의 문화 활동을 즐기게 된다”고 설명했다.뮤지엄식 아트 교육을 사례를 통해 풀어보면 쉽게 이해가 된다. 가령 의자를 그려 보라고 하면 보통의 아이들은 집이나 학교에 놓인 의자를 떠올린다. 반면 박물관, 미술관에서 각국의 다채로운 의자를 본 아이들은 보다 넓게 사고하며 그림을 그린다. 김 원장은 “상상력 자극 없이 가족을 그리라고 하면 아이들은 본인의 가족만을 떠올린다”며 “반면 반 고흐가 그린 가족 관련 명화를 아이들에게 설명한 뒤에는 보다 개성 있는 그림이 나온다”고 말했다. 마네의 ‘풀밭 위의 식사’를 보여 준 다음에는 ‘소풍 가서 먹고 싶은 것’을 직접 요리해 보게 한다. 오감 자극에 효과적인 요리 또한 미술 교육의 한 부분이기 때문이다.국내 학부모의 교육열이 하늘을 찌른다고 하지만, 사실 자녀에게 쏟는 애정 자체는 동서양에 차이가 없다. 국내에는 영어에 교육의 중심이 쏠려 있는 반면 영국의 경우 발레, 쿠킹, 테니스, 승마, 미술 등 전인교육이 인기다.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의 자녀 사랑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사교육을 시키고 싶어도 언어가 문제다. 이 부분을 플래뮤가 해결했다.글로벌 교육을 내세운 김 원장은 한국어 영어 일본어 등 다중 언어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입소문이 퍼지면서 외국인 부모가 아이의 손을 잡고 찾아왔다. 결국 서울 이태원 소재 외국인 학교인 서울국제어린이조기학교(ECLC)의 학부모 회장이 방문하기에 이르렀다. ECLC의 방과 후 수업(애프터 스쿨)으로 들어와 달라고 제의했다. 김 원장은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플래뮤의 강사진이 3학기 째 ECLC의 수업을 맡고 있다”면서 “단순히 그림을 잘 그리는 기법을 넘어서는 문화성과 사회성을 개발하는 교육을 선보여 학부모 만족도가 높다”고 했다. ECLC에서 ‘인도 문화’를 주제로 삼은 날에는 인도 학생이 자신 있게 일어나 설명한다. 또 ‘마티스’를 언급하면 프랑스 아이가 분위기를 이끈다.이효정 기자 jenny@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