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자주(自主)’ 논쟁을 벌여 당황스러웠다.” (권오규 경제부총리)“제약 원료는 있느냐고 물으니 산에 약초도 많으니까 걱정 말라더라.” (변재진 복지부 장관)“재벌 총수들이 제일 부지런하고 버스 출발 시간도 잘 맞췄다.” (이원걸 한국전력 사장)10월 2~4일 제2차 남북 정상회담이 끝나고 수행원 자격으로 북한을 방문했던 인사들로부터 여러 가지 후일담이 나오고 있다. 권오규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변재진 보건복지부 장관 등 관료들뿐만 아니라 이원걸 한국전력 사장, 이한호 광업진흥공사 사장 등도 때맞춰 기자간담회를 열고 이야기보따리를 풀었다.권 부총리는 10일 한국언론재단 ‘남북경협포럼’과 경제5단체장 간담회에 잇따라 참석해 남북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경제 협력 내용을 설명하고 협조를 구했다.권 부총리는 ‘남북경협 포럼’에서 정상회담 당시 당황했던 두 장면을 소개했다. 정상회담 배석자였던 권 부총리는 노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간에 ‘자주(自主)’에 대한 논의로 ‘긴장감’ 있는 순간이 연출됐다고 밝혔다. 배석자들이 “논의의 진행 방향이 어디로 갈 것인가” 긴장했을 정도.노 대통령은 자주와 관련된 내용이 거론되자 “자주는 고립이 아니라 국제적 협력 환경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방코델타아시아(BDA)’ 문제를 거론하며 “BDA 문제가 불거졌을 때 자금을 받아주려는 국제적 움직임이 전혀 없었고 심지어 중국도 도와주지 않았다”고 예를 들었다. 이에 대해 권 부총리는 “노 대통령이 설득력 있는 논리를 제시해 북측도 일정 부분 수긍했다고 생각한다”고 평가했다.권 부총리가 소개한 또 하나의 당황스러운 기억은 ‘아리랑 공연’ 때 대통령의 나 홀로 기립박수다. 그는 “아리랑 공연 관람 시 초등학교 1학년 정도의 어린 아이들이 공연했는데 대통령과 통일부장관 두 명만 남측 대표로 손뼉을 쳤다”며 “다른 사람들이 손뼉을 치지 않아 당황했다”고 회고했다. 왜 당황했느냐는 질문에 권 부총리는 “아주 어린 아이들이 그렇게 공연했는데 손뼉을 치지 않아서…”라고 답했다.이원걸 한전 사장도 9일 기자간담회에서 수행원들의 모습과 관련된 재미있는 일화를 공개했다. 수행원들은 항상 버스로 이동하는데 1호차에 도올 김용옥 등 문화예술인들이 탔고, 2호차에 재벌그룹 회장들, 3호차에 공기업 등 기타 기업인들이 탑승했다.그런데 1호차 탑승자들이 매번 출발 시간이 늦어 2호차가 항상 먼저 출발했다는 것이다. 문화예술인들은 특유의 자유로운 분위기 때문에 항상 제 시간에 오지 않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반면 2호차 탑승자들은 꼭 출발 시간을 지켰다. 이 사장은 “역시 대기업을 운영하는 기업인들은 시간관념이 철두철미하고 부지런한 것 같다”고 평가했다. 그러자 옆에서 기자들은 “그게 아니라 재벌 회장님들이 수행원도 없이 처음 여행을 하다 보니 시간에 늦으면 길을 잃어버릴 것 같았기 때문일 것”이라고 농담을 했다.변재진 복지부 장관은 8일 기자간담회에서 북측의 최창식 보건상을 만난 얘기를 했다. 북측은 남포에 어린이 약 공장을 지어달라고 요청했다. 그래서 변 장관이 “공장만 짓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원료 및 판로는 어떻게 할 거냐”고 물었더니 북측 보건상은 “산에 약초도 많고 원료는 걱정 말라”고 했다고. 변 장관은 이에 대해 “영양제인지 항생제인지 아니면 약초 말리는 공장을 말하는 것인지 모르겠다”며 진의 파악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변 장관은 또 “북측은 무상 의료를 하고 있으나 이에 따른 사회적 비용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어 5세 미만 어린이와 임산부의 건강 문제가 심각한 상황이라고 인식하고 있다”고 전했다.이한호 광업진흥공사 사장은 5일 기자간담회에서 북측의 길거리 환영 행사에 대해 “길거리의 많은 인파들 속에서도 그 사람들 표정이 다 보이고 구호 외치는 소리도 들린다”며 “표정을 보면 가식이 아니라 진정으로 환영한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고 말했다.한편 과천 관가에서 경협 관련 부서들은 정상회담 홍보와 후속 조치 때문에 과로에 시달리고 있다. 특히 재경부 남북 경협과 등은 권 부총리와 임영록 재경부 2차관이 홍보를 위해 TV나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경우가 많아 질문을 받아 작가들과 문안을 상의하고 답변을 작성하는 것은 기본이고 예상 질문까지 만들어야 했다. 바쁠 때는 잠을 두세 시간 밖에 자지 못했다는 후문이다. 정재형·한국경제 기자 j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