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자본의 국내 투자는 앞서 언급한 사모 펀드뿐만 아니라 외국계 기업의 직접 투자가 주를 이룬다. 2007년 3분기에만 스페인의 아시오나(Acciona)가 영양의 대규모 풍력 발전 단지 건설에 1억3000만 달러를 투자했고, 독일 바스프(BASF)가 폴리우레탄 원료 생산의 주요 설비인 스팀 제조 공장을 설립하기 위해 한국바스프에 6500만 달러를 증액 투자했다. 이처럼 직접 생산 설비를 세우는 투자 형태를 그린필드(Green-field)형 투자라고 한다.지분을 인수하거나 합작 회사를 세우는 경우는 인수·합병(M&A)형 투자라고 하는데, 3분기에는 스위스의 UBS가 대한투자신탁운용과 합작 계약을 체결하고 대한투자신탁운용의 지분을 약 2억 달러에 인수한 것이 대표적이다.1998년 외국 자본의 투자 자율화 조치 이후 외국인 직접 투자는 국내총생산(GDP)의 8.1%(2005년 말 기준)를 차지할 정도로 늘었다. 정부는 2015년까지 외국인 직접 투자를 GDP 대비 15%까지 늘리겠다는 중장기 비전을 추진하고 있다. 외국인 직접 투자 기업의 매출은 14.5%에서 25%로, 외국인 직접 투자 기업의 고용은 6.2%에서 16%로 늘리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국내의 해외 투자도 급속히 늘어나고 있다. 2006년 한국의 해외 직접 투자는 사상 처음으로 100억 달러를 넘어선 107억7000만 달러를 기록했고 2007년 들어서도 이미 상반기 중에 72억4000만 달러에 달했다. 이처럼 투자 금액이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는 것은 대기업들이 대규모의 해외 직접 투자를 시행하고 있는데다 유가 등 자원 가격 상승에 대응해 해외 자원 개발이 크게 증가한 것이 배경이다.외국인의 직접 투자로 국내 산업이 활성화되고, 국내 기업에 선진화된 기업 문화가 이식된다면 외국 자본은 약이 된다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해외 자본 유치가 시작된 1998년은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시기로 부실화된 기업에 대한 자본 유치가 시급하던 때였다. 이때 들어온 해외 자본은 부실 기업을 사들이는 론스타와 같은 사모 펀드들이었다.기업의 성장성은 좋지만 자국 금융 위기나 경영진의 무능으로 일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기업들만 골라서 사들이는 투자 형태다. 마치 ‘땡처리’ 하듯이 헐값에 나온 매물을 사들이는 것으로, 회사가 정상화된 뒤 거액의 매각 차익을 노리는 것이다.앞서의 그린필드형 직접 투자처럼 해외 기업이 동종의 국내 기업에 투자하는 경우는 동반 성장이라는 공동의 목표가 있다. 그러나 사모 펀드의 경우는 매각 차익을 극대화하는 것이 목표로, 단기간에 경영 성과를 올리려는 속성이 있다. 투기자본감시센터는 투기 자본에 대해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기업 투자 확대보다는 단기 수익 최대화를 목표로 감량 경영과 대량 해고 등을 통한 금융자산 불리기에 열을 올리는 자본’으로 규정한다.그렇지만 국내의 대기업들도 매년 수익 극대화를 목표로 하고 있고 경영 사정에 따라 구조조정을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투기 자본의 속성은 좀 더 구체적으로 파악해야 한다.대표적인 투기 자본의 폐해는 대규모 고액 배당이다. 기업 순익은 성장을 위해 재투자돼야 하지만 대주주의 이익을 위한 고액 배당으로 빠져나가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인 서울증권의 경우 2002년 대주주인 퀀텀인터내셔널펀드는 액면가(2500원) 대비 60%에 이르는 주당 1500원의 고배당을 실시해 투자 원금 이상을 받아갔다. 리젠트증권(현 브리지증권)은 1999년 BIH(Bridge Investment Holdings)의 전신인 KOL이 70%의 고배당을 통해 200억 원을 회수해간 바 있다.무상증자와 유상감자도 회사 가치를 떨어뜨리고 대주주의 이익을 위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무상증자는 추가적인 투자 없이 대주주의 지분이 늘어나고, 유상감자는 회사 자금을 빼내는 손쉬운 방법으로 통한다. JP모건은 과거 만도의 우선주 유상감자로 950억 원을 회수한 바 있다. 2003년에는 보통주를 대상으로 유상감자를 통해 760억 원을 회수했다. 두 번의 유상감자로 투자 금액 246억 원보다 많은 1710억 원을 회수해간 것이다. 브리지증권의 BIH는 유상감자를 통해 1125억 원을 회수하기도 했다.이처럼 외국 투기 자본들의 비상식적인 행태로 그간 부정적인 인식이 심어져 온 것에 대해 국내 진출한 한 투자회사의 A 상무는 “단순히 외국 사모 펀드들이 투기 자본이라기보다는 수많은 사모 펀드들의 투자 패턴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고 당부하고 있다.“외환은행을 인수한 론스타 같은 사모 펀드는 이를테면 넓은 바다에서 밑바닥의 죽은 물고기만 건져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죠.” 이런 자금들은 투자 고객들에게 약속한 수익률이 있기 때문에 정해진 기간 내에 수익을 확보하려는 속성이 있다. 그런 사모 펀드들이 국내 처음 들어왔기 때문에 투기 자본 논란이 생겼지만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는 것이 A 상무의 해명이다.그에 따르면 최근 국내에 들어오고 있는 외국 사모 펀드들의 성격이 변하고 있다. 부실 기업이 더 이상 매물로 나오지 않으니 그들의 역할은 국제 자본시장에서 투자를 유치해 오는 것으로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STX팬오션의 대규모 투자나 롯데홈쇼핑의 2조 원 투자의 경우가 외국인 투자자들이 자본을 끌어온 경우다. 투자를 유치하는 과정에서 투자 회사들이 한국의 투자 조건에 대해 어필하면서 덩달아 한국의 신용등급을 올리는 데 유리한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 말대로라면 해외 사모 펀드들이 긍정적 역할도 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부실 기업 매입, 해외 자본 유치에 이어 앞으로는 국내 기업에 대한 중장기적 투자가 해외 투자 회사의 대세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이 IMF 구제금융 후유증에서 벗어났고 경제도 많이 발전해 부실 자산이 없어졌으니 회사를 키워서 투자 수익을 낼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단기 수익보다는 3~7년가량의 투자 기간이 일반적이 되는 시대가 왔다는 얘기다. 최근 매각이 임박한 하나로텔레콤의 대주주인 뉴브리지캐피털도 3~5년의 기간동안 투자하는 펀드임을 자처하고 있다. 이런 투자 관행이 정착된다면 해외 사모 펀드나 헤지 펀드와의 건전한 파트너십의 가능성도 모색해볼 수 있다.일례로 올해 골드만삭스가 풍력 발전 설비 제조업체인 평산에 투자한 것을 들 수 있다. 평산은 풍력 발전 설비 타워 이음쇠인 2톤 중량의 링모양 타워플랜지를 비롯한 풍력 발전 설비가 매출의 40% 이상을 차지하는 회사로, 선박 및 화학플랜트용 신재생 에너지 부품의 생산 업체다. 이번 평산 투자는 중국 내 신규 공장 설립에 투자한 것이다. 이에 대해 골드만삭스는 “골드만삭스는 전 세계적으로 대체에너지, 청정 기술 관련 기업에 15억 달러 이상을 투자해 왔다. 이 분야의 방대한 경험이 국내 기업들의 발전을 지원할 수 있을 것”이라고 癬耽?있다.아직 국내에는 상륙하지 않았지만 추후 국내에 들어올 투자 회사도 예상해 볼 수 있다. 우량 기업이지만 덩치가 너무 커 수익을 내지 못하는 회사를 ‘다이어트’시키는 작업이다. 기업이 오래돼서 경영진이 필요 이상으로 많아지고 직원 수도 많은 곳이 사모 펀드의 투자 대상이다. 영화 ‘귀여운 여인(Pretty Woman)’에서 리처드 기어가 맡은 역할이 기업을 산 다음 쪼개서 되파는 투자 회사 임원이다.일례로 미국의 MBK펀드가 비효율적인 경영으로 적자에 허덕이던 크라이슬러를 매입한 뒤 기존 경영진을 도요타 자동차 출신으로 교체하고 기존 노조 계약을 다시 하며 체질을 바꾼 것을 들 수 있다. 국내 사모 펀드도 이런 것들을 점차 시도하려는 추세다.해외 사모 펀드는 투기 자본 논란에도 불구하고 큰 그림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 이들 사모 펀드의 입장이다. 자본의 성격이 문제이지 국적 자체가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이들이 예를 드는 곳으로 한국자산관리공사(KAMCO)가 있다.한국자산관리공사는 IMF 구제금융 때 국내 부실 기업을 인수해 경영 정상화 이후 이를 되팔면서 수천억 원의 차익을 벌어들였다. 국내 기업들이 정상화되면서 새로운 수익 모델을 찾기 위해 해외 진출을 점차 늘리고 있다. 해외 투자 자본은 약이 될 수도 있고 독이 될 수도 있다.최근 매각을 앞둔 하나로텔레콤은 대주주인 뉴브리지캐피털-AIG 컨소시엄이 최소 5000억 원대의 매각 차익을 볼 것으로 예상되면서 또다시 ‘먹튀’ 논란이 일고 있다.그러나 하나로텔레콤 측은 시설 확대, 고용 창출, 중장기 재무 구조 안정, 새로운 성장 동력 발굴 등에 성과를 이뤘다며 ‘투기 자본’은 아니라고 얘기하고 있다. 하나로텔레콤 인수(2003년) 당시 뉴브리지캐피털 국내법인의 대표이사이던 박병무 사장은 2006년부터 직접 경영을 맡고 있다.자본주의 경제 제도 하에서 투기와 투자를 명확히 구분지을 수는 없지만 통상 단기 자본 수익을 목적으로 투자하는 자금을 투기성 자본이라고 합니다. 하나로텔레콤 대주주는 통상 3~5년의 투자를 목적으로 하는 사모 펀드로, 기업의 중장기 성장 전략을 추구하는 차별화된 전략적 투자자입니다.그런 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 당초 예상보다 빠른 시간 내에 하나로텔레콤이 정상화되고 수익이 개선되는 등 목표를 일찍 달성한 것이라고 보면 됩니다. 지금 추세대로라면 하나TV는 2008년 말 130만 가입자 확보가 가능하고 안정적인 수익 창출이 가능할 겁니다. 하나TV가 1년 만에 이렇게 히트하리라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을 겁니다.일방적인 인원 감축이 아니라 희망퇴직입니다. 어느 기업이나 적자가 누적되면 경영 정상화 과정을 밟게 마련입니다. 그렇지만 명예퇴직과 별개로 경영권 변동 이후 자회사를 포함해 총 1400여 명의 신입 및 경력 사원을 채용했습니다. 특히 중장기 인적 자본 육성을 위해 약 130억 원을 투자해 ‘액션 센터(가칭·2008년 1월 완공 예정)’를 설립해 교육 서비스의 질을 제고할 예정입니다.하나로텔레콤은 2003년 11월 경영권 변동 이후 4년 동안 약 1조2000억 원 이상을 시설 투자로 사용했습니다. 2006년 하나로텔레콤의 카펙스(CAPEX: Capital Expenditure-시설 투자) 비율은 18.3%로 SK텔레콤(14.3%), LG데이콤(6.6%)와 비교해도 훨씬 높은 수준으로 사모 펀드가 1대 주주가 아닌 통신 사업자 중에서도 최상위 수준입니다.하나로텔레콤은 오히려 2006년 2월 무상감자를 통해 1조729억 원에 달하는 적자를 완전 해소했습니다. 경영권 변동 후 무보증회사채 등급도 3단계 올라 지금은 ‘A-’입니다. 부채 비율도83.5%로 KT의 부채비율(111%)보다 낮은 수준입니다.지금 하나TV의 가입자는 70만 명이지만 경쟁사의 메가TV는 23만 명 정도입니다. 물론 어려움이 컸지만 지금 하나TV가 선점 효과를 누리고 있지 않습니까.이는 대주주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장기적으로 회사를 위한 것으로 직원들도 동의하는 부분입니다. 영업 강요는 없었습니다.취재=우종국 기자 xyz@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