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초일류 기업
미국의 경제 전문지 포천이 2007년에 매출 기준으로 발표한 ‘글로벌 500대 기업’ 리스트를 보면 미국이 162개로 1위이고 일본이 67개로 2위를 차지했다. 이어 중국 기업은 24개, 인도 기업은 6개가 리스트에 올라 있다. 한국은 14개, 대만은 6개, 그리고 기타 아시아 국가인 태국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터키가 각각 1개씩이다. 전체적으로 포천 선정 글로벌 500대 기업 중 아시아 기업은 121개로 24%를 차지했다. 과거에 비하면 500대 기업 개수가 많이 늘어나긴 했지만 아직도 많이 미흡한 수준이다.아시아 기업은 브랜드 측면에서 더 큰 취약성을 드러낸다. 2007년에 인터브랜드와 비즈니스위크가 선정, 발표한 ‘세계 100대 브랜드 기업’을 보면 아시아 기업은 11개뿐이다. 그것도 일본과 한국 기업들만 있고 중국 기업과 인도 기업은 아직 없다. 일본 기업으로는 도요타(6위) 혼다(19위) 소니(25위) 캐논(36위) 닌텐도(44위) 파나소닉(78위) 렉서스(92위) 닛산(98위)이 있고, 한국 기업으로는 삼성(21위) 현대(72위) LG(97위)가 들어 있다.그렇지만 아시아 기업의 미래는 밝다. ‘이머징 마켓(emerging market)’이라는 말을 처음 만든 앙트완 반 아그마엘 EMM 회장은 자신의 책 ‘이머징 마켓의 시대’에서 풍부한 경험과 지식을 토대로 25개 유망 기업을 선정했다. 국가별 분포를 보면 한국(4) 인도(4) 브라질(4) 멕시코(4) 중국(3) 대만(2) 말레이시아(1) 칠레(1) 아르헨티나(1) 남아프리카공화국(1) 등의 순이다. 아시아 기업은 전체 25개 기업 중에 절반이 넘는 14개나 된다.선정된 기업을 좀 더 구체적으로 보자. 우선, 우리나라 기업으로는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현대중공업 포스코가 선정됐다. 그리고 중국 기업으로는 가전 회사인 하이얼(Haier), 컴퓨터 회사인 레노보(Lenovo), OEM 전문 기업인 혼하이정밀공업(Hon Hai)이 있다. 그리고 대만 기업으로는 무선통신전자 회사인 HTC, 반도체 회사인 TSMC, 운동 용품 회사인 이우에이우엔, 말레이시아 회사로는 LNG 수송 회사인 MISC(Malaysia International Shipping Corporation)가 있다. 인도 기업으로는 인포시스(IT 서비스), 란박시(제약), 릴라이언스 인더스트리(석유화학)가 있다.이 기업들은 전 세계 구심점을 변화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전망인데 그중 일부는 지금 수준으로도 월드 클래스, 즉 세계 수준으로 손꼽아도 전혀 손색이 없는 기업이다. 이들 기업들은 선진국의 경쟁 기업들을 인수하는 일도 서슴지 않아 선진국 기업의 입지도 매우 흔들리고 있다.그런데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가전 브랜드라고 하면 어떤 브랜드가 생각나는가. 일본 가전으로는 소니 도시바 샤프 산요 히타치 파나소닉, 미국은 월풀 메이택 GE, 유럽은 일렉트로룩스 지멘스, 그리고 우리나라의 LG와 삼성이 꼽힌다. 여기다 최근 떠오른 아시아 일류 기업으로 중국의 하이얼을 들 수 있다.하이얼은 중국 IT 기업 중에 매출 1위를 차지하고 있는데 당초 주력 제품은 냉장고 에어컨 세탁기였으나 이제는 컴퓨터 휴대폰 디지털TV까지 생산해 명실상부한 IT 기업이 되었다. 기간산업의 국영기업을 포함하면 중국에서 매출이 16위이지만 민영 기업만 따지면 매출 1위다. 하이얼은 냉장고와 에어컨 같은 백색 가전만 하면 세계 최대이고 컴퓨터를 포함한 전체 가전에서는 세계 5위다. 작년에는 미국인들이 자랑스럽게 자부하는 가전 기업인 메이택을 인수하려고 시도했을 정도로 하이얼의 위상은 대단하다.현재 하이얼그룹의 총재인 장 루이민이 1984년 하이얼 사장이 되었을 때만 하더라도 이 회사는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었고 회사 기강도 매우 흐트러져 있었다. 하지만 구조 조정과 조직 관리, 기강 확립, 기업 문화의 쇄신으로 하이얼은 급성장했다. 하이얼의 성공 요인으로 다음 8가지를 꼽을 수 있다.첫째, 하이얼은 탁월한 기업 문화를 추구했다. 하지 않으면 몰라도 한다면 최고가 될 것을 요구했다. 둘째, ‘일일처리 일일향상’을 통한 끊임없는 자질 관리다. 내일의 목표는 오늘보다 높아야 한다. 행동을 중시하는 인재 관념도 빼놓을 수 없다. 모든 사람이 인재라고 봤으며 간택보다는 경쟁을 선호했다. 또한 우위를 선점하는 브랜드 방침을 실천했다. 먼저 시장을 확보한 후 이익을 모색하자는 것이다. 다음은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하는 혁신 전략이다. ‘자신을 부정하고 시장을 창출하라’를 모토로 삼았다. 하이얼은 정성을 다하는 서비스를 유난히 강조했다. 제품이 아니라 신용을 팔아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안으로는 기업 문화, 밖으로는 시장’을 내걸고 ‘쇼크에 빠진 물고기 잡아먹기 방식’의 확장을 추진했다. 마지막으로는 ‘어려운 일 먼저, 쉬운 일은 나중에 한다(先難後易)’는 독특한 국제화 전략을 들 수 있다.경쟁력을 갖춘 아시아 초일류 기업은 앞으로 더욱 많이 나타날 것이다. 2007년 포천이 선정한 글로벌 500대 기업 중에 아시아 기업은 121개이지만 앞으로 20년 안에는 더욱 늘어나 아시아 기업이 200개는 족히 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 이유는 아시아의 소비 시장은 어느 시장보다 빠른 속도로 성장할 것이며 기업은 종전의 모방 기술에서 벗어나 혁신 기술, 첨단 기술로 무장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 아시아만을 대상으로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로 시장을 더욱 확대할 것이며 축적된 자본을 가지고 해외의 우수 기업들을 인수·합병(M&A)하는 데 더욱 박차를 가할 것으로 전망돼 기업 덩치도 더욱 커질 것이다.물론 아시아 기업들이 초일류 기업이 되기 위해 앞으로 보강해야 할 자질도 많다. 현재 아시아 기업들은 미국과 유럽 기업에 비해 낮은 마케팅 능력을 더욱 높여야 하는데, 특히 상품의 디자인은 매우 중요하다. 또 앞서 말했듯이 이머징마켓 기업의 외적 수치에 비해 브랜드 파워가 아직 약하므로 이를 크게 보강해야 한다.그리고 선진국 시장을 파고들려면 기존 상품을 더욱 친환경적으로 만들어야 선진국 소비자에게도 소구할 수 있고 선진국이 쳐놓은 무역 장벽도 헤쳐 나갈 수 있다. 그리고 과거 미국과 유럽식으로 에너지를 많이 사용하는 방식을 고집하다가는 전 세계적으로 지구 온난화 현상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으므로 지속 가능 경영을 본격 도입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풍부한 자금력을 가지고 다른 나라의 기업들을 M&A하더라도 기업 문화를 무시해서는 성공적인 M&A를 이뤄낼 수 없으므로 자신만의 기업 문화를 잘 만드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송병락 서울대 명예교수는 선진국, 중진국, 후진국의 차이점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 바 있다. ‘명품을 잘 만들면 선진국이고, 짝퉁을 잘 만들면 중진국이며, 짝퉁도 못 만들면 후진국이라는 것이다.’ 일리 있는 말이다. 아시아 초일류 기업 중에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명품을 만드는 기업들이 많이 나오기를 정말 바란다. 김민주·리드앤리더 대표 mjkim8966@hanmail.net©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