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선거전 관전법

미국 대통령 선거전이 초반부터 뜨겁다. 특히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과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 간 열전은 손에 땀을 쥐게 만들고 있다. 두 사람은 대선 레이스 개막을 알린 아이오와 코커스(당원대회)와 뉴햄프셔 프라이머리(예비선거)에서 각각 1승씩을 주고받으며 팽팽한 출발을 보였다. 누가 승리할 것인지 섣부른 예단을 못하는 상황이다.민주당 경선이 워낙 열을 뿜다 보니 공화당 경선은 상대적으로 관심권 밖으로 밀려나 있다. 그러나 미국 내 보수주의자의 저변이 단단해 공화당이 언제까지 지리멸렬할 것으로 보기는 힘들다. 더욱이 아이오와 코커스에서 승리한 마이크 허커비 전 아칸소 주지사의 돌풍이 지속되고 있는데다 뉴햄프셔 프라이머리에서 승리한 존 매케인 상원의원이 ‘돌아온 보수 원조’의 기치를 내걸고 있으며 전국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루디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의 잠재력도 여전해 뜨거운 3파전이 벌어질 전망이다.민주 공화 양당에서 누가 대선 후보가 될지 윤곽이 드러날 시기는 ‘슈퍼 화요일’로 불리는 2월 5일이다. 이날 양당은 뉴욕 캘리포니아 뉴저지 등 각각 22개주에서 동시 경선을 실시한다. 이날 경선을 치르는 지역은 대선 후보를 선출할 전체 대의원의 40% 이상을 보유하고 있다. 따라서 슈퍼 화요일에 누가 대세를 거머쥐느냐가 본선에 진출할 후보를 판가름할 전망이다.버락 오바마. 올해 나이 46세. 흑인 아버지와 인도네시아 어머니 사이에서 승리한 흑인이다. 하버드대를 나온 수재이지만 중앙 무대 정치 경력이라곤 이제 초선의 상원의원이 전부다. 행정 경험도 없고 정치적 능력도 검증되지 않았다. 그가 ‘최초의 흑인 대통령’을 꿈꾸며 출사표를 던졌을 때만 해도 그저 찻잔 속의 태풍이려니 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아니올씨다’였다. 말 그대로 오바마는 검은 돌풍을 몰고 왔다.그는 매력적이다. 사람을 끌어들이는 흡인력을 갖고 있다. 그의 연설을 듣고 있으면 가슴속 깊은 데서 감정이 복받친다. 그는 숨은 감정을 끌어내는 능력을 갖고 있다. 그가 내건 캐치프레이즈는 ‘변화와 희망’. 제대로 짚었다. 끝없어 보이는 이라크전과 아프카니스탄전에다 경기 둔화로 지친 미국인들에게 그는 “이제는 변화할 때”라고 역설한다.그의 호소력 있는 연설과 제대로 짚은 메시지는 과거 어떤 사람을 연상시킨다. 다름 아닌 ‘영원한 대통령’으로 기억되는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이다. 40대 때 대통령이 돼 미국의 변화를 이끌었던 케네디 전 대통령의 이미지와 오버랩되면서 그의 주가는 갈수록 치솟고 있다.역설적인 것은 그의 맞수인 힐러리의 남편인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도 그는 상당히 닮아 있다는 점이다. 지난 1992년 대선 후보로 나선 클린턴 전 대통령은 초기만 해도 무명이었다. 그러나 아이오와 코커스에서 3위, 뉴햄프셔 프라이머리에서 2위를 차지하면 욱일승천의 기세를 이어가 백악관까지 차지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이 내걸었던 구호는 다름 아닌 ‘변화와 희망’이었다. 당시도 지금처럼 미국의 대내외 환경은 답답했다. 이를 타파하기 위해 미국 유권자들은 45세의 클린턴 전 대통령을 선택했다. 오바마의 지금 상황과 비슷하다.오바마는 이런 강점을 바탕으로 아이오와 코커스에서 1위를 차지했다. 비록 뉴햄프셔 프라이머리에서 힐러리에게 2위로 밀려났지만 그의 말대로 1주일 전만 해도 누구도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을 그는 해냈다. 이런 돌풍 덕분에 그는 전국 지지율에서도 힐러리를 거의 따라붙었다. 최초의 흑인 대통령의 꿈을 그는 점차 현실화해 가고 있다.힐러리 클린턴. 그는 강하다. 이성적이다. 똑똑하고 잘났다. 실수하는 법이 없으며 매사 자신감도 넘쳐난다. 8년간의 백악관 안주인 경험에다 상원의원 8년째로 국정이나 정치 경험도 풍부하다. “클린턴을 대통령으로 만든 건 다름 아닌 힐러리”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정치적 야심도 크다. 그래서 그는 미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라는 신기원을 열 가능성이 높다.이른바 ‘대세론’이다. 그는 이미 작년부터 대세론을 구가해 왔다. 정치 모금액 1위, 양당 통틀어 전국 지지율 1위에다 클린턴 전 대통령이란 든든한 버팀목까지 있다.그렇지만 뚜껑을 열고 보니 틀렸다. 지난 4일 실시된 아이오와 코커스에서 그는 오바마는 물론 존 에드워즈 전 상원의원에게도 밀려 3위에 그쳤다. ‘대세론’은 금이 갔다. 중도에 포기할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이런 상황을 역전시킨 건 다름 아닌 ‘힐러리의 눈물’이었다. 뉴햄프셔 프라이머리를 하루 앞둔 지난 7일 부동층 유권자 16명을 대상으로 대화를 나누던 힐러리는 그만 눈물을 흘렸다. “왜 그렇게 잘하느냐”는 질문에 “쉽지 않다. 쉽지 않아”를 연발하면서다. 역사적으로 대선 후보의 눈물은 긍정적인 효과보다는 부정적인 효과를 가져왔다.힐러리는 달랐다. 그렇게 잘나고 똑똑하고 완벽한 것처럼 비춰진, 너무나 잘나서 얄밉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은 힐러리가 기실 보통 사람과 똑같은 감정의 소유자였다는 것이 부각되면서 그에게 부족했던 감성이 보충됐다. 이는 여성과 노인 유권자들의 발걸음을 투표소로 이끌었으며 힐러리는 결국 뉴햄프셔 프라이머리에서 1위를 거머쥐었다.힐러리의 눈물이 시사하는 바는 크다. 다름 아닌 선거 전략의 수정이다. 힐러리는 그동안 경험과 경륜을 내세웠다. ‘준비된 대통령’이라는 게 그의 호소였다. 그러나 잘못 짚었다. 미국의 국내외 여건이 좋을 때는 경험과 경륜이 플러스 효과를 낸다. 그러나 대내외적으로 답답한 상황이다. 이런 상황을 타파할 후보를 원하는 유권자들에게 힐러리의 경험론은 결국 그를 ‘낡은 상품’으로 포장해 버렸다.힐러리로서는 다행이다. 두 번째 경선인 뉴햄프셔에서 선거 전략의 오류를 발견하고 시정할 수 있으니 말이다. 뉴햄프셔에서 승리한 힐러리는 앞으로 감성 전략을 마음껏 구사할 계획이다.민주당 경선은 오바마와 힐러리의 양자 대결로 압축됐다. 에드워즈가 선전하고 있지만 힘이 부치는 기색이 역력하다. 과연 오바마 바람이 뉴욕 캘리포니아 등 대도시 지역까지 강타할지, 아니면 ‘눈물’로 상징되는 감성 전략으로 재무장한 힐러리가 유권자들의 마음을 파고들 수 있을지 여부가 관건이다.공화당은 상대적으로 열기가 덜하다. 그러나 공화당 경선은 이제부터라는 시각이 많다. 크게 보면 3파전이다. 아이오와 코커스에서 1위를 차지하면 돌풍을 몰고 온 허커비는 기독교 복음주의자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돌풍은 뉴햄프셔 프라이머리에서 3위로 떨어지면서 주춤했지만 기독교 원리주의자들의 기반이 광범위한 만큼 상당 기간 지속될 전망이다.지난 2000년 공화당 경선에 나섰다 조지 부시 대통령에게 패했던 매케인은 ‘돌아온 보수’다. 작년 초만 해도 공화당 선두를 달렸으나 이라크전 적극 찬성 등의 영향으로 지지율은 하락세를 보였다. 하지만 ‘베트남전의 영웅’으로 강한 미국을 주장하는 매케인은 파키스탄 사태 등으로 미국의 외교가 흔들리는 조짐을 보이면서 다시 되살아나 뉴햄프셔 프라이머리에서 승리를 얻은 것으로 평가된다.아이오와와 뉴햄프셔에서 하위에 그쳤지만 공화당 경선에서 무시 못할 강자는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이다. 줄리아니는 아이오와와 뉴햄프셔 경선을 거의 포기하고 플로리다와 캘리포니아 뉴욕 등 대의원이 많은 지역의 표밭 갈이에 열중했다. 그런 만큼 다른 지역 경선이 본격화되면 줄리아니의 바람도 상당히 불어올 전망이다.하영춘·한국경제 뉴욕 특파원 ha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