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막히는 대통령 후보 경선

점입가경이다.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이 그렇다. 지난 2월 5일 실시된 이른바 ‘슈퍼 화요일’ 경선을 고비로 무게 추는 ‘검은 돌풍’의 주인공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으로 기우는 분위기다. 그렇지만 ‘최초의 여성 대통령’을 꿈꾸는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의 저력도 만만치 않다. 두 후보는 지지 계층이 뚜렷해 무게 추가 급속히 어느 한쪽으로 쏠리기 힘들다는 게 일반적인 전망이다. 이에 따라 오는 8월로 예정된 전당대회에 가서야 후보가 결정되지 않을까 하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이에 비해 공화당은 사실상 후보를 결정지었다. 다름 아닌 존 매케인 상원의원이다. 올해 나이 71세로 그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사상 최고령 대통령’이라는 역사를 쓰게 된다. 다른 대선전 이맘때면 이미 민주당과 공화당 후보가 결정돼 ‘본선 대결’에 관심이 쏠리는 시점이다. 그렇지만 올해는 오바마가 뿜어내는 검은 돌풍이 워낙 거세 역대 그 어느 대선보다 팽팽한 접전이 이어지고 있다.한 가지 주목해야 할 점은 최대 대선 이슈로 경제 문제가 부상되고 있는 점이다. 미 경제가 어려운 탓이다. 따라서 과연 어느 후보가 경제에 대한 해법을 내놓을 것인가도 민주당 경선 승부를 가를 주요 변수로 꼽힌다.이렇듯 대선전이 갈수록 열기를 뿜고 있지만 기업들은 힘들다. 경기 둔화가 언제 끝날지 몰라서다. 그러다 보니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은 툭하면 ‘역풍(headwinds)’이란 단어를 입에 올리고 있다. 불가항력적인 맞바람이 불어 어쩔 수 없다는 뜻이다. 오바마가 일으키는 돌풍과 기업인들이 느끼는 역풍, 2008년 겨울 미국의 풍경이다.버락 오바마. 47세의 초선 상원의원. 흑인. 그는 마력을 갖고 있다. 간단명료하고 쉬운 언어와 자신감을 불어 넣어주는 화법. 그의 연설을 듣고 있으면 저절로 미국이 변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가 내건 캐치프레이즈는 ‘변화와 희망’. 입만 열면 “미국은 변하고 있다. 우리는 할 수 있다”고 되뇐다.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의 이미지와 겹치면서 이라크전과 경기 둔화로 지친 미국인들은 그에게서 희망을 발견한다.그래서 그가 일으키는 건 돌풍이다. 돌풍의 위력은 갈수로 거세지고 있다. 2월 5일 22개 주에서 동시 실시된 이른바 ‘슈퍼 화요일’ 경선 이후 오바마는 독주 태세를 갖추고 있다. 지난 12일까지 실시된 7개 주에서 파죽지세의 완승을 거뒀다.이로써 지난 16일 현재 오바마가 확보한 대의원은 1223명(AP통신 집계)으로 힐러리(1198명)보다 25명 많아졌다. 대선 레이스가 시작된 이후 오바마가 대의원 수에서 힐러리를 앞서가기는 처음이다. 민주당의 대의원 수는 4049명. 대선 후보로 확정되기 위해서는 과반수인 2025명을 확보해야 한다. 아직 섣불리 승부를 예측하기는 힘들지만 오바마가 유리한 분위기를 점한 것은 사실이다.그 원인은 바닥 민심을 읽는 뛰어난 능력과 유권자들의 잠재돼 있던 변화에 대한 갈망을 이끌어 내는 오바마의 재주다. 종전 대선 전략이었던 ‘위로부터의 선거 운동’ 전략을 팽개친 채 ‘아래로부터의 운동’이 주효한 결과다. 그러다 보니 흑인은 물론 젊은층으로부터 그는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아이로니컬하게도 백인 남성도 힐러리보다 오바마를 더 지지하며 고학력층과 부자일수록 오바마에 대한 지지도가 높다. 바로 오바마 돌풍이다.그렇지만 ‘천하의 힐러리’다. 힘에 부치는 기미가 역력하지만 저력을 무시하지 못한다. 선거 책임자를 바꾸는 등 이미 전열을 재정비했다. 오는 3월 4일로 예정된 ‘미니 슈퍼 화요일’로 불리는 오하이오 로드아일랜드 텍사스 버몬트 주에서 승리해 다시 분위기를 거머쥐겠다는 게 힐러리의 각오다.둘의 경선이 워낙 치열하다 보니 민주당 대선 후보는 전당대회가 열리는 오는 8월 말까지 확정되지 못할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드문 일이다. 관건은 3월 4일이다. 만일 오바마가 예상을 깨고 3월 4일 4개 주 경선에서 승리할 경우 그의 돌풍은 태풍으로 변할 공산이 크다.존 매케인. 올해 71세의 노인이다. 해군사관학교를 나온 직업군인 출신이다. 지난 1983년 정치에 입문, 25년째 의사당으로 출근하는 정치인기도 하다.공화당 경선 초기 그는 별로였다. 루디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이나 마이크 허커비 전 아칸소 주지사에 밀려 전국 지지율 3, 4위에 그쳤다. 미국에서는 필수적인 선거 자금도 모이지 않고 선거 조직도 시원치 않아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웬걸. 경선전이 벌어지자 매케인은 ‘돌아온 키드(Came Back Kid)’였다.지난 16일 현재 그가 확보한 대의원 수는 821명(AP통신 집계). 후보로 지명되기 위한 1191명엔 아직 못 미친다. 그러나 유일하게 남은 적수인 허커비 전 주지사의 241명을 확실히 앞서 있다. 사실상 대선 후보로 선정된 것이나 마찬가지다.그의 저력은 원칙적이고 일관적인 소신이다. 매케인은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해군 제독을 지낸 군인 집안 출신이다. 그도 지난 1958년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해군 조종사로 근무했다. 월남전에 참전했던 지난 1967년 전투기가 격추돼 5년 반동안 포로 생활을 하면서 고문으로 어깨가 부러지는 고통을 겪기도 했다. 당시 매케인의 부친이 미 태평양함대 제독이라는 것을 안 월맹군은 조기 석방을 제안했으나 매케인은 ‘전쟁포로는 생포된 순서에 의해 석방돼야 한다’는 행동강령을 내세워 거부했다. 그 후 ‘월남전의 영웅’으로 귀환했으며 포로 생활을 담은 ‘나이팅게일의 노래’는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다.이런 경력이 있는 매케인은 누구나 발을 빼기 원하는 이라크전에 대해 미군을 증강해야 한다고 초지일관 주장하고 있다. 작년만 해도 거의 비웃음을 받았으나 이라크전이 소강 상태에 접어들면서 그의 원칙론은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본선도 재미있게 됐다. 오바마가 나올 경우 ‘흑인과 백인’의 경쟁이다. 힐러리가 올라오면 ‘여성과 남성’의 구도가 된다. 물론 인종적 성별적 문제인 만큼 누구도 드러내 놓고 말하지 않지만 생물학적 구도는 부인할 수 없다. 현재 여론조사 결과 오바마와 힐러리 누가 나와도 매케인을 근소한 차이로 이기는 것으로 나타난다. CNN 조사 결과 오바마는 48% 대 44%로, 힐러리는 47% 대 45%로 승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대선전 초반만 하더라도 최대 이슈는 이라크전과 건강보험 문제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달라졌다. 경제가 최대 이슈로 부상한 것. 민주당 지지자의 48%가 경제 문제를 최대 이슈로 꼽았다. 공화당 지지자의 39%도 역시 경제 문제가 시급하다고 답했다.이렇게 되자 각 후보들은 경제 문제에 대한 해법을 내놓고 민심을 파고들고 있다. 역설적으로 미국의 경기 둔화가 그만큼 심각해지고 있다는 얘기다.이러다 보니 미 CEO들 사이에 유행하는 단어가 ‘역풍’이다. 인위적으론 어떻게 해볼 수 없을 만큼 기업 환경이 어렵다는 의미다. 제리 양 야후 CEO는 “목표를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지만 역풍에 직면해 있다”고 말했다. 릭 왜고너 제너럴모터스(GM) 회장은 지난달 “우리 모두가 보고 있는 것처럼 우리는 지금 아주 심각한 역풍에 맞서 있다”며 현재의 어려움을 털어 놓았다.미국 4위 은행인 와코비아은행의 케네디 톰슨 CEO도 최근 “와코비아를 포함한 금융회사들은 지금 역풍에 맞서 싸우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하영춘·한국경제 뉴욕 특파원 ha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