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파 경영학 박사 스카우트 전쟁

한국학술진흥재단의 ‘경영학 분야 외국박사학위 신고자 현황(취득년도 기준)’에 따르면 2000년 이후 40명 수준이던 해외파 경영학 박사학위 취득자가 2004년 20명 수준으로 절반 이상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그중 60% 이상을 차지하는 미국 출신도 2001년 이후 27명(2001년), 26명(2002년), 25명(2003년), 16명(2004년), 10명(2005년), 12명(2006년)으로 2004년 이후 절반 이상 줄었다.학술진흥재단 측은 “모든 외국 박사학위 소지자들이 재단에 신고하는 것은 아니다. 또 학위 취득 3~4년 후 귀국해 신고하면 최근년도 수치가 올라갈 수 있다”고 얘기하고 있지만 현재 시점에서 외국 경영학 박사 공급이 크게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그 이유로 먼저 꼽히는 것이 IMF 구제금융이다. 독일에서 유학한 김광희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IMF 외환위기 때 해외로 유학하려다 포기한 사람이 많다. 그 여파가 10년 뒤인 지금쯤 나타나면서 외국 박사들이 줄어든 것 아니겠느냐”는 분석을 내놓았다.1993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던 김범 숭실대 경영학부 교수는 “해외 유학을 떠나는 인원이 줄었을 뿐만 아니라 현지에서 학업을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간 사람도 많았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1997년 미국 유학을 떠난 조성우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도 당시 분위기를 “굉장히 힘들었다. 아예 해외 유학을 엄두도 못내는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둘째, IMF 구제금융뿐만 아니라 미국에서 한국인 쿼터(할당)가 줄어든 것도 한 원인이다. 숭실대 경영대학원장 장범식 교수는 최근 해외파 경영학 박사가 줄어든 데 대해 “지난 10년 동안 미국 대학들이 경영학 박사의 규모 자체를 줄였다. 수요가 많은 MBA 과정을 크게 늘리면서 일반 석사·박사 과정의 규모 80~90% 수준으로 줄인 것이다. 게다가 외국인, 특히 아시아 지역 쿼터에서 한국인 TO(Table of Organization : 정원)가 많이 줄고 그 자리를 중국과 인도의 학생들이 차지하다 보니 한국인 출신이 절대적으로 줄어들게 됐다”며 “특히 회계, 재무 전공자는 미국 월스트리트(금융업계)로 많이 유입되다 보니 부족해졌다”고 강조했다.셋째, 현지 유학파들이 한국으로 돌아오길 꺼리는 것도 또 다른 원인으로 꼽힌다. 일단 급여에서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 장범식 교수는 “특히 인기가 많은 회계, 재무, 금융 분야는 미국에서 초임 연봉으로 15만~20만 달러까지 받을 수 있지만 한국에서는 그의 4분의 1~3분의 1 수준이다. 또 미국에서는 능력과 성과에 따라 연봉 차이가 크지만 한국에서는 모든 교수가 연봉이 같아야 한다는 분위기가 있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연세대 고려대 등 서울 상위권 대학의 조교수 초임 연봉은 5000만~6000만 원대로 알려져 있다.해외파라고 해서 특별히 연봉을 더 많이 받지는 못한다. 원어 강좌가 가능하더라도 금전적 보상 대신 수업시간을 줄여 주거나 다른 업무 부담을 덜어주는 차원의 인센티브를 제공받는다.연봉뿐만 아니라 연구·강의 여건도 한국에 돌아오기를 꺼리게 만드는 원인이다. 미국에서는 대학별로 교수의 역할이 잘 분화돼 있어 연구만 하고 싶은 교수, 강의를 잘하는 교수 등 원하는 분야를 고를 수 있지만 한국에서는 강의도 잘해야 하고 연구 실적도 좋아야 하고 게다가 행정적인 부담까지 더해져 꺼리는 이유가 되고 있다.그렇지만 이에 대한 반론도 있다. 2005년 학위를 마치고 지난 학기 연세대 경영대학에 부임한 조성우 교수는 “경력이나 연봉 등에서 미국을 선호할 수 있겠지만 문화적 차이라는 것이 있다. 같은 일을 하더라도 존경심이나 사회적 위치라는 면에서 한국에서 교수의 지위가 더 높다. 한국의 정서를 그리워해 귀국을 결심하는 경우도 있다”고 다른 이유를 들었다. 조 교수는 군 입대를 위해 학위 취득 후 귀국했다가 한국에 정착한 경우다.자녀 교육을 위해 해외에 남기를 선택하는 경우도 많다. 숭실대 김범 교수는 “예전에는 한국에서 대학을 다니고 유학을 떠나면 다시 돌아와야 한다는 인식이 있었는데, 요즘은 많이 변했다. 귀국해도 미국에서 태어나 미국인으로 자란 자녀들이 한국에서 적응하기가 쉽지 않아 자녀 문제로 고민하는 것을 많이 봤다. 귀국하더라도 홀로 ‘기러기 아빠’가 되는 경우도 많다”고 분위기를 전했다.해외파 경영학 박사에 대한 공급은 줄어드는 데 반해 수요는 최근 들어 급격히 늘고 있다. 대학들마다 경쟁적으로 경영대학 키우기에 나서면서 교수 충원이 한창이기 때문이다.연세대 경영대학은 2007년 5명, 2006년 4명, 2005년 6명의 신임 교수를 채용했다. 매 학기마다 2~3명의 교수진을 충원한 것이다. 최근 임용된 교수들은 모두 해외에서 학위를 받고 현지에서 강의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연세대 경영대는 “신임 교수 채용 시 해외에서 1년 이상 강의한 경력을 필수적으로 요구하고 있다”고 이유를 설명했다.고려대 경영대학도 현재 80여 명의 교수진을 2010년까지 130명으로 늘릴 계획이다. 고려대 경영대에서 최근 충원한 교수들도 100% 해외 유학파다. 경영대 측은 “신임 교수들은 기본적으로 영어로 강의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고 전했다. 고려대 경영대는 10년 전 영어 강좌를 시작해 학부과정의 원어 강좌 비율을 55%까지 높인 상태다. 2010년까지 70%로 늘리겠다는 것이 경영대 측의 계획이다.서울대 경영대학도 현재 학부 19%, 대학원 23%인 영어 강좌 비중을 꾸준히 늘릴 계획이다. 서울대 경영대 역시 신규 임용 교수들에게 영어 강좌 능력을 필수적으로 요구하고 있다.이처럼 경영대학들이 경쟁적으로 교수진을 늘리는 데는 그만큼 경영학에 대한 수요가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학부과정에서는 학생들이 자신의 전공과 상관없이 부전공 또는 복수전공으로 경영학을 선택하고 있다. 이에는 최근의 취업난에 대한 불안감도 한몫하고 있다. 인문학이나 사회과학뿐만 아니라 이공계에서도 부전공으로 경영학을 수강하는 분위기다. 숭실대의 경우 전체 학생의 60%가 부전공으로 경영학을 선택하고 있다.학부뿐만 아니라 대학원에서도 크게 수요가 늘고 있다. 실무자들을 대상으로 한 최고경영자과정, 야간대학원에 지원하는 직장인들이 늘고 있고, 특히 경영전문대학원(MBA)을 키우기 위한 경쟁이 학교 간에 치열하다.최근 경영대학들이 국제 경영학 교육 인증을 받기 위해 시설과 교수를 확충하고 있는 것도 한 원인이다. 현재 AACSB(The Association to Advance Collegiate Schools of Business: 미국경영교육인증) 인증을 받은 곳은 서울대(2002년), 카이스트(2003년), 고려대(2005년), 세종대(2007년) 네 곳 뿐이다. 고려대는 2007년 EQUIS(The European Quality Improvement System: 유럽교육인증)까지 획득해 국내 대학으로는 유일하게 두 개의 경영학 인증을 받은 상태다.해외파가 취업하기를 원하는 상위권 대학은 그나마 안정적으로 인력을 충원하고 있지만 중위권 대학들은 해외파 출신 품귀 현상을 실감하고 있다. 숭실대 장범식 교수는 “통계적으로 몇 명이 부족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은 맞다. 특히 회계와 재무 분야에서는 아주 부족하다”고 얘기하고 있다.그러나 “현재 국내파의 연구 실적도 상당히 좋아졌고 영어 프레젠테이션이 가능한 교수도 많아져 해외파와 국내파 사이의 차이가 많이 줄어들었다. 서울대 고려대 출신 박사들도 나오는 족족 좋은 자리를 골라 가고 있다. 지금은 국내파의 실력이 해외파의 실력을 따라잡는 전환기라고 봐야 할 것 같다. 미국 출신이라고 하더라도 실력이 떨어지는 경우는 뽑지 않는다”며 국내파의 실력도 해외파 못지않음을 강조하고 있다.최근 대부분의 경영대학들은 교수 임용 시 최종 면접에서 영어 프레젠테이션을 실시하면서 원어 강좌가 가능한 국내파가 늘어난 데다 국내 대학들이 AACSB 등 국제경영교육인증을 받으면서 양질의 박사 양성 과정이 생긴 것도 국내파의 경쟁력을 높여주는 이유다.학교뿐만 아니라 연구소와 기업체에서도 해외파 경영학 박사를 모시려고 하지만 ‘하늘의 별 따기’ 만큼이나 어렵다. 고급 인력일수록 연구소보다 학교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한국경제연구원 김종석 원장은 “상위권 대학이 지방대에서 해외파 교수들을 스카우트해 가듯이 연구소는 대학에 빼앗기는 입장이다. 경제학 전공은 괜찮은데 경영학 박사들 구하기가 힘들다”고 설명했다. 김 원장은 또 “미국 톱20위권 내의 경제학·경영학 박사들이 과거에 비해 아주 적게 나오고 있다. 과거 한국 학생들이 차지했던 쿼터를 중국 학생들이 차지한 것?원인이다. 그 아래 대학 출신들은 아직까지 좀 있다”는 설명을 곁들였다.박사 학위 소지자들이 연구소보다 대학을 더 선택하는 것에 대해 김범 교수는 “연봉은 세리(SERI: 삼성경제연구소) 같은 기업연구소가 더 높겠지만 대학에서는 자신이 원하는 연구를 할 수 있는 반면 연구소에서는 주어진 연구를 해야 하기 때문에 학교를 더 선호한다”고 말했다.기업체에서도 경영학 박사 학위 소지자의 수요가 늘고 있다. 금융권에서는 자본시장통합법의 시행을 앞두고 올해부터 전문가의 수요가 더 늘어날 예정이다. 김광희 연구위원은 “금융공학을 전공한 MBA 출신도 금융권에서 수익계산 등 잘할 수 있는 분야가 많겠지만 토털 디자인이 가능해야 하기 때문에 박사 학위 소지자 등 고급 인력에 대한 수요가 존재하고 있다”고 전했다.이런 해외파 경영학 박사 품귀 현상은 앞으로도 계속될까. 장범식 교수는 “미국에서도 지금은 잡 마켓(job market)이 최고조에 달해 있다. 그렇지만 올해를 시작으로 내년부터는 좀 나아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거꾸로 말하면 지금 품귀 현상을 빚는 것을 보고 시장에 뛰어들었다가 몇 년 뒤에는 공급이 많아져 지금처럼 높은 몸값이 아닐 수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인터뷰│김범 숭실대 경영학부 교수김범 교수는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후 미국 유학길에 올라 2004년 앨라배마 주립대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미네소타 주립대와 캘리포니아 주립대에서 2년 반 동안 전임강사·조교수를 지낸 뒤 2006년 귀국, 한림대 재무금융학과 조교수를 거쳐 올해 숭실대 경영학부 조교수에 부임했다.“요즘 경영대학들이 국제화 추세인데다 원어 강좌를 할 수 있는 교수를 원하다 보니 그런 것 같다.”“예전에는 한국에서 자라고 해외로 유학 간 사람들은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정서가 있었다. 지금 귀국하지 않는 사람들은 외국 대학의 객관적 조건들이 더 낫기 때문에 오지 않는 경우도 있고, 또 자녀 교육 때문에 남아 있는 경우도 많다. 귀국하더라도 가족을 남겨두고 와 ‘기러기 아빠’인 경우가 적지 않다.”“눈에 띄게 줄었다. 공부하다 중도에 돌아간 경우도 많았다. 미국에 있으면 학교는 달라도 같은 전공이라면 대략 누가 있는지 학생들끼리는 안다. 학회 등에서 만나는 교수님들로부터도 ‘학생 수가 줄었다’는 말을 들었다.”“내가 있을 때는 별로 늘어나지 않았다.”“아이가 중학교 1학년인데, 현지에서 태어나 미국인으로 자라다 보니 부모 자식 관계가 형성이 안 됐다. 우리 부부 또한 미국에서 계속해 살아가는 것에 대한 회의도 생겼다. 나의 경우는 아이가 한국적 사고를 갖고 살기를 원했던 것이 귀국을 결심한 가장 큰 이유였다. 아마 미국에 있는 대부분의 교수님들이 같은 고민을 안고 있겠지만, 아이가 한국에 와서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혼자 귀국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학회 웹사이트나 학술지 등에 공고가 나는데, 공채에 응했다.”“한림대에서도 했고 이번에도 할 예정이었는데, 부임 전에 학생들에게 공고가 되지 않아 올해 1학기에는 못하고 있다.”“미국은 교수들의 연봉 편차가 큰 편이라 단순 비교는 어렵지만 미국에 있을 때의 60% 수준을 받고 있다.”“그렇지는 않다. 예를 들면 대기업에서 신입 사원을 뽑았는데 해외파라고 해서 연봉이 더 높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라고 보면 된다.”돋보기│국내 경영학 박사의 경쟁력비단 경영학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교수들 사이에서는 해외파와 국내파 사이에 묘한 긴장 관계가 형성돼 있다. 해외파 교수들에 대한 막연한 선호도가 존재하다 보니 국내파 교수들 사이에서는 단순히 해외파와 국내파로 나눌 것이 아니라 실력으로 가려야 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숭실대 경영대학원장인 장범식 교수는 “지금은 국내 대학에도 박사 양성 과정이 잘된 곳이 많아 국내파도 해외파에 뒤지지 않는다”고 얘기한다. 한국 학계도 많이 성장했기 때문에 기량이 좋은 국내파 교수들이 국립대와 상위권 사립대에 많이 포진해 있고, 오히려 실력이 떨어지는 해외파 교수를 뽑지 않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장 교수는 “분야별로는 MIS(Management Information System: 경영정보시스템), OR(Operation Research: 운영 연구), 생산 관리 분야는 역량이 탄탄해 국내에서 우수한 교수를 뽑기가 어렵지 않다. 그렇지만 재무, 회계, 마케팅, 인사, 전략 분야는 지금도 그렇고 당분간은 우수한 교수 구하기가 힘들다”고 현황을 전했다.국내파로 분류되는 오웅락 숭실대 경영학부 교수도 “MIS, 생산관리, 인사조직, 마케팅 분야는 국내파도 경쟁력이 있다. 그렇지 않은 분야는 해외로 나가려고 하는 것 같다”고 얘기했다. 그렇지만 재무관리, 회계, 마케팅도 국내 박사의 경쟁력이 많이 향상됐다고 덧붙였다. 국내파 경영학 박사가 경쟁력을 갖추게 된 이유에 대해 오 교수는 “예전에는 해외로 나가야만 선진 학문을 배울 수 있었지만 지금은 선진 학문을 배워 온 교수님들로부터 국내에서 배울 수가 있다. 또 인터넷이 발달해 해외의 논문이나 자료들을 많이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교수 채용 과정이 많이 투명해져 연구 실적, 강의 능력 등 객관적인 평가를 하다 보니 해외파와 국내파가 끝까지 접전을 벌이는 경우도 많다. 오히려 대학 실정을 잘 알고 있는 국내 박사가 ‘스펙(계량화된 지표)’을 더 잘 알기 때문에 유리할 수 있다는 견해도 있다.취재=우종국 기자 xyz@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