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만장자 생활 엿보기

‘시간당 150달러짜리 보디가드 2명을 거느리고 부인과 함께 550달러짜리 저녁을 먹은 뒤 275달러짜리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를 본다?’아니면 이건 어떨까. ‘2박에 1만 달러짜리 모스크바 리츠칼튼 호텔에 묵으면서 330달러를 주고 이발을 한 뒤 2000달러짜리 클럽에서 가벼운 와인이라도 한 잔하는 건?’좋다. 생각만 해도 괜찮다. 문제는 아무나 할 수 없다는 점이다. 돈이 있어야 가능하다. 그래서 부자는 존경의 대상은 아니더라도 부러움의 대상은 된다. 위에서 언급한 건 평균 비용이 그렇다는 것이다. 돈 많은 부자들의 씀씀이는 이보다 훨씬 더 클게 분명하다.그렇다면 이런 부자들은 도대체 누구일까. 이들은 어떻게 부자가 됐고 어떤 생활을 할까. 미국의 경영 전문지 ‘포브스’는 매년 ‘세계의 억만장자 명단’을 발표한다. 재산이 10억 달러가 넘는 억만장자(billionaire)들이 대상이다. 우리 돈으로 따지면 1조 원은 있어야 이 명단에 끼일 수 있다.포브스가 올해 집계한 세계의 억만장자는 총 1125명. 작년의 963명보다 162명이나 늘었다. 이들이 가진 총재산은 4조3730억 달러로 전년보다 9000달러 증가했다. 1인당 평균 재산은 39억 달러. 역시 전년보다 2억5000만 달러가 증가했다.‘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 벅셔해서웨이 회장. 그가 마침내 세계 최고 부자에 등극했다. 13년 동안 세계 으뜸 갑부로 이름을 올렸던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은 3위로 밀려났다. 지난 2월 11일 현재 버핏의 재산은 620억 달러. 1년 전보다 100억 달러나 불었다. 경기 침체 속에서도 그가 경영하는 벅셔해서웨이의 주가가 급등한 덕을 톡톡히 봤다.지난 13년간 1위 자리를 굳게 지켜온 게이츠는 주가 하락으로 3위로 내려앉았다. 게이츠의 재산은 580억 달러. 1년간 20억 달러 증가하는데 그쳤다. 특히 연초 야후에 대해 인수·합병(M&A)을 시도하면서 마이크로소프트의 주가가 하락한 영향이 컸다. 2위는 멕시코의 통신 재벌 카를로스 슬림. 주가 상승으로 1년 새 재산이 110억 달러 불어났다. 이들 세계 1~3위의 재산 차이는 불과 20억 달러. 주가가 조금만 변동해도 순위가 금방 뒤바뀔 것으로 보인다.이들에 이어 인도 재벌이 4~6위를 차지했다. 세계 최대 철강회사인 아르셀로 미탈그룹을 이끌고 있는 락시미 미탈이 450억 달러로 4위에 올랐다. 이어서 430억 달러의 무케시 암바니가 5위, 420억 달러의 아닐 암바니가 6위에 각각 랭크됐다. 스웨덴 가구 업체인 이케아를 설립한 잉그바르 캄프라드가 310억 달러로 7위를 기록했다.세계의 억만장자 1125명이 가진 재산은 총 4조4000억 달러. 1인당 평균 39억 달러다. 평균 나이는 61세. 1년 전의 62세보다 한 살 젊어졌다. 러시아의 억만장자 87명의 평균 나이가 46세였고 중국의 억만장자 42명의 평균 나이가 48세인 점이 큰 영향을 미쳤다. 그만큼 러시아와 중국은 떠오르는 기회의 땅인 셈이다.국가별로는 ‘썩어도 준치’라고 미국인이 469명으로 전체의 42%로 가장 많았다. 그렇지만 미국인은 세계 20위 부자 명단에 4명밖에 끼이지 못했다. 2년 전만 해도 20위 부자 중 절반이 미국인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격세지감이다. 이어서 러시가 87명의 억만장자를 배출했고 독일(59명)이 뒤를 이었다. 인도와 중국도 각각 53명과 42명을 명단에 올렸다. 우리나라에서는 정몽준 의원과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등 12명이 세계의 억만장자에 합류했다.억만장자가 되는 방법은 무엇일까. 가장 쉬운 길은 부모를 잘 만나는 것이다. 재산을 상속받으면 ‘만사 OK’다. 중국 최고 부자에 오른 올해 27세의 양후이옌(楊惠姸)이 대표적. 그는 부동산 개발 업체 비구이위안(碧桂園)의 최대 주주이자 구매담당 이사를 맡고 있다. 아버지 양궈창(楊國强)으로부터 주식을 증여받고 이 회사가 상장하면서 갑부 자리에 올랐다. 재산은 74억 달러. 작년 9월엔 173억 달러에 달했으나 주가 하락으로 몇 개월 사이에 100억 달러가 날아갔다.그렇다면 부모를 잘못 만난 사람은 아예 부자 되기를 포기할까. 아니다. 여전히 세계는 기회의 땅이다. 억만장자 1125명 중 67%가 당대에 부를 일군 사람들이다. 1~3위 부자인 버핏 슬림 게이츠가 모두 자수성가한 부자들이다. 따라서 꿈을 포기하기엔 아직 이르다.당대에 부를 일구는 방법은 무엇일까. 역시 창업이다. ‘세계 최연소 억만장자’로 이름을 올린 미국의 마크 주커버그는 이제 고작 23세다. 우리로 치면 대학 졸업반쯤 된다. 그는 벌써 15억 달러의 재산을 가진 억만장자다. 그의 이력은 게이츠와 비슷하다. 하버드대에 다니다 소셜네트워크 사이트인 페이스북을 만든 뒤 아예 학교를 때려치웠다. 이후 실리콘 밸리에 자리를 틀면서 ‘제2의 게이츠’와 ‘제2의 구글’을 꿈꾸고 있다.구글의 공동 창업자인 서지 브린(34)과 래리 페이지(35)도 마찬가지. 구글의 욱일승천 덕분에 그들은 각각 187억 달러의 재산을 거머쥔 갑부로 성장했다.그렇다면 이 억만장자들은 어디서 어떤 생활을 할까. 1125명 중 가장 많은 사람이 거주하는 도시는 모스크바였다. 74명이 이곳에 살고 있다. 러시아에서 최근에 부를 일군 사람들이 많다 보니 나타나는 현상이다. 2위는 뉴욕. 도널드 트럼프 등 71명이 억만장자 뉴요커다.이들이 어떤 생활을 하는지는 사람마다 다르다. 버핏 같은 이는 지난 1958년 단돈 3만 달러를 주고 구입한 집에서 50년째 살고 있다. 반면 빌 게이츠의 집은 세계에서 가장 비싼 저택으로 꼽힌다. 부자들도 부자 나름이라는 얘기다. 그렇지만 각 도시의 물가 수준을 감안하면 이들이 어떤 생활을 즐기는지를 간접적으로 비교할 수 있을 듯하다.부자들이 많이 사는 모스크바와 뉴욕 런던을 비교할 때 물가는 역시 모스크바가 좀 싸다. 부자에게 어울리는 식당에서 2명의 저녁 값이 모스크바는 300달러 정도다. 반면 뉴욕에서는 550달러는 줘야 부자다운 저녁을 먹었다고 할 수 있다. 런던의 고돈 랜제이에서 7가지 코스 요리를 먹으면 440달러가 든다. 서민들이야 놀랄만한 수준이지만 어쩌면 부자들에겐 ‘껌값’일지도 모른다.잠깐 한눈팔아 봤다. 부자들이 이렇게 산다는 것을 훔쳐보기 위해서다. 부럽다면 부자가 되시라. 부자도 부자 나름이겠지만 말이다.하영춘·한국경제 뉴욕 특파원 ha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