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가 최명훈 안무가 이혜경 부부

작곡계와 무용계에서 각각 발군의 기량을 발휘하는 젊은 예술가 커플이 있다. 서로의 예술 세계에 영감이 되어주고 서로의 예술을 든든하게 뒷받침해 주는 부부, 바로 작곡가 최명훈 씨와 안무가 이혜경 씨 부부가 그 주인공이다.지난 4월 28일 금호아트홀에서는 최 작곡가의 작곡 발표회가 있었다. ‘공간, 소리 그리고 움직임’을 주제로 열린 이번 발표회는 독일에서 유학하고 국제적으로 활동하던 최 작곡가가 2007년 1월에 귀국한 이후 처음 여는 개인 작곡 발표회였다. 특히 이번 발표회에서는 마지막 순서로 이 안무가의 공간 사용과 음악의 공간 사용을 조화시킨 작품 ‘나래’를 선보이기도 했다. 작곡 발표회를 앞두고 만난 두 사람은 흥분과 설렘으로 긴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사진을 찍는 내내 남편의 뱃살이 드러날까 걱정하며 남편의 옷매무시를 가다듬는 아내와 사람 좋은 너털웃음으로 그런 아내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남편의 모습은 이들이 예술가 커플 이전에 서로를 너무도 사랑하는 부부임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음악을 하는 남자와 무용을 하는 여자가 처음 만난 건 3년 전의 일이다. 2005년 7월 독일에서 유학 중이던 최 작곡가가 잠시 귀국했을 때 지인의 소개로 이 안무가를 만났다. 당시 이 안무가는 재능 있는 신진 무용가 겸 안무가로서 한창 무용계의 주목을 받고 있던 중이었다. 서로가 다른 분야의 예술을 하는 사람이다 보니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만나게 됐다는 이들. 첫 만남 이후 이 안무가에게 반한 최 작곡가의 열렬한 애정 공세 덕분에 만난 지 넉 달 만에 결혼까지 이르렀다.서로 많이 닮아서 부부의 연을 맺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서로 많이 다르기 때문에 부부의 연을 맺는 이들도 있다. 최 작곡가, 이 안무가 부부는 바로 후자에 속한다. 푸근한 인상에 듬직한 체구를 가진 최 작곡가와 섬세한 외모의 자그마한 체구를 지닌 이 안무가는 생김새부터가 참 많이 다르다. “작곡과 무용도 그래요. 혼자 차분히 조용한 분위기에서 차근차근 만들어가는 작곡과 달리 무용은 몸을 사용하고 군무든 솔로든 무대에 올라가서 끝나는 순간까지 긴장을 놓칠 수 없는 종합예술인 셈이죠.”게다가 작곡과 무용은 보이는 예술과 보이지 않는 예술이란 차이점도 있다고 한다. 작곡은 소리를 만들어 귀로 그것을 형상화하게 하는 반면 무용은 눈으로 확인하고 춤의 깊이까지 보여주어야 하는 것이기에 사뭇 다를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성격도 많이 달라요. 남편인 저는 차분하면서도 약간 게으른 면도 있고 반면에 한편으로는 불같은 급한 성격의 소유자인데 비해 아내는 열정적이면서도 치밀하고 섬세한 반면 또 한편으로는 넓은 포용력을 지니고 있죠.”이렇듯 서로 다른 그들이지만 예술에 대한 열정만큼은 다르지 않다고 한다. 이 때문에 두 사람이 결혼하겠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는 두 젊은 열정적인 예술가가 함께 만들어 낼 예술에 많은 기대를 걸었다.“저는 서양음악을 공부한 사람이고 아내는 한국 춤을 공부한 사람이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두 사람은 모두 한국이라는 공통 화두를 가지고 있죠.”최 작곡가는 자신이 서양음악을 공부했다고 해서 한국적인 것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고 단언한다. 그 스스로 김치와 된장, 청국장이 없으면 못사는 전형적인 한국인이기 때문에 한국인 작곡가로서 자신만의 음악적 언어로 한국적인 감성이 느껴지는 국제적인 음악 언어를 만들고자 한다. “그래서 한문의 획수와 부수 등을 숫자와 연관해 그것을 음 요소로 만들어, 내가 만들려는 이미지를 선의 움직임으로 표시하고 상상하는 과정을 많이 거쳐요. 특히 요즘에는 아내의 춤을 보면서 한국적인 춤의 호흡에 빠지기도 했죠. 그 한국적인 춤의 호흡을 제 작품에 접목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한국적인 소재에 관해 고민하는 건 이 안무가 역시 마찬가지다. 자신의 춤 색깔을 국제적으로 공감 받을 수 있도록 치열하게 고민하며 자신의 안무 언어를 연마하고 있다.“그래서 저는 주로 인터넷을 통해 관심 있는 분야의 정보를 디테일하게 찾아보고 그것을 재정립하면서 제 자신의 춤 색깔과 많이 접합하려고 해요. 그래서 제 작품들을 보면 대부분 한국적인 정서와 사회 비판적인 요소를 많이 다루고 있죠.”이렇듯 각자 자신의 예술작품에 모든 에너지를 다 쏟아 붓는 이들 부부는 그런 서로의 모습을 보며 안쓰러움을 느끼기도 한다. “특히 아내는 안무와 연출, 의상, 대본까지 스스로 다 해내는 사람이다 보니 정말 대단하죠. 연습 때문에 팔다리가 아프지 않을 때가 없고 안무 때문에 신경을 많이 써서 머리 아플 때도 많죠. 그런 모습을 보면 정말 안쓰러우면서도 동시에 자신의 일에 열정을 다하는 이 사람이 너무 사랑스러워 보입니다.”“그건 남편도 마찬가지예요. 요즘은 작품 위촉곡이 밀려 편안한 잠자리를 하는 경우를 거의 못 봤어요. 밤을 새우는 경우도 비일비재하죠. 그렇게 작업에 집중하고 있는 남편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존경심이 절로 생겨요.”그래서 이들 함께 작업한 작품들은 단순히 아내여서, 남편이기 때문에 함께 공동 작업을 한 것만은 아니라고 한다. 서로를 위한 마음도 있지만 또한 동시에 자기 예술 세계를 깊게 해 나가기 위한 의미도 있다는 것이다.“사실 무용인들은 음악에 대해 많이 민감하죠. 음악이 무엇이냐에 따라 작품의 성격이 결정될 정도예요. 그래서 아내만의 무용 언어에 도움을 주기 위해, 그리고 아내가 원하는 느낌을 주기 위해 작곡했죠.함께 작업하다 보면 부딪치는 경우도 많다. 최 작곡가는 음악가적인 욕심에서 좀 더 알차고 치밀한 음악을 만들고 싶은 욕심을 가지고 있고, 이 안무가는 음악적으로 많이 비워야 무용이 채울 수 있기에 보다 쉽고 춤추기 좋은 음악을 원하기 때문이다.“그런데 결국은 아내 말이 다 옳았던 것 같아요. 사실 이번에 함께한 작품 ‘나래’를 준비하면서 많이 깨달았죠. 음악이 너무 한쪽으로 치우치면 유치해지고 그렇다고 완전히 다른 면으로 치우치면 아내에게 혼나기 때문에 줄타기를 하는 심정으로 작품을 만들었거든요.(웃음)”짐짓 너스레를 떠는 최 작곡가지만 실제로 이들 부부는 작곡과 안무가 결국은 같은 작업이라는 것을 안다. 음악을 이용하고 춤을 이용한다는 것만이 다를 뿐 결국 같은 예술이라는 것을 안다. 그래서 이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예술적인 자극을 주고 영감을 주며 또한 동시에 원초적으로 외로움을 지닐 수밖에 없는 예술가의 삶에 상대방이 있다는 사실에 위안을 받는다. 남편은 아내에게 한국적인 리듬감을 배우고, 아내는 남편에게 음악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배운다. 그래서 이들 부부의 꿈은 같다. 바로 음악을 사랑하는, 무용을 사랑하는 제자들을 많이 키워내고 싶다는 것. 그리고 또 한 가지는 “현대 음악이 어렵지 않고 공감과 재미가 있는 음악이라는 것을 알리고 싶다”는 것이다.작곡가 최명훈 독일 브레멘 국립예술대 박사. 중앙 음악콩쿠르 1위 등 다수의 국내 작곡 콩쿠르 수상. 2006년 ‘현악사중주를 위한 사티아’로 제 17회 다케후 국제작곡상 수상. 현 금호아시아나 문화재단 금호아시아나 솔로이스츠 상임작곡가.안무가 이혜경 성균관대 대학원 무용과 졸업. 독일 브레멘 국립예술대학 초청 안무, 러시아 타슈켄트 필하모니극장 초청 안무 등 다수 공연 및 안무. 대표작 ‘진흙얼굴’ ‘토막말’ ‘입묵’ 등. 현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강사, ‘이혜경&이즈음’ 무용단 대표.김성주·자유기고가 helieta@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