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가 이끄는 새로운 시위 문화

: 지방에 거주하는 대학생 A 씨는 청계천 광장에서 열리고 있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 집회에 참가하기 위해 서울로 올라가는 대신 한 인터넷 동호회에 접속했다. 동호회에서는 인터넷 TV를 통해 집회 현장을 생중계하고 있어 전국에 있는 다른 회원 98명과 함께 새벽까지 이어진 시위를 지켜봤다. A 씨는 집회에 직접 참가하지 않았지만 온라인으로 다른 회원들과 의견을 나누다 잠이 들었다.▷: 회사원 B 씨는 촛불 집회에 나가면서 가방을 정보기술(IT) 기기로 가득 채웠다. 인터넷 동호 회원들에게 집회 상황을 알리기 위해 노트북 PC와 고속하향패킷접속(HSDPA) 모뎀, 디지털카메라와 캠코더, 전원이 없을 때 사용할 추가 배터리까지 챙겼다. 그는 집회 선두에 서지는 않지만 집회 내용을 인터넷을 통해 전달하는 것을 집회 참가 목적으로 두고 있다.최첨단 IT 기기와 인터넷으로 무장한 신세대들이 집회 문화를 바꾸고 있다. 이전까지의 집회는 확성기와 피켓 등을 이용해 자신들의 요구 사항을 높이는 것이 중요했지만 최근 들어 인터넷을 통한 의사 전달이 중요해지고 있다. 또 디지털카메라를 이용해 촬영한 집회 사진을 인터넷이 되는 휴대전화나 노트북 PC를 실시간으로 올릴 뿐만 아니라 온라인을 통해 쌍방향으로 의견을 교환하는 등 IT를 활용한 시위가 활발해지고 있다.새로운 집회 문화는 인터넷 시장을 변화시키고 있다. 이번 촛불 집회로 포털 다음은 서버가 마비될 정도로 많은 누리꾼들을 끌어들였지만 국내 포털 1위 네이버는 집회 참가자들로부터 심한 질타를 받았다. 다음은 블로거와 인터넷 매체들의 의견을 크게 다룬 반면 네이버는 기존 미디어의 기사를 메인 페이지에 앞세워 시민들의 입장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다.그동안 신문과 TV 등 미디어에 의존해 집회 정보를 단편적으로 접했던 것과 달리 집회 참가자가 미디어 역할을 동시에 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사이버 시위대들은 인터넷 게시판을 통해 사진과 글을 올리는데 머무르지 않고 동영상 등을 통해 집회 상황을 실시간으로 중계할 수 있다. 다음 아고라, 유튜브, 판도라TV 등에는 관련 동영상 사용자제작콘텐츠(UCC)가 수백 건씩 올라오고 이 동영상들은 누리꾼들을 통해 인터넷에 유통된다.글이나 사진은 상황에 따라서 객관성이 결여될 수 있는 있지만 동영상은 전후 상황을 유추해 판단할 수 있기 때문에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인터넷 뉴스 사이트 오마이뉴스(www. ohmynews.com)도 촛불 집회 상황을 실시간 중계, 가공하지 않은 정보를 누리꾼들에게 제공해 높은 호응을 받고 있다. 오마이뉴스는 시청자가 현장 중계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또한 온라인을 통해 자발적으로 시청료를 내게 해 1억 원 이상을 모으는데 성공했다.이번 촛불 집회의 시작은 대학생이나 일반인들이 아니라 중고등학생이 주도했다. 이들은 문자 메시지와 인터넷 동호회를 통해 자신들의 의견을 나누고, 관련 정보를 공유했다. 이들은 IT의 장점인 무한 복제가 가능하고, 사용량과 사용자가 많아질수록 한계 비용이 낮아진다는 점을 적절히 이용했다. 실제 촛불 집회 초기 학생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휴대 전화를 이용해 어디에서 모일 것인지,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 논의했다.기존 세대와 다른 점이 있다면 ‘통화’가 아닌 문자 기능을 주로 이용했다는 점이다. 30대에서 40대가 휴대전화로 ‘통화’와 ‘문자 메시지’를 사용하는 비중이 9 대 1 수준인 것과 달리 중고등학생은 3 대 7, 많게는 2 대 8 비중으로 문자 메시지를 많이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자신들의 친구들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내 다시 다른 친구들을 끌어들이는 네트워크 효과를 발휘했다.온라인에서도 과격 시위가 간혹 발생했다. 한나라당과 경찰청 홈페이지 등이 해킹 당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물리적인 충돌은 없었지만 각 단체를 대표하는 홈페이지가 해킹 당한 것은 오프라인 시위 이상의 효과를 보였다.시위대와 경찰 간 마찰이 생기면 누리꾼들이 오프라인 시위 사진과 동영상을 통해 해당 경찰관 소속과 이름을 찾아내기도 했다.이처럼 집회 참가자들이 IT와 인터넷을 적절히 활용한 것과 달리 정부 측은 기존 집회와 비슷하게 대응하는 수준을 보였다. 정부는 시위 참가자들과의 의사소통보다는 자신들의 입장을 홈페이지를 통해 밝히는 정도에 그쳤다.이번 촛불 집회로 덕을 본 IT 기업은 단연 아프리카(www.afreeca.com)다. 실시간 인터넷 방송 서비스를 제공하는 아프리카는 누구나 쉽고 간편하게 인터넷 방송을 송출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현장에 있는 집회 참가자가 인터넷을 통해 집회 상황을 전파하는데 사용됐다. 아프리카는 기존까지 인터넷 방송 관련 아이템 판매, 서비스 모델 판매, 공동 마케팅 등을 통해 수익을 얻는 구조였지만 누리꾼들이 몰리면서 다양한 업체들로부터 사업 제의를 받고 있다.인터넷을 바로 확인할 수 있는 휴대전화도 이번 촛불 집회에서 새롭게 부각됐다. 기존 휴대 전화 사용자는 통신사들이 정해 놓은 웹페이지에 먼저 접속해야 하지만 삼성전자 ‘햅틱폰’, LG전자 ‘아르고폰’ 등은 인터넷에 바로 접속해 확인할 수 있고 블로그나 동호회 게시판에 글을 바로 올릴 수 있어 인기를 끌었다.어두운 상황에서도 떨림 적은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일안반사식 디지털카메라(DSLR)와 동영상 기능이 강한 디지털카메라도 집회 참가자들의 필수품으로 꼽혔다. 특히 디지털카메라는 시위대와 경찰 사이 거리를 확보해 주고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기록으로 남겨 증거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유용하게 활용됐다. 한 여대생이 의경에게 구타당한 장면이 인터넷을 통해 유포된 것이 다른 집회 참가자들을 끌어들이는데도 디지털카메라가 큰 역할을 했다.와이브로와 HSDPA도 촛불 시위 기간 중 부각된 서비스다. SK텔레콤, KTF 등이 제공하고 있는 이 서비스들은 야외에서 노트북 PC에 초고속 인터넷 환경을 제공해 집회 기간 곳곳에서 노트북 PC로 집회 뉴스, 상황들을 점검하는데 사용됐다. 고해상도 이미지와 동영상을 올리는데도 HSDPA와 와이브로의 역할이 컸다.IT의 발달로 인해 집회 문화가 바뀌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렇게 변하는 집회 문화와 국민들의 요구에 정부와 기존 미디어들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것은 고쳐야 할 부분이다.베이비붐 세대, X세대 뒤를 이어 ‘넷세대’가 IT 시장에서 중요한 소비자 집단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번 촛불 집회도 넷세대가 주도해 진행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넷세대(Net Generation)는 IT 기기와 인터넷에 자유로운 12~32세에 해당하는 집단으로, 휴대전화와 PC를 이용해 또래 친구들과 의사소통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특징이다.이들은 치열한 경쟁을 통해 가족을 꾸린 43~61세 베이비붐 세대 및 기존 세대와 차별화해 개성을 강조하는 32~42세 엑스(X)세대와 달리 개인적이면서도 주관이 뚜렷한 것이 특징이다.IT 업계도 이런 추세에 맞춰 넷세대 입맛에 맞는 IT 제품들을 내놓고 있다. PC 부문만 보더라도 기존 천편일률적인 베이지색을 탈피해 빨강, 파랑 등 원색을 적용한 제품들이 늘고 있으며 디자인뿐만 아니라 재질도 천, 금속 등으로 다양하게 선택하는 추세다. 기존 제품들이 기능적인 측면을 강화했지만 최근 출시되는 휴대전화, 노트북 PC 등은 기능보다 디자인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디자인을 위해 기능을 제거하는 경우도 있다.이형근·디지털타임스 기자 brupri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