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사례 vs 실패사례

대형 화재와 같은 참사가 발생하면 늘 ‘인재(人災)’니 ‘부실한 관리’라는 말이 따라붙는다. 기업의 위기도 마찬가지다. 사고는 늘 예상하지 못했던 곳에서 발생하지만 그 부실한 관리가 계속되면 언젠가는 한번 터지게 마련이다. 그렇다면 평소에 발생 가능한 상황을 예상하고 그에 대한 준비를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국내 위기관리 전문가들의 분석을 통해 동종 업계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위기 상황을 미리 예측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2005년 10월 발생한 SK텔레콤과 ‘동네 빵집’과의 분쟁을 기억할 것이다. SK텔레콤은 동네 빵집과 사업적인 연관이 없지만 파리크라상과의 할인 제휴로 지역에 기반을 둔 자영 제과업자들로부터 불공정 거래 행위로 기소되면서 지역 상권을 파괴하는 대기업의 공격적 마케팅이 이슈화됐다.처음 SK텔레콤은 위기를 감지했지만 소비자 이익 차원에서의 긍정적 측면을 강조했다. 좋은 의도를 강조함으로써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제과 협회 차원의 법적 대응이 보도되면서 사회적 이슈화가 되고 공중의 반응(public view)은 이익 집단과 기업 간의 논쟁 수준에서 대기업 파워에 대한 비판적 시각으로 변화되기 시작했다.그제야 SK텔레콤은 제휴사와의 할인율을 낮추는 방안을 제시하고 중소 업체의 상생을 강조했다. 또 군소 빵집과의 제휴 가능성을 노출시킴으로써 문제 해결에 대한 기대감을 발생시키고 SK텔레콤의 적극적 활동에 우호적인 시각이 대두됐다. 결국 제과협회의 공정거래위원회 제소가 취하되고 동네 빵집도 이동통신사와 제휴 마케팅을 펼치면서 SK텔레콤의 업계 선도적 위치가 부각되기도 했다.이 경우 위기 발생 전에 해당 이슈를 이슈 사안으로 감지하는 능력이 부족하기는 했지만 갈등 집단에 양보하는 자세를 보인 것이 이미지 회복에 효과적으로 작용했고, 할인율을 낮추고 제휴 대상을 확대하면서 오히려 마켓 셰어(market share) 확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기도 했다. 이 경우는 위기를 기회로 전환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식품이나 위생 용품은 소비자 건강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만큼 항상 위기에 노출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식품 업체나 위생 용품 업체의 경우 위기는 관련 제품의 판매가 급감하고 업체 이미지가 실추되는 등 회사의 존폐와도 연결되는 만큼 신중을 기해야 한다.2005년 3월 소비자시민모임(소시모)은 유한킴벌리 물티슈 하기스에서 기준치 이상의 포름알데히드가 검출됐다는 결과를 밝혔다. 발암물질이 기준치의 7배가 검출됐다는 보도도 잇따랐다. 유한킴벌리는 초기 소시모 주장에 대해 공격적으로 대응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 안전 기준을 통과했고 글로벌 기준에 부합하다는 내용으로 이슈를 재개념화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소시모와 유한킴벌리의 입장차가 벌어지면서 소비자들의 불안감도 가중됐다.유한킴벌리는 고객 만족 차원에서 반품과 환불 조치 계획을 밝히면서도 제품 안전성에 문제가 없음을 강조하고 언론 기관에 해명 기사를 게재하기도 했다. 그러나 ‘아기엄마’들의 반품 및 환불 요구와 불매 운동이 거세졌다. 유한킴벌리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게재하고 안전성을 강화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후 소시모의 후속 대응이 약해지면서 소시모의 의견에 대한 소비자들의 의구심이 생기기도 했다. 소시모 발표 두 달 뒤부터 유한킴벌리는 친환경 기업 이미지를 언론에 노출하고 하기스 엠보싱 물티슈를 생산 중단, 신제품을 출시했다.위기관리 전문가인 A씨는 “유한킴벌리는 조직의 입장을 적극적이고 일관성 있게 대응했고 신속한 반품과 환불로 소비자 불만을 최소화하는 데 노력했다. 그렇지만 단기 순이익이 하락하고 제품 신뢰도가 감소하는 등 시민 단체의 부정적 목소리가 우리 사회 전반에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대신 그동안 유한킴벌리의 사회 공헌 활동이 긍정적 이미지로 크게 작용했을 것으로 판단된다”는 분석했다.소비자 또는 공중과의 관계에 아무리 신경을 쓴다고 하더라도 내부자에 의한 위기 상황에는 속수무책인 경우가 많다. 밝히기 곤란한 내부 사정을 속속들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그룹과 김용철 변호사와의 공방이 그 예다. 그러나 이 사안은 아직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와 유사한 2005년 두산그룹 ‘형제 간 경영권 분쟁’을 살펴보자.박용오 전 회장이 내부 비리에 대해 폭로하자 두산그룹은 박 전 회장의 무리한 경영권 장악욕이 빚은 해프닝으로 부각시켰다.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공격자를 역공격하는 전략이었다. 스스로 분식 회계 사실을 고백하기도 했다. 공방이 계속되면서 결국 박용성 당시 회장을 비롯한 두산가(家)의 동반 퇴진으로 이어졌다. 지주회사 도입 및 외국인 최고경영자제 도입 등 투명 경영을 위한 것이었다.박용오 전 회장의 폭로 직후 신용 등급과 주가가 하락했지만, 오너 일가의 퇴진과 투명 경영 약속으로 오히려 쇄신에 대한 기대감이 생겼다. 이는 사회적 관심이 집중된 상황에서 언론과 지속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수행하면서 투명한 이미지 구축에 노력함으로써 기대 이상으로 주가가 빨리 안정됐다. 그렇지만 퇴진 결정을 신속히 했더라면 회사와 경영진의 이미지가 더 빨리 분리되지 않았겠느냐는 평가를 받고 있다.한국에서 소비자 불만이 가장 큰 분야는 자동차다. 워낙 방대한 수의 복잡한 부품이 연결 된데다 가혹한 사용 조건 때문에 품질 불만이 끊이지 않는 분야다. 2005년 초부터 2006년 초까지 계속된 GM대우 마티즈 리콜 케이스는 위기 대응의 좋지 않은 사례로 평가된다.당시 출시된 마티즈3의 결함에 대해 자동차 동호회를 중심으로 문제 제기가 잇따랐지만 GM대우 측은 민감한 소비자들로 인해 곤혹스럽다는 입장을 보였고, 이는 책임 전가를 통한 부인 전략으로 분석된다. 이후 소비자 소송 움직임이 보도되자 절차에 따른 리콜 실시를 강조했고 ‘공식적으로 발견된 결함은 없다’며 일관된 부인을 계속했다. 소비자 및 일반 대중 사이에서는 GM대우 리콜에 대한 부정적 시각과 마티즈에 대한 불신감이 커졌다.결국 CVT 결함에 대한 자발적 리콜(2005년 9월)과 에어백 결함에 대한 자발적 리콜(2005년 11월)이 이뤄졌지만, 이 역시 리콜 수리비를 소비자에게 전가했다는 이슈가 대두됐다.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싸구려 차라서 함부로 대하나”라는 불만이 고조됐고 소보원(현 소비자원)은 “보증 기간이 지났어도 동일한 결함에 대해서는 제작사가 부담해야 한다”고 얘기하기도 했다.위기관리 전문가 A씨는 “마티즈 리콜에서 보면 소비자의 결함 지적 및 수리 요청에 소극적으로 대응했는데, 복잡한 절차를 내세우며 책임 회피성 인상을 풍겼다. 소비자의 항의에는 ‘공식적으로 문제 발견 안 됨’식으로 무책임한 반응을 내세웠고, 결국 결함 발견에 따른 두 차례 자발적 리콜과 건설교통부(현 국토해양부)의 강제 리콜 명령을 받는 결과까지 갔다. 이렇게 조직의 잘못된 행동 유형이 위기를 키우고 장기화되게 한다”고 분석했다.우종국 기자 xyz@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