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퍼니 제 661호 (2008년 08월 04일)

닮고 싶지 않던 아버지의 2가지 유산

기사입력 2008.07.30 오후 12:44

닮고 싶지 않던  아버지의 2가지 유산
나는 지금 영어를 유창하게 말해야 하는 외국계 기업에서, 한국 제조 산업의 기술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도록 돕는 일에 종사하고 있다. 바로 아버지가 그토록 강조하던 ‘영어’와 ‘기술’로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어려서부터 나는 정말 아버지를 닮고 싶지 않았다. 타인에게는 한없이 너그러운 아버지였지만 집안에선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어머니와 다툼이 잦았고,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나는 저렇게 하지 말아야지’라고 결심했다.

아버지가 왼쪽으로 가고 있으면 나는 오른쪽으로 가려고 했다. 아버지가 술을 많이 마시면 ‘나는 커서 술을 마시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했다. 애연가인 아버지를 보며 앞으로 절대 담배를 피우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했고, 그 때문에 지금까지도 담배는 절대 피우지 않고 술은 꼭 필요한 자리에서만 취하지 않게 마시고 있다.

이런 나를 보면서 애가 닳은 것은 어머니였다. 이상하게도 아버지는 이런 나를 보시면서도 별 말씀이 없으셨고, 그 흔한 공부하란 얘기 한 번도 없으셨지만 어머니는 그렇지 않으셨던 것이다.

어린 내겐 오히려 그것이 더 서운했던 것일까. 고등학교 때 나는 1박 2일의 짧은 가출을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정작 집을 나왔지만 갈 곳이 없어 친구네 집에서 자고 다음날 정독도서관에서 하루 종일 책을 보다가 어머니에게 잡혀 다시 집으로 돌아가고는 했다.

다만, 아버지는 내게 두 가지를 당부하셨다. 평소엔 공부하라는 말씀을 하지 않으셨지만, 이 두 가지는 어려서부터 수시로 말씀하시고 또 강조하셨다. 즉, 영어를 공부하라는 것과 기술을 배워야 한다는 것. 이 두 가지가 아버지가 ‘유이(唯二)’하게 강조하셨던 사항이다.

아버지는 공고를 나와 영문학과를 졸업하셨던 분이다. 금융 관련 협회 등에서 일하셨는데, 중학교 때는 간단한 생활 영어회화는 집에서도 짤막짤막하게 문답하실 정도로 영어에 대해 강조하셨다. 함께 영어를 공부하던 사촌과 함께 단어를 물어 보셨을 때 미처 대답을 못해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기억도 있으니 아버지의 관심을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기술에 대한 강조는 앞으로의 세상에선 기술을 가진 사람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당신의 믿음에서 비롯됐다. 그 영향일까. 나는 대학도 공대로 가게 됐으니 아버지의 바람 한 가지는 적어도 충족시켰던 것 같다.

술과 담배를 좋아하고 ‘다른 사람에게 다 퍼주면 우린 어떡하느냐’는 말을 어머니에게 들을 정도로 호인이셨던 아버지도 결국 건강을 극복하진 못했다. 4년 전 혈압으로 쓰러지셨다가 결국 폐질환으로 세상을 떠나셨으니 말이다.

장례를 치르고 다시 분주한 나날을 보내면서 아버지의 생각을 할 겨를이 제대로 없었던 것 같다. 나 또한 두 딸의 아버지로, 그보다는 식구들을 건사하고 몸담고 있는 회사의 성공을 위해 분주하게 뛰는 것이 우선이었기 때문이리라. 지난 2년간 본사 근무를 위해 독일에 가 있으면서도 ‘청개구리’ 아들에게 아버지는 큰 비중은 아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얼마 전 딸아이의 미래를 얘기하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가만,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이지.”

그렇다. 나는 지금 영어를 유창하게 말해야 하는 외국계 기업에서, 한국 제조 산업의 기술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도록 돕는 일에 종사하고 있다. 바로 아버지가 그토록 강조하던 ‘영어’와 ‘기술’로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어찌 보면 아버지는 이런 아들의 모습을 예전에 미리 그려놓았을지도 모른다. 언뜻 보면 한 번도 ‘공부하라’는 말씀을 하지 않으셔서 무관심하게 보이시기까지 했지만, 그보다는 당신이 없어도 아들이 한 사회의 일원으로 땀을 제대로 흘리면서 살아갈 수 있도록 가장 중요한 자산을 은연중에 남겨 두고 가신 것이다.

흔히 ‘살만 하면 돌아가신다’는 말을 한다. 아버지가 바로 그런 경우인 것 같다. 자식들이 이제 커서, 아버지와 술잔을 기울이고 남자 대 남자로 마주할 수 있는 때가 되니 자리를 비우신 것이다.

이번 주말엔 아내와 함께 장모님을 찾아뵈려고 한다. 한창 연예인이 되고 싶다고 졸라대는 큰 딸아이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말이다. 나 또한 ‘공부하라’는 말 대신 아이가 계속 살아 나갈 수 있는 그런 ‘자산’ 하나를 소중하게 말해 주고 싶다.

은민수·한국지멘스 부사장

1963년생. 국내 업체와 독일 지멘스 본사에서 13년간 자동화 설비를 담당했다. 올해부터 한국지멘스의 핵심 사업인 자동화사업 본부장으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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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08-07-30 12: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