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성장하는 제3의 금융
중국에 제3의 금융이 뜨고 있다. 벤처캐피털과 사모 펀드 시장의 급팽창을 두고 하는 말이다. 제1금융인 은행 대출은 통화 긴축으로 문이 좁아졌고, 2금융인 증시는 1년 전 수준으로 되돌아갈 만큼 침체의 터널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중국에서 2분기에 사상 최대 규모의 벤처 펀드가 만들어지고, 사모 펀드 시장이 향후 3년간 매년 30% 이상 성장할 것으로 예측될 만큼 급성장하고 있는 데는 이 같은 배경이 있다.◇= 중국의 투자시장 조사 업체인 제로투(Zero2)IPO에 따르면 2분기에 29개의 벤처캐피털 회사들이 40개의 펀드를 조성했다. 조성 규모는 총 30억2000만 달러로 사상 최고치에 달했다. 이 가운데 중국 벤처캐피털 회사가 조성한 자금 규모는 11억8000만 달러로 분기 기준으로 사상 처음 10억 달러를 넘어섰다. 인텔펀드 IDGVC 등 외국계 벤처캐피털 회사들도 총 16억9000만 달러에 이르는 7개 펀드를 조성했다. 이스라엘 벤처캐피털의 아미르 갈 오르 대표는 “4년 전 중국에 진출해 20여 개 중국 기업에 3억5000만 달러를 투자했다”며 “중국 기업 투자를 가속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한국의 벤처캐피털도 KTB네트워크와 LG벤처투자에 이어 스틱인베스트먼트가 최근 상하이에 사무소를 개설하는 등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벤처 펀드의 실제 투자 규모도 급증하고 있다. 2분기에만 159개의 중국 기업들이 벤처 펀드로부터 총 12억 달러의 투자를 유치했다. 이는 전년 동기에 비해 각각 31.4%, 73.5% 증가한 것으로 작년 4분기(164개 회사가 12억4000만 달러 유치)에 이어 사상 두 번째 규모다. 벤처 투자치곤 메가 딜도 적지 않았다. 투자 규모가 건당 2000만 달러 이상인 벤처 투자는 모두 13건으로 전체 투자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했다.사모 펀드 투자도 붐을 이루고 있다. 포브스지는 향후 3년간 중국에서의 사모 펀드 투자가 매년 평균 30% 늘어날 것이라며 신용 경색으로 올해 정체되거나 위축세를 보일 미국의 사모 펀드 시장과 대조된다고 보도했다. 중국의 시장 조사 업체인 차이나마켓리서치그룹은 미국과 중국에서 활동하는 사모 펀드 회사 경영자들을 인터뷰한 결과 이 같은 전망이 나왔다고 밝혔다. 지난해 중국에서 국내외 사모 펀드들이 운용한 자금은 205억 달러로 전년보다 40% 증가했다고 제로투IPO가 전했다.◇= 제로투IPO는 벤처 투자 확대 배경으로 중국 증시의 내국인 전용 A주보다 리스크가 낮은 점을 들었다. A주가 반 년 사이 반 토막이 나는 등 급락세를 보인 게 벤처 투자를 상대적으로 안전한 투자처로 부각시켰다는 설명이다. 실제 벤처 펀드들은 사업이 확장 단계나 성숙 단계인 기업에 투자하는 등 리스크를 지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였다. 확장 단계 기업에 투자한 규모는 6억8200만 달러로 56.6%를 차지했다. 성숙 단계 기업에 대한 투자 비중도 31%에 달해 전 분기에 비해 22.5%포인트 증가했다. 고위험으로 대변되는 벤처 투자라기보다는 수익이 검증되고 성장 모델이 어느 정도 확인된 기업에 대한 안전 투자인 셈이다.사모 펀드 시장이 성장하는 배경에도 증시 침체가 있다. 시중에 유동성이 넘치면서 과도하게 고평가됐던 중국 기업들이 증시 침체에다 긴축에 따른 은행 대출 규제로 자금난을 겪으면서 자사 지분을 합리적인 수준으로 평가하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하지만 사모 펀드 역시 경영권 인수보다는 일부 지분 인수에만 몰두하는 등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모습이다. 중국에서 올 상반기에 사모 펀드가 경영권 인수가 아닌 지분 인수를 위해 투자한 금액은 38억 달러로 작년 동기(32억 달러)에 비해 18.8% 증가했다.◇= 중국 정부는 벤처 펀드와 사모 펀드를 새로운 자금 조달 창구로 자리 매김하기 위한 육성책을 마련 중이다. 증시 침체로 다소 늦춰지고 있지만 중국판 코스닥인 차스닥의 연내 개설이 확실시되고 있다. 벤처 펀드로서는 더욱 빠른 자금 회수 경로가 생겨나는 것이다.사모 펀드에 대해서도 중국 정부는 토종 펀드 육성 방침을 밝히고 있다. 중국 정부가 사모 펀드 설립 절차를 대폭 간소화하고 승인권을 중앙에서 지방정부로 이관하기로 한 게 대표적이다. 국가발전개혁위원회가 최근 이 같은 방침을 정하고 증권감독위원회 등과 협의 중이며 조만간 국무원에 정식으로 안건을 제출할 것이라고 중국 언론들이 최근 보도했다.중국 정부는 사모 펀드의 투자 지역이 특정 지역에 집중될 우려가 크고, 은행 금융 등 금융 산업 분야의 안정성을 해칠 수 있다는 점에서 설립 허가에 신중한 입장이었다. 이에 따라 중국 토종 펀드로는 보하이펀드 등 5개만이 설립됐을 뿐이다. 그러나 칼라일 등 해외 사모 펀드들이 잇따라 중국에 진출, 해외 사모 펀드의 규모가 토종을 압도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외국의 사모 펀드는 100개 이상 들어와 있다.이에 따라 중국 정부는 ‘중국 자본에 의한 중국 산업 육성’을 모토로 토종 사모 펀드 육성에 적극 나선 것으로 분석된다. 제로투IPO의 가빈 니 대표는 “중국 정부가 지방의 사모 펀드 조성을 통해 산업 투자의 새로운 물꼬를 만들어 내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설립 절차 개정안이 시행되면 수백억 위안 규모의 지방 사모 펀드가 잇따라 설립될 전망이다. 현재 항저우시가 50억 위안(7500억 원) 규모의 산업 펀드 조성을 준비 중이며, 칭다오와 시안에서는 300억 위안(4조5000억 원) 규모의 수처리 시설 관련 사모 펀드 조성 작업이 시작됐다.중국 당국이 사모 펀드를 운용할 수 있는 증권사를 연말까지 10여 개로 늘리기로 한 것도 외국계 사모 펀드를 견제하기 위한 포석으로 읽힌다. 현재는 중신증권과 CICC(중국국제금융유한공사)에만 사모 펀드 운용 허가를 내준 상태다.◇= 물론 고성장으로 투자할 만한 기업이 늘어나는 것도 벤처 펀드와 사모 펀드의 시장 전망을 밝게 한다. 숀 레인 차이나마켓리서치그룹 대표는 “중국에 중산층이 급부상하면서 이들을 겨냥한 기업이나 글로벌화를 추구하는 중국 기업들이 많아지면서 유망 투자 대상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중산층의 부상으로 급성장하고 있는 중국의 패스트푸드 시장은 사모 펀드들의 주요 투자 분야이기도 하다. 상하이에 있는 외국계 합작 사모 펀드인 차이나캐피털투데이는 지난해 10월 쿵푸캐터링이라는 패스트푸드 체인 업체에 투자한데 이어 지난달에 6억 달러의 새 펀드를 조성했다.최근 조정을 받고 있는 부동산 시장에 눈독을 들이는 사모 펀드도 적지 않다. 싱가포르의 캐피털랜드는 최근 중국의 고급 상업용 부동산에 투자할 10억 달러 규모의 사모 펀드를 조성했다고 밝혔다. 이 펀드에는 아시아는 물론 북미와 유럽의 연기금과 유명 금융 회사들이 자금을 댔다.벤처 펀드는 역시 정보기술(IT)을 주력 투자 대상으로 하고 있다. 지난 2분기 전체 벤처 투자 가운데 IT 분야 비중은 45.9%(투자액 기준)로 전 분기(39.5%)에 비해 6.4%포인트 늘었다. IT 분야 중에서도 인터넷이 벤처 펀드가 가장 선호하는 부문으로 IT 서비스와 반도체에 대한 벤처 투자도 적지 않았다. 지난 5월 중국 항저우에서 열린 애니메이션 축제에는 해외 벤처캐피털들이 몰리기도 했다. 전통 산업 분야에서는 농산물 관련 투자가 많았다. 최근의 국제 식량 가격 급등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벤처 펀드와 사모 펀드 시장의 고성장은 제조업 위주로 중국에 진출해 오다 금융시장 공략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한 한국에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중국 금융시장의 패턴 변화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는 치밀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얘기다.오광진·한국경제 국제부 기자 kjoh@hankyung.com©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