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리스트 정현주·파티셰 정희성 자매

정현주(왼쪽) 2002년 본 플라워아카데미 수료. 2003~07년 JW메리어트 호텔 플라워 디자이너 근무. 2007년 프랑스 피베르디(Piverdie) 디자인 과정 수료. ‘마노&디토’ 디자인실장(현).정희성 2002년 대한제과학교 졸업. 2002~06년 소품 쇼핑몰 ‘마노&디토’ 운영 및 프리랜서 활동. ‘마노&디토’ 파티셰(현).길은 인생에 대한 오래된 은유다. 우리는 출발지를 떠나 도착지에 닿는 여정을 인생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모두가 출발지를 멀리 떠난 곳에서 인생을 마치는 것은 아니다. 여러 갈래 길 중 어느 쪽으로 가야 할지 망설이다가, 혹은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길이어서 차마 발을 떼지 못하다가 출발점 근처에서 주저앉는 경우가 더 많다. 아직 젊은 정현주(30) 정희성(29) 자매는 조금 달랐다. 이들은 다른 이들이 바라보기만 하는 그 길로 발을 성큼 내디뎠다.“호텔에서 꽃을 다루던 언니가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어 했어요. 창의적으로 꽃을 디자인하고 싶은데, 행사에서 웨딩까지 일이 많은 호텔은 아무래도 기계적이 되기 쉽잖아요. 같이 해 보자고 설득했죠.”먼저 손을 내민 건 동생인 희성 씨다. 희성 씨는 프리랜서로 활동하며 소품을 파는 인터넷 쇼핑몰을 운영한 경력이 있다. 그러다 자신의 과자와 케이크를 파는 ‘베이커리 카페’를 차려야겠다고 결심한 후 차근차근 준비해 나갔다. 곁에서 동생을 보고 용기를 얻은 언니 현주 씨는 흔쾌히 동업을 수락했다.다소 긴 카페 이름에서 ‘마노’는 손, ‘디토’는 손가락이다. 플로리스트와 파티셰 모두 손을 쓰는 직업이서 택한 이름이다. 여기에 현주 씨의 남자 친구 우병훈 씨가 커피를 만드는 바리스타로 합세했다. ‘아포카토’는 에스프레소에 아이스크림을 빠뜨린 커피. 결국 ‘마노&디토에 빠지다(이하 마노&디토)’라는 독특한 이름이 태어났다.두 자매 모두 어릴 때부터 무언가를 만드는 일을 좋아했다고 한다. 디자인을 전공하고 의류 쪽에서 일하던 부모님의 영향도 컸다. 동생은 밥보다 빵을 좋아했고, 급기야는 직접 굽는 일에도 흥미를 보였다. 언니는 실내 건축을 배우다 포장으로 옮겨가 연관 분야인 꽃에 안착했다.“제가 처음 배울 때만 해도 플로리스트는 ‘꽃집 아가씨’ 정도로 불렸어요. 나이 든 아주머니들이 하는 일이라는 편견도 있었고요. 그러다가 2003년 드라마 ‘여름향기’에서 탤런트 손예진 씨가 플로리스트로 나오면서 일반인의 인식이 조금 바뀌었지요.”공교롭게도 두 자매가 하는 일은 드라마의 인기와 함께 널리 알려진 것들이다. 플로리스트는 ‘여름향기’, 파티셰는 ‘내 이름은 김삼순’을 통해 인지도를 넓힌 직업들이다. 지금은 겉모습에 혹해서 생긴 거품 인기를 걷어내야 할 처지에 놓였다.“저는 호텔에서만 5년을 일했어요. 숍마스터까지 하며 객실, 행사장, 웨딩의 꽃 장식을 맡았습니다. 점점 강남 등지에 꽃과 케이크를 접목한 카페들이 조금씩 생겨나기 시작했고 홍대 앞 정도면 해 볼만 하겠다 싶더군요.”많은 플로리스트들이 국내외에서 디자인을 배워 와 독자적인 활동을 하고 있지만 플라워 계통의 상층부는 여전히 특급호텔들이 차지하고 있다. 호텔 소속 플로리스트는 남보다 좋은 꽃을 선점할 수 있고 더 큰 이벤트를 경험할 수 있는 괜찮은 자리였다.“호텔이 워낙 일이 많고 빨리 돌아가는 곳이어서 그때 일했던 버릇이 아직도 남아 있어요. 동생이나 남자 친구가 신중히 생각하고 움직이는 스타일이라면 저는 우선 저지르고 보자는 쪽이에요. 새로운 메뉴를 선보이려 할 때마다 부딪치는 부분이지요. 손님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고민하기보다 일단 내놓고 반응을 살피자고 합니다.”어릴 때부터 호기심 많고 활동적이었다는 언니 현주 씨는 진득하게 앉아 있던 희성 씨와는 많이 달랐다. 성격이 다른 대신 취향과 안목이 비슷해 유달리 사이좋은 자매로 자라났다. 서로 좋다고 느끼는 것이 비슷하기 때문이다.“언니가 예쁜 생화들이 있다고 보여주면 전 생크림으로 케이크에 장식을 해요. 최대한 생화에 가깝게 짜내려고 노력합니다. 제가 하는 일은 기존의 제과점 케이크 장식들과는 다른 독자적인 분야예요. 무심코 보면 정말 꽃으로 착각하는 분들도 많답니다.”‘마노&디토’에서 꽃을 고르면 그 꽃과 같은 장식이 된 케이크가 세트로 따라간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선을 보러 나온 남자가 차를 마시다가 마음에 드는 상대방에게 즉석에서 꽃을 선물하는 낭만적인 광경도 연출된다. 밝은 분위기 때문에 홍대 앞에서는 아이를 데리고 나온 부부들도 더러 찾는다.“우리는 100% 수제 머핀과 케이크만 파니까요. 시중에 있는 천편일률적인 맛과는 확실히 다르죠. 첨가제를 넣지 않으니까 아이들에게도 믿고 먹일 수 있고요. 데이트도 끊고 셋이서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마노&디토’의 공동 대표인 현주 씨의 남자 친구 우병훈 씨는 바리스타로서 커피 맛을 책임지며 두 자매를 응원해 주고 있다. 병훈 씨에게는 여자 친구인 현주 씨가 독립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주고 싶은 꿈이 있다.“저도 호텔에 있었기 때문에 서로 사정을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같이 일을 하게 되니까 전에 보이지 않던 부분들도 보입니다. 감정에만 치우치기보다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죠. 항상 같이 있어서 걱정이 없다는 건 장점이고요.”남자 친구의 외조 덕인지 언니 현주 씨는 강의도 많이 한다. 초급, 전문가 과정, 부케로 나눠 1주일에 한 번씩 가르치는데 최근에는 플로리스트를 꿈꾸는 직장인들도 많이 찾는다고 한다. 동생 희성 씨 쪽으로도 케이크 만들기나 꽃 장식을 배우고 싶다는 문의가 빗발친다.“파티셰의 인기가 높아지고 보기에 예뻐서인지 많은 분들이 물어봐요. 아무것도 모르고 덤비기보다 정식으로 도전하려는 분들에게만 전수할까 생각 중이에요. 숙달된 저 역시 조금만 정신이 흐트러지면 장미꽃 한 송이에도 실수하기 쉽거든요. 이 기술을 소중히 여기는 분들을 만나고 싶습니다.”식감을 생각해 버터크림이 아닌 생크림만을 고집하는 희성 씨여서 그녀의 꽃 장식은 더 어렵다. 초콜릿과 설탕 공예 등 다양한 장식을 공부해 봤지만 금세 녹아버리는 문제 때문에 꽃 장식에는 접목이 까다롭다. 아네모네 수국 장미 모양이 만발한 아름다운 겉모습만 보고 쉽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볼 때 조금은 속상하다.두 자매가 갈 길은 아직 멀다. 케이크의 맛과 멋을 제대로 즐기려는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케이크는 먹기라도 하지, 꽃은 됐다고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젊은 그들이 각자의 길을 넓혀가면서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을 동행으로 얻어 나가기를 기대한다.김희연·객원기자 foolfox@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