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제 667호 (2008년 09월 15일)

‘서로 다른 방향에서 보석을 디자인하죠’

기사입력 2008.09.11 오전 09:48

‘서로 다른 방향에서 보석을 디자인하죠’
생김새도 성격도 닮지 않았다. 하지만 보석에 대한 사랑, 보석 디자인에 대한 열정만큼은 세상 그 누구보다 꼭 닮은 모녀가 있다. 명실상부한 궁중옥의 대가 서지민 교수와 혁신적인 디자인으로 세계를 사로잡은 예명지 디자이너 이야기다.

삼성동 무역센터 45층에는 보석 브랜드 ‘예명지-궁중옥’ 매장이 있다. 입구를 들어서면 우선 진열장 가득 전시된 보석들의 아찔할 정도의 화려한 면면에 시선을 빼앗긴다.

하지만 보석의 아름다움에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하고 돌아보면 여느 매장과는 좀 다른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바로 좌우가 서로 다른 분위기, 서로 다른 방식으로 진열된 보석들의 모습이다. 오른쪽에는 우아하면서도 깊이 있는 색감의 전통 노리개며 옥지환들이 전시돼 있고 왼쪽에는 화려하고 섬세한 디자인을 자랑하는 골드(Gold) 중심의 보석들이 전시돼 있다. 보석의 종류가 다른 만큼, 인테리어도 작품이 전시된 방식도 전혀 다르다.

“오른쪽은 어머니의 작품들이고, 왼쪽은 제 작품들이에요. 여기가 바로 우리 모녀가 작업실 겸 매장으로 사용하고 있는 곳이랍니다.”(예명지)

서로 마주보고 전시돼 있는 옥 공예품들과 현대적인 보석들은 흡사 보석 디자인의 전통과 미래를 나란히 보여주는 듯하다. 또한 이 공간은 보석 디자인을 향한 어머니와 딸의 서로 다른 접근 방법을 한눈에 보여주는 상징적인 모습이기도 하다.

“저는 우리 궁중옥을 대상으로 옛것을 재조명하고 전통적인 문양을 연구하는 학자에 가까운 반면 딸 명지는 늘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남들과 다른 자신만의 독창적인 예술 세계를 추구하는 도전적인 디자이너라고 할 수 있죠.”(서지민)

“그래서 성격도 전혀 달라요. 어머니는 전형적인 외유내강형이시고 전 명랑쾌활한 편이죠. 생김새도 전혀 다르지 않나요?(웃음)”(예명지)

이렇듯 달라도 참 많이 다른 모녀 사이지만 두 사람은 서로를 가장 많이 이해하는 모녀간이기도 하다. 단순히 핏줄로 연결돼 있어서만이 아니라 예술가로서, 보석과 사랑에 빠진 사람으로서 그 누구보다 상대방의 보석 디자인에 대한 열정에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딸에서 딸의 어머니로

서울산업대 등 대학 강단에서 수십 년 동안 금속공예학을 가르쳐 온 서지민 교수는 원래 역사학도였다.

“어려서부터 어머니의 옥비녀나 옥가락지 등의 장신구들에 관심이 많긴 했었어요. 하지만 제 자신이 옥 공예가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죠.”

대학 시절 발굴 작업에 따라다니면서 우리 전통 공예품들 중에 옥 장신구가 유난히 많다는 사실을 발견한 뒤부터 ‘옥(玉)’이 그녀를 사로잡았다. 특히 존귀함의 상징이자 그 예술성이 가장 높은 전통 궁중옥(宮中玉)은 그 후 40여 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그녀가 열정을 쏟아 붓는 대상이 됐다.

예술가이면서도 동시에 후학을 가르치는 일에도 열정적으로 매진한 까닭에 서지민 교수의 영향을 받은 제자들의 수도 셀 수 없을 정도다. “그 때문에 어머니가 권유해 보석 디자인을 하게 된 게 아니냐는 이야기를 가장 많이 들었어요.”(예명지)

“하지만 전 한 번도 권유한 적이 없어요. 오히려 일 때문에 많이 바빴던 저와 달리 딸아이만큼은 평범하지만 소중한 가정의 행복을 누리며 살 수 있길 바랐죠.”(서지민)

하지만 원래 어려서부터 호기심이 많은 소녀였다. 그래서 세상에 없는, 자신만의 무엇인가를 만들어내는 일은 늘 소녀 예명지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그러다 대학 3학년 때 처음 어머니를 따라 파리에 가게 됐어요. 파리에서 열린 보석 전시회를 보러갔었죠.”(예명지)

그 후 세계적으로 유명한 보석 학교인 일본 히코미즈노 보석전문학교로 유학을 떠났다. 그리고 본격적인 자신의 보석 세계를 갈고닦기 시작했다. 하지만 질시에 가득 찬 시선은 늘 그녀를 따라다녔다. 보석 디자인을 하게 된 그 순간부터 ‘서지민 교수의 딸’이란 꼬리표가 늘 붙어 다녔다. “워낙 어머니가 대가셨으니까요. 지금에야 부러워서 그랬겠다고 이해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힘들었어요. 1999년쯤엔가 좀 큰 상을 받았었을 땐 어머니가 백을 써서 받았다는 이야기까지 들어야 했으니까요.”(예명지)

“너무나 다행스러운 건 이제는 아무도 ‘서지민의 딸’이라고 하지 않는다는 거죠. 이제는 오히려 제가 ‘예명지의 엄마’로 통한다니까요?(웃음)”(서지민)

실제로 예명지 디자이너는 오로지 실력으로 자신에게 따라붙는 모든 편견들을 극복해 나갔다. ‘국제 진주 디자인 콘테스트’ ‘월드골드 디자인 콘테스트’ ‘드비어스 주최 다이아몬드 투데이’ 등 세계적인 권위의 골드, 보석, 진주 디자인 콘테스트들을 모두 석권해 화제를 모았다. 한국 디자이너 최초로 세계적인 명성을 누리는 이탈리아 ‘비첸차오로 주얼리 쇼’에 공식 초청을 받기도 했고 2002년에는 일본 왕세자빈 초청 로열패밀리 보석쇼에 한국 대표로 참석하기도 했다.

특히 보석 디자인에 컴퓨터 그래픽을 응용해 실처럼 가는 금을 입체적으로 교차해 망사 형태로 만든 ‘입체망사기법’의 디자인을 개발해 보석 디자인의 새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야말로 한국 보석 디자인을 이야기할 때 ‘예명지’라는 이름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을 정도의 걸출한 성과들의 연속이었다. 그 모두가 딸을 믿고 말없이 뒤에서 지켜본 어머니 덕분이었다. 또한 세간의 수군거림에 상관없이 오직 실력으로 자신의 디자인을 설득시키려 했던 딸의 노력 덕분이었다.

따로 또 같이 걸어가는 보석 디자인의 길

조만간 서지민 예명지 모녀는 ‘세계 장신구사’라는 책을 출판할 예정이다. 몇 년 동안 서로 함께 연구하고 집필한 이 책은 어머니 서지민 교수가 고대편을, 딸 예명지 디자이너가 현대편을 맡았다. “출판을 기념해 합동 전시회도 열 생각이에요. 1부는 어머니의 궁중옥 전시회로, 2부는 제 보석 디자인 전시회로 꾸미면 어떨까 생각하고 있죠.”(예명지) “아예 한 무대에서 동시에 하는 건 어떨까? 그것도 재미있지 않겠니?”(서지민) 벌써부터 합동 전시회에 대한 아이디어를 나누며 얼굴에 홍조를 띠는 두 사람은 천생 ‘꿈 많은 소녀들’의 모습, 바로 그것이다.

“앞으로의 계획이요? 지금까지처럼 제 길에 최선을 다해야죠. 아직도 궁중옥에 대해 연구할 것이 많아요. 나중에 기회가 되면 궁중옥 박물관을 건립하고 싶습니다.”(서지민)

“얼마 전 롯데 VVIP카드 ‘롯데 인피니트 블랙카드’를 디자인하기도 했는데요. 카드뿐만 아니라 그 외에 다양한 패션 아이템이나 생활 가구, 소품 등에도 분명 보석 디자인이 활약할 가능성은 크다고 봐요. 그래서 늘 새로운, 더 다양한 보석 디자인의 가능성에 계속 도전하려고 합니다. 지켜봐 주세요.”(예명지)

서지민(왼쪽) 경북대 사범대 역사학과 졸업. 연세대 대학원 사학 전공. 테네시 주립대 고대보석연구. 서울산업대 금속공예학과 겸임교수. 상공부 교통부장관상. 민예품 보석심사위원. 기능올림픽 보석연마 심사위원. 저서 ‘복식문양미’ ‘장신구사’ 등.

예명지 홍익대 산업미술대학원 귀금속디자인 석사. 국제 진주 디자인 콘테스트 본상. 월드골드 디자인 콘테스트 베스트디자인상. 아시아 유색보석디자인대회 본상.

김성주·자유기고가 helieta@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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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08-09-11 09: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