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제 667호 (2008년 09월 15일)

한국 경제의 희망 바이러스

기사입력 2008.09.11 오전 09:56

또다시 추석이 돌아왔다. 지난(至難)한 한국 경제의 현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올해에도 추석의 보름달은 1년 중 가장 크고 밝게 빛날 터이지만 지금 이 순간의 한국 경제는 점점 더 밝게 빛나기는커녕 어두운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다.

경기선행지수와 경기동행지수 순환변동치가 6개월 연속 동반 하락하고 있다. 통계 작성 이후 처음 나타나는 현상이다. 취업 준비생과 그냥 놀고 있는 청년들을 합치면 일을 하지 않고 있는 청년이 100만 명이 넘고 있다. 여기에 국내외 금융시장은 폭락을 거듭하며 금융시장 참가자들을 거의 패닉 상태로 내몰고 있다.

이번의 경기 침체가 더욱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는 최근의 경험으로 볼 때 비록 경기가 좋아진다고 하더라도 우리 경제가 다시 예전과 같은 활기찬 모습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적어 보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추석날에 떠야 할 보름달이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는 상황이 되더라도 구름 뒤에 보름달이 환하게 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경기 침체라는 구름 뒤에 환한 추석 달이 존재한다는 믿음이 거의 없다. 한마디로 우리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경기 침체라는 사실이 아니라 우리 경제에 희망 바이러스가 희박하다는 점이다.

희망을 갖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우리 경제에서 미래를 위한 투자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대기업들은 수십조 원의 현금을 금고에 쌓아둔 채 투자할 곳을 찾지 못하고 있다. 신성장 기법으로 내세우는 국내 기업 간 인수·합병은 개별 기업의 입장에서는 투자이지만 국가 전체적으로는 새로운 투자라고 하기 어렵다. 우리가 옆집 논을 산다고 해서 마을 전체의 쌀 생산량이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논을 만들어 농사를 지어야만 우리 마을의 쌀 생산량이 늘어나는 것이다.

중소기업들은 밀려드는 글로벌 경쟁에서 오늘을 사느라 내일을 고민할 여유조차 없다. 개인 차원에서 미래에 대한 가장 큰 투자는 교육이다. 한국의 교육 시스템에서 자식들을 키워 본 학부모들은 우리의 학교 교육에서 대한민국의 희망을 찾자는 것은 아마 세상에서 가장 황당하게 들리는 얘기 중 하나일 것이다.

우리가 희망을 갖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는 한국 경제가 가진 고유의 역동성을 점차 상실해 가고 있기 때문이다. 위험을 감내하고서라도 과감하게 세계의 오지를 개척하던 기업의 전사들을 점점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독자적 기술 개발을 위해 연구실과 현장에서 밤을 지새우던 과학자와 기술자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야전침대에서 인생의 열정을 모두 바치던 기업가 정신이 추락하고 있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내 집을 마련할 수 있다는 신념으로 오늘을 희생하면서 내일을 준비하던 청년들이 사라지고 있다. 한국 경제를 구성하던 역동성이 사라진 자리에는 지금의 생존에 만족하며 안정을 찾아 편안함을 추구하는 군상이 자리 잡고 있다.

이번의 경기 침체가 길더라도 길게 느껴지지 않게 하려면 한국 경제가 희망 바이러스를 만들어야 한다. 개인과 기업이 미래를 위해 활발하게 투자하는 투자 의욕 충만 경제 시스템을 만들어 보자. 상하의 이동이 원활하고 가능성에 투자하는 사람과 기업을 우대하는 역동성 중심의 경제 시스템을 만들어 보자.

경제는 선택이다. 기업이 투자를 활발하게 할 수 있도록 각종 규제를 과감하게 철폐하자. 시장에서의 역동적인 구조조정이 가능하도록 각종 기업 및 노동 관련 제도를 유연화하자. 한국 교육에서 미래를 위한 희망을 찾을 수 있도록 과감하게 교육을 개혁하자. 역동성 있는 사회를 위해 각종 조세와 인센티브 시스템을 재설계하자. 우리 경제에 추석의 보름달을 다시 띄워야 할 때다.

한국 경제의 희망 바이러스
강석훈
성신여대 경제학과 교수


약력: 1964년생. 86년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91년 미국 위스콘신대 경제학박사. 92년 대우경제연구소 금융팀장. 97년 성신여대 경제학과 교수(현). 2002년 기획예산처 기금평가위원(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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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08-09-11 09: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