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하는 부동산 시장

미국 월가에서 촉발된 부동산발(發) 금융 위기가 대서양을 건너 영국 런던의 금융 중심지에까지 상륙한데 이어 중국에까지 엄습할 조짐이다. 아시아의 금융 중심인 홍콩은 물론 중국의 부동산에 투자했던 외국의 헤지 펀드와 투자은행 등이 자구책 마련을 위한 자산 처분 차원에서 대거 빠져나갈 조짐이 나타나면서 중국판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 담보대출) 위기론이 다시 급부상하고 있는 것. 홍콩 금융 당국이 최근 미 정부의 구제금융으로 파산 위기를 모면한 세계 최대 보험회사인 AIG의 홍콩 자회사인 AIA보험사에 허가를 받지 않고 자산을 모회사인 AIG로 이동하는 것을 금지하는 조치를 취한 것도 이 같은 불안 때문이다.홍콩의 고급 아파트 매도 호가는 최근 파산 보호를 신청한 리먼브러더스, 뱅크오브아메리카(BOA)로 팔린 메릴린치, 850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받게 된 AIG 등이 사무실을 철수하거나 축소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7~10% 폭락했다. 리먼브러더스는 홍콩 중심가 빌딩에 약 1만3000㎡, 메릴린치는 9300㎡의 사무용 공간을 사용하고 있다. 이 때문에 “미국 금융 회사 파산·매각으로 홍콩 사무용 빌딩 임대료가 6개월 안에 10~15% 하락할 것(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금융인들이 주로 거주하는 고급 아파트일수록 하락 폭이 더 크다. 해피밸리의 한 호화 아파트 주인은 최근 매도 호가를 100만 홍콩 달러(약 1억5000만 원) 낮춰 1800만 홍콩 달러(약 27억 원)에 내놓았지만 집을 사려는 사람을 찾기 힘들다고 전했다.상하이 부동산 시장도 비슷한 분위기다. 모건스탠리는 지난 9월 15일 상하이 최고층인 세계금융센터의 부동산 자산 매입 제안을 거절했다. 모건스탠리는 또 상하이 푸둥 지역에 보유 중인 피너클공원 용지를 매물로 내놓았다. 맥쿼리와 HKR인터내셔널 등 다른 외국인 투자자들도 아파트 매각에 나선 상태다.이 같은 기류는 중국에 밀려들던 핫머니(국제 투기성 자본)가 썰물처럼 빠져나가 중국 경제에 치명타를 가할 수 있다는 위기론을 부추기고 있다. 실제 지난 7월 중국의 외환 보유액은 전달 대비 56억 달러 증가에 그쳤다. 이는 같은 기간 중 외국인 직접투자(FDI)와 무역 흑자를 합친 금액에 크게 못 미치는 규모다. 지난달 FDI는 83억3600만 달러,무역 흑자는 252억8000만 달러였다. 중국 사회과학원 중국경제평가중심의 류위휘 주임은 “6월에 이어 7월에도 외환 보유액 증가분이 FDI나 무역 흑자보다 훨씬 적었다”며 “자본 계정에서 핫머니가 해외로 빠져나가고 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지난 6월 외환 보유액 증가분은 119억 달러였다.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지 2년이 지난 2003년부터 외환 보유액 증가분은 FDI와 무역 흑자분을 합친 금액을 훨씬 초과해 이 부분이 핫머니로 추정돼 왔다. 2006년과 2007년 외환 보유액 증가분에서 핫머니로 추정되는 규모는 각각 5억 달러와 1170억 달러에 달했다. 올 들어서도 4월까지 시간당 1억 달러의 핫머니가 유입된 것으로 추정됐으나 최근 자금이 유출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핫머니 유출은 △미·유럽계 은행들의 손실 보전을 위한 자금 회수 △위안화 급상승 제동 △정부의 핫머니 단속 강화 등이 맞물리고 있기 때문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교통은행의 롄핑 수석이코노미스트는 “당면한 가장 큰 위험은 핫머니가 단기간에 대규모 철수하는 것”이라며 “중국 금융시장에 치명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에 어떤 일이 있어도 대규모 자본 유출이 일어나서는 안 되게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특히 중국의 경기 둔화 우려와 증시 침체로 부동산 시장이 더 얼어붙으면서 월가식 위기가 재연될 수 있다는 경고가 잇따르고 있다. 모건스탠리는 추석 전날인 9월 12일 보고서를 통해 “중국의 부동산 시장이 ‘집값 폭락(meltdown)’으로 향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았다. 모건스탠리의 제리 루 애널리스트는 “중국의 주택 가격은 이미 주요 대도시에서 무너지고 있어 부동산 시장의 붕괴 가능성은 굉장히 높다고 생각한다”면서 “이 여파로 은행의 수익성도 지속적으로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골드만삭스도 보고서를 통해 중국 은행권의 부실 대출 위험이 올해 4분기나 내년 상반기에 가시화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중국의 부동산 거래가 위축되고 투자자의 불안감이 커지면서 개발 업체들이 자금난에 직면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동안 부동산 업계의 성장 둔화에도 불구하고 개발 업체들의 높은 투자 수익률과 외자 유입이 완충작용을 했으나 지난해 하반기 이후 부동산 경기 변화는 투자를 확대해 온 개발 업체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것이다. 은행권의 부동산 대출 비중이 높은데다 담보 가치가 부동산 경기 하락으로 계속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중국삼성경제연구원의 박승호 소장도 “중국 은행들의 부동산 대출은 집값의 70%로 대단히 높은 수준”이라며 “중국 부동산 가격의 가파른 하락이 대규모 금융 위기를 초래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이미 베이징 올림픽을 전후로 선전과 광저우 상하이에서 집값이 급락하고, 베이징의 부동산 거래가 크게 위축되는 등 중국판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중국 부동산 시장 대란설의 진원지는 광둥성의 선전과 광저우다. 이들 지역의 부동산 가격은 연초 대비 30% 이상 폭락했으며 선전은 지난 6월 말 신규 주택 평균 가격이 지난해 10월보다 36% 폭락했다. 또 지난 7, 8월 상하이의 부동산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44.8%의 물건에서 가격 하락 현상이 나타났고 베이징의 부동산 시장도 침체가 깊어져 지난 8월 주택 거래는 1687건으로 전월 대비 24% 줄었고 거래 가격도 1㎡당 평균 8927위안으로 전월 대비 6.21% 내렸다.부동산 시장 침체 현상은 중국 전역으로 확대되는 양상이다.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에 따르면 8월 중국 70개 도시 지역의 부동산 가격이 전월 대비 0.1%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선전 등 일부 도시가 전월 대비 하락세를 보이고 있지만 70개 도시 전체적으로 전월에 비해 부동산 가격이 떨어진 것은 지난 2005년 7월 이후 처음이다. 여기에다 최근 중국 최대 부동산 업체인 완커를 둘러싼 대규모 미분양 사태와 계약자들의 항의 시위가 속출하면서 위기론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는 양상이다. 완커는 광둥성 둥관에 숭산후 별장형 단지를 개발하면서, 지난 2006년 8월 1기를 분양할 때 분양가는 ㎡당 1만8000위안에 성공적으로 분양한데 이어 지난해 8월 2기 분양에서는 분양가가 ㎡당 3만 위안이었으나 올해 8월 3기에는 부동산 시장 침체의 영향으로 분양이 이뤄지지 않자 가격을 절반 수준인 1만5000위안으로 낮췄다. 이 때문에 1기와 2기의 분양을 받았던 사람들은 성난 군중으로 돌변해 자신들에게도 인하된 가격을 적용해 달라며 분양 사무실의 집기를 부수는 등 거세게 항의하고 있다.중국 부동산 개발 회사들이 이처럼 아파트 할인 판매에 나선 것은 미분양 증가와 긴축 정책에 따른 대출 억제 등으로 자금난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중국의 대형 부동산 개발 업체는 급격한 실적 악화로 몸살을 앓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완커의 지난 8월 분양 면적은 47만4000㎡, 분양 금액은 40억7000만 위안(약 6100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각각 32.8%, 35.2% 감소했고, 바오리부동산의 8월 분양 면적은 18만6300㎡에 분양 금액은 12억400만 위안으로 전월 대비 7.97%, 전년 동기 대비 10% 각각 감소했다. 이에 따라 부동산 업계의 연쇄 도산 가능성과 이에 따른 지방 중소은행의 도산 도미노까지 예견되고 있다. 오광진·한국경제 국제부 기자 kj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