얀 파셴 파셴 사장

독일은 제조업이 강한 나라다. 독일의 지난해 수출은 1조3610억 달러로 세계 1위다. 2위인 중국보다 1400억 달러나 많다. 또 다른 제조업 강국인 일본의 6660억 달러에 비해선 2배가 넘는다. 특히 중소 제조업체의 경우 세계 500대 기업 중 약 400개가 독일에 있을 정도로 경쟁력을 갖고 있다. 독일에서 5대째 목재 가공 제품을 생산해 온 파셴(Paschen)도 작지만 강한 업체다. 바티칸 궁전의 서재는 파셴 제품으로 꾸며져 있다. 독일의 축구 스타 루카스 포돌스키 슈퍼모델 클라우디아 시퍼도 이 회사 고객이다. 이 회사의 얀 파셴(44) 사장이 최근 내한했다. 파셴은 한국의 서재 가구 전문 업체 이라이브러리(부회장 성열찬)와 손잡고 사상 처음으로 아시아 시장 개척을 추진하고 있다.“파셴은 고급 원목으로 시가 케이스를 제작하기 시작해 지금은 서재 가구를 주로 만들고 있는 가구 전문 업체다. 1883년 설립됐으니 올해로 125년 된 업체다. 독일에 공장을 두고 유럽에 100여 개의 대리점을 두고 있다. 종업원은 200명이며 연간 매출은 약 800억 원쯤 된다. 공장 및 본사는 프랑크푸르트에서 자동차로 북서쪽으로 3시간정도 떨어진 바데슬로에 있다.”“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파셴은 처음에 시가 케이스와 담배 케이스를 제작했다. 레바논산 향나무를 소재로 한 최고급 제품이다. 그 자체가 하나의 예술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사업을 유지하기는 힘들었다. 1970년대부터 서재 가구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 후에 이를 집중적으로 개발해 1990년부터는 아예 서재 가구를 전문적으로 생산하고 있다. 100여 년에 걸쳐 사업 아이템이 조금 바뀌었지만 기본적으론 목재 가공이라는 한 우물을 파 온 셈이다.”“고등학교 졸업 후 베를린대에 입학해 역사학을 공부했다. 그러나 단순히 역사만 공부한 게 아니라 철학 음악 등 여러 방면의 수업도 듣고 책도 많이 읽었다. 그러던 중 학위를 꼭 따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 대학을 중퇴했다. 그리고 곧바로 파셴에 입사했다. 1990년에 들어와 1997년에 대표이사를 맡았다. 33세에 최고경영자가 된 셈이다. 18년 동안 가구 생산에 종사해 왔다. 하지만 실제로는 40년 이상 가구 생산과 인연을 맺어 왔다. 우리 집이 공장 안에 있어 어릴 적부터 공장에서 뛰어놀고 방과 후엔 공장 일을 거들었기 때문이다.”“서재 가구다. 쉽게 말하면 책장이다. 우리는 가정에 맞는 서재 가구를 맞춤형으로 제작·설치해 준다. 가정마다 집의 구조가 다르다. 예컨대 천장이 높은 집이 있고 낮은 집이 있다. 또 계단으로 이어진 2층 구조도 있다. 2층의 경우 세모꼴 천장을 가진 집도 있다. 어떤 형태의 집이든 우리는 그 집 주인이 원하는 대로 서재 가구를 제작·설치해 준다. 자투리 공간을 없애 공간 활용을 극대화하는 게 우리의 장점이다. 소재로 보면 원목 제품도 있고 중밀도섬유판(MDF)에 얇은 원목을 붙인 제품도 있다. 디자인 형태로는 클래식한 제품도 있고 모던한 스타일의 제품도 있다. 용도별로는 가정용도 있고 사무실용이나 관공서용도 있다.”“맞다. 서유럽은 거의 전역에 대리점이 있고 요즘은 동유럽 쪽으로 급속히 시장을 넓혀가고 있다. 예컨대 러시아 우크라이나 폴란드 등이다. 특히 러시아의 경우 경제력이 살아나면서 시장이 급속도로 커지고 있다. 그러나 어느 지역이든 우리는 맞춤형 서재 가구를 제작해 공급한다. 대리점은 고객 집의 치수를 재고 디자인 초안을 만들어 우리에게 인터넷을 통해 보내준다. 그러면 우리가 캐드(CAD: 컴퓨터 이용 설계) 시스템을 통해 정밀하게 디자인한 뒤 자동화된 기계를 통해 목재를 다듬고 제품을 생산해 공급하는 식이다. 그런 뒤 해당 대리점에서 이를 설치하고 애프터서비스를 담당한다.”“처음에는 이 시스템에 의한 수주와 제작 설치까지의 시간이 많이 걸렸다. 하지만 지금은 경험이 축적돼 주문을 받은 뒤 3주 정도면 생산을 완료하고 6주 정도면 설치까지 마칠 수 있다.”“우리는 프리랜서 디자이너를 활용하지 않는다. 전부 6명의 전문 디자이너를 두고 있다. 물론 프리랜서를 쓰면 경비를 줄일 수 있다. 하지만 우리 고유의 디자인을 살리기 위해 우리가 직접 디자인한다. 친동생인 크리스찬 파셴 이사는 디자인을 전공했고 회사의 디자인팀을 총괄하고 있다.”“맞는 지적이다. 독일은 인건비가 비싸다. 게다가 우리는 불법 체류자를 단 한 명도 쓰지 않는다. 그 자체가 탈법 행위이기 때문이다. 대신 1년 365일 원가 절감을 생각한다. 원래 목재는 사람의 손으로 가공하는 게 가장 좋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생산성을 높일 수 없다. 원가를 절감할 수도 없다. 그래서 공장을 최대한 자동화했다. 목재를 자르고 가공하고 붙이는 작업을 거의 기계가 담당한다. 설계 역시 컴퓨터를 활용해 시간을 단축했다. 완제품 포장 작업도 자동화했다.”“그래서 원자재 재고를 대폭 줄였다. 보통 5일치의 재고만으로 운영하고 있다. 수주와 함께 원자재를 발주하는 식이다. 주문 생산이다 보니 완제품 재고는 아예 없는 셈이다. 주문 제작은 어떻게 보면 답답한 경영 형태인지도 모른다. 미리 제품을 만들어 놓고 파는 스톡세일에 대한 유혹도 있다. 하지만 주문 제작은 이런 측면에서 강점이 있다.”“한국은 여러 면에서 독일과 문화적인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고 본다. 분단 국가 경험도 비슷하고 음악을 무척 사랑하는 것도 비슷하다. 고급 제품에 대한 안목이 높은 것도 비슷하다. 이라이브러리 경영진과는 금년 봄 밀라노 가구 쇼에서 처음 만났는데 마침 이라이브러리가 고급 서재 가구 전문 업체여서 이 분야에 대한 폭넓은 인식을 갖고 있었던 데다 인천 공장과 서울 시내 매장을 둘러본 결과 파트너로서 아주 적합한 회사라고 판단했다. 양사가 협력하면 한국 시장에서 아주 좋은 결과를 일궈낼 것으로 생각한다.“독일 기업들은 가업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 또 학위가 중요한게 아니라 그 분야의 장인(마이스터)이 될 경우 사회적으로 존경을 받는다. 다시 말해 장인이 되면 박사 학위를 가진 것보다 우대하는 풍토가 형성돼 있다. 유럽이 유럽연합(EU)으로 통합되고 글로벌화되면서 이런 장인에 대한 생각은 점점 옅어지고 있지만 여전히 장인이 만드는 제품은 그 자체가 신뢰할 수 있는 제품을 의미한다. 그만큼 독일에선 장인에 대한 믿음과 존경심이 강하다. 이런 분위기가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긍심을 갖게 해주는 것 같다. 독일 제품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프라이드를 느낄 수 있도록 정성을 다해 제품을 생산하는 태도도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독창성이다. 독일 기업들은 같은 제품을 만들더라도 타사와는 차별화될 수 있도록 노력한다. 그것이 디자인이든 기능이든 품질이든 마찬가지다.”1964년생. 베를린대 중퇴(역사학 전공). 90년 파셴 입사. 97년 파셴 대표이사(현).창업:1883년 / 종업원: 200명본사 및 홈페이지: 독일 바데슬로(www.paschen.de)연매출: 약 800억 원 / 주요 생산품: 서재 가구대리점: 유럽 지역에 100여 개김낙훈 편집위원 nhkim@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