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담회

참석자: 고승덕 한나라당 의원, 연강흠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 정석현 수산중공업 회장사회: 변형주 기자 사진: 서범세 기자얽히고설킨 키코(KIKO) 사태의 실타래를 풀기 위한 각계의 노력이 시작됐다. 피해 기업들은 물론이고 정부와 국회도 적극 나서고 있다. 자칫 국가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키코 사태의 원인과 대책 방향에 대해선 아직까지 의견이 분분하다. 외국계 투자은행의 음모론 등 적지 않은 의혹도 불거지고 있다. 과연 진실은 무엇이고 사태 해결의 가닥은 어디서 잡아야 할까. 한경비즈니스는 각계의 관계자들을 초청, 특별 좌담회를 마련했다. 국회 정무위 소속인 고승덕 한나라당 의원, 파생상품 전문가인 연세대의 연강흠 교수, 환헤지 피해 기업 공동대책위원장을 맡고 있는 수산중공업의 정석현 회장이 자리를 같이했다.사회자: 먼저 키코라는 상품 자체에 대해 의견을 들어보겠습니다. 구조 자체가 상당한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많은 것 같습니다. 연 교수님 말씀해 주시죠.연강흠 연세대 교수(이하 연 교수): 상품의 구조 자체는 대단히 단순합니다. 환율이 내리면 이익이고 오르면 손해인 구조죠. 하지만 분명한 것은 환헤지용으로는 적절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일정 환율 이하로 내려가면 계약이 해지되므로 헤지 효과가 적은데 비해 환율이 상단 베리어 이상으로 오르면 2배 3배 손실을 보게 됩니다. 환율이 오르면 수출 기업으로선 헤지할 필요도 없고 오히려 이익이 나야 하는데 그 반대 상황이 초래되는 거죠. 환헤지 상품이라기보다는 투기 상품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사회자: 실제로 기업이 얼마나 손실을 보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정 회장님, 어떻습니까.정석현 수산중공업 회장(이하 정 회장): 수산중공업이 계약한 상품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월 100만 달러를 약정했을 경우 달러당 905원일 때 환헤지가 최대가 되는데 이때 약 2500만 원의 이익을 볼 수 있습니다. 반면 녹인(Knock In) 구간인 947원에 들어서는 순간 월 3600만 원의 손실이 납니다. 환율이 오를수록 손실액은 눈덩이처럼 커지는데 1200원대인 최근의 환율에선 월 5억4000만 원의 손실이 납니다.사회자: 상품 자체의 결함이 명백한데 기업들이 이 상품을 왜 샀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하는 분들이 많습니다.정 회장: 주의 부족에 대해선 책임을 면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사태가 불거져 나온 후에 보니 상품이 심플하고 기업에 불리한 것이 명확해진 것이지 계약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더 큰 문제는 상품이 가지고 있는 리스크를 정확히 설명해야 할 판매자들이 위험 고지는커녕 ‘환헤지를 위해선 이 상품이 최고’라는 식으로 구매를 부추겼다는 사실입니다. 게다가 판매 절차에도 하자가 있습니다. 이런 중요한 계약을 기업과 은행의 최고경영자의 결재를 받지 않고 담당자들끼리 맺었습니다. 이래저래 억울한 부분이 적지 않습니다.사회자: 일각에선 기업이 환헤지가 아니라 투기를 목적으로 이 상품에 가입한 것 아니냐고도 합니다.정 회장: 은행 측의 주장입니다. 특히 오버 헤지한 기업의 경우가 그렇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상품은 투기용으로도 적합하지 않습니다. 환율이 내려가도 이익률이 3%가 안 됩니다. 반면 손실은 무한대로 날 수 있습니다. 겨우 이 정도를 먹으려고 이 상품을 샀다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기업은 이 상품이 헤지 효과가 크다고 착각했을 뿐입니다.연 교수: 계약을 하지 않으면 기존의 대출을 회수한다든가 신규 대출을 해주지 않겠다는 위협도 있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이 대목에서 정 회장은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다고 확인했다). 비용 절감 차원에서도 계약했을 수 있겠죠. 환헤지를 하기 위해 선물환을 사려면 수수료를 지불해야 하는데 이 상품의 경우는 수수료가 없으니까요.사회자: 또 하나의 의문점은 은행이 어떻게 이 상품을 적극적으로 팔 수 있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환율이 오랫동안 하락하는 시기에 환율 상승에 베팅한 셈인데요. 이 부분에 대해선 음모론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고 의원님부터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고승덕 한나라당 의원(이하 고 의원): 키코는 지난해 말부터 올 초 사이에 집중적으로 판매됐습니다. 당시는 환율 상승이 예측되는 시기였다고 봅니다. 세계 경제가 불안해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초에 미국의 모기지 은행이 도산하는 등 미국이 이미 신용 위기 과정 중에 있었습니다. 이렇게 되면 미국 경기를 비롯해 전 세계 경기의 위축과 한국의 수출 감소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실제로 한국의 무역적자가 심화되고 있지 않습니까. 전문가들, 특히 외국의 전문가들은 환율이 올라갈 것을 예측하고 있었다고 봐야 합니다. 이 와중에 환율이 상승해야 이익이 되도록 설계된 상품을 디자인하고 집중 판매했다는 것은 의도적이라고밖에 해석할 수 없습니다. 설혹 예측대로 환율이 오르지 않는다면 풍부한 자금력을 동원해 인위적으로 환율을 올려서라도 이익을 보겠다는 계산이 있지 않았나 추측됩니다.연 교수: 환율을 인위적으로 조작할 수 있는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을 겁니다. 국내 외환시장은 대단히 취약한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시장 규모도 작고 원화의 국제화도 덜 돼 있어서 비교적 작은 개입으로도 적지 않은 충격을 줄 수 있습니다.사회자: 키코가 옵션 상품이기 때문에 기업이 손실을 본 만큼 누군가는 이익을 봤을 텐데요.고 의원: 국내 은행은 이익을 별로 취하지 못했습니다. 상업은행들은 리스크 감소에 늘 신경을 쓰기 때문에 이 경우에도 반대 매물을 통해 계속 헤지를 해서 환율이 올랐지만 별다른 소득을 얻지는 못했습니다. 수익의 대부분은 반대 포지션을 취한 외국계 투자자의 손에 들어갔을 겁니다. 이 부분은 국정감사를 통해 사실 관계를 밝힐 예정입니다. 거대한 음모도 가능한 대목이라고 생각합니다.사회자: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정부가 이번 키코 사태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어떤 대책이 추진되고 있습니까.고 의원: 무엇보다 유동성 공급을 확대할 방침입니다. 키코 기업 외에도 최근 많은 중소기업들이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이대로라면 흑자 도산하는 기업도 있을 수 있는데 이를 막자는 것이 정부와 금융 당국의 의지입니다. 물론 키코 피해 기업들을 위한 특별 대책을 요구할 수도 있는데 이 역시 유동성 확대 차원에서 봐야 할 것 같습니다.정 회장: 유동성 확대만으로도 도산의 위험은 상당히 줄어들 수 있을 겁니다. 당초 방침대로 구체적인 실행 지침이 정해져서 이른 시일 안에 중소기업들이 도움을 받을 수 있으면 합니다.고 의원: 속도를 낼 것입니다. 정부도 긴급성을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다만 대출 만기 연장이라든가 대출의 출자 전환 등 은행과 협상이 필요한 부분은 시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이는 기업과 은행이 풀어야 할 문제인 것 같습니다.정 회장: 혹시 외화 대출을 해 줄 수는 없는지 궁금합니다. 지난 8월까지 키코 잔액이 90억 달러 정도인데 이 가운데 중소기업의 잔액은 50억~60억 달러가량인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금액 정도를 저리로 외화 대출해 주면 중소기업에 큰 보탬이 될 것 같습니다.고 의원: 그에 대해선 동의할 수 없습니다. 만약 환율이 더 오른다면 어떡합니까. 그렇게 되면 이중 피해를 당할 수 있습니다. 외화 대출을 원하는 기업들은 환율이 하락할 것을 전제로 하는 것 같은데 현재 경제 상황이라면 환율이 쉽게 내려갈 것 같지 않습니다. 최악의 경우 내년 중에 1400원대까지 오를 수 있습니다.사회자: 은행을 상대로 소송을 준비하는 기업도 상당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정 회장님, 어떻습니까.정 회장: 예, 수산중공업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하게 해 둘 것은 소송을 끝까지 진행해 승소함으로써 손실을 보전하는 것은 기업이 원하는 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보다는 은행과 기업이 협상을 통해 양측이 손실을 분담해 신속하게 이 사태를 마무리하고 기업이 경영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승소할 가능성이 100%라도 소송이 끝나려면 2~3년은 걸리는데 이 기간은 기업에 고통의 시간일 따름입니다. 이긴다 하더라도 그때까지 얼마나 많은 기업이 쓰러질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은행 측이 적극적으로 협조할지는 아직은 부정적입니다.고 의원: 법적 책임 소재는 분명히 가리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은행 측이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소송에 영향을 줄 수도 있겠는데 이에 대해선 기업들이 공동 대응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기업 측 변호사의 역량에 따라 계약 자체를 무효화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연 교수: 계약을 현시점에서 중단할 수 있는 방법도 고려해 볼 수 있습니다. 지금 중단해도 은행은 별 손실을 입지 않을 것입니다. 물론 환율이 더 오를 것으로 예측한다면 계약 중단을 거부할 수 있습니다. 이 경우에는 신용이 더 좋은 다른 곳이 이 계약을 인수할 수 있도록 은행 측이 인정해 주면 피해 중소기업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사회자: 소송을 당한 기업도 있습니다. 주주들이 중요한 경영 행위를 공시하지 않아 투자 손실을 입었다는 이유입니다. 이에 대해 기업들이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정 회장: 대책을 세울 여력이 없습니다. 단지 주주들을 이해시키려고 노력하고 있을 뿐입니다. 손실 사항을 공시를 통해 알리고 이해를 부탁하고 있습니다.고 의원: 주주들의 소송 제기는 가슴 아픈 부분입니다. 가뜩이나 어려운 기업에 소송까지 하면 이중으로 기업을 압박하는 꼴이 됩니다. 공시를 하지 않은 것은 키코의 위험성을 몰라서지 의도적인 것은 아닐 것입니다. 소송보다는 좀 더 기다리는 쪽을 권하고 싶습니다. 이번 사태가 원만하게 해결되면 주가가 오를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주주들의 피해에 대해서는 또 다른 논의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사회자: 금융 당국도 이번 사태에 책임이 있다는 질책을 피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이번과 같은 사태가 재발하지 않도록 제도 개선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요.정 회장: 금융 당국에 대해선 섭섭한 점이 많습니다. 지난 5월에 금융 당국을 방문해 대책을 요구한 일이 있었는데 그때 나서줬으면 지금처럼 사태가 커지지는 않았을 겁니다.연 교수: 하지만 현재로선 금융 당국이 할 수 있는 역할이 별로 없습니다. 키코는 장외 파생상품인데 이에 대해선 감독 규제할 권한이 없기 때문입니다. 단지 금융 회사에 대한 감독 권한만 있을 뿐입니다. 은행이 헤지를 통해 이 상품의 리스크를 회피했기 때문에 당국이 할 수 있는 게 없는 셈이죠.고 의원: 사실 금융 당국으로선 은행이 잘못했다고 인정하기 어려운 입장입니다. 그렇게 되면 당국이 금융 회사 감독에 책임이 있다는 것을 자인하는 꼴이 되기 때문입니다.사회자: 해외에선 장외 파생상품을 어떻게 관리합니까.연 교수: 마찬가지입니다. 규제를 하지 않죠. 계약자들이 스스로 자신들에게 가장 적합한 상품을 만들어 거래하게 해 보다 혁신적인 금융상품을 설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향후에도 장외 파생상품에 대해 금융 당국이 어느 정도 개입할 수 있는지 쉽게 결론을 내기 어려울 것입니다.고 의원: 적절한 정도의 관리는 필요하다고 봅니다. 금융 당국이 판매 과정상의 문제를 관리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키코처럼 투자자의 위험이 무한대로 확장되는 경우엔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정 회장: 이번 사태는 기술력 있는 중소기업의 해외 진출에 큰 장애가 되고 있습니다. 이번 사태가 해외의 바이어나 벤더들에게 알려지면 기업에 대한 신뢰가 크게 훼손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삽시간에 시장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금융권도 크게 생각해서 피해 기업과 함께 고민하고 대승적인 결론을 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변형주 기자 hjb@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