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통신

“러시아는 한국의 친구이며 함께 나가면 모두에게 큰 힘이 될 것이다.”이명박 대통령이 9월 29일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과 가진 정상회담에서 꺼낸 말이다. 하루 전날 밤 한·러 우호 친선을 위한 만찬에선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는 ‘다정한 벗을 찾기 위해서라면 천리 길도 멀지 않다’라고 했다. 러시아는 친밀감이 깊이 느껴지는 친구의 나라”라며 방러 소감을 밝혔다.이 대통령이 지난 4월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회담 이후 한반도를 둘러싼 주요 국가 정상들과 만났을 때 으레 ‘친구’라는 말을 잊지 않고 꺼내는 이유는 뭘까. 친구뿐만 아니라 지기, 우정 등의 표현이 단골로 오르고 정상들과의 ‘뜨거운 포옹’은 기본이다. 정상회담에서 나라별로 현안과 의제는 다르지만 ‘스킨십 외교’에 공을 들였다는 공통점이 있는 것이다.4월 미국 캠프 데이비드에서 있었던 첫 한·미 정상회담 때부터 ‘스킨십’은 시작됐다. 이 대통령이 주도하고 부시 대통령도 적극적으로 화답하는 모양새였다. 이전 정부 때 다소 소원했던 한·미 동맹 관계를 복원하고 양국 관계를 한 단계 높은 차원으로 이끌기 위한 노력의 결과라는 게 청와대 측의 설명이다.캠프 데이비드 정상회담은 파격의 연속이었다. 첫 대면에서 조지 부시 대통령 부부와 포옹한 후 이 대통령은 헬리콥터 장에서 숙소로 가면서 ‘자청’해 부시 대통령을 태우고 운전대를 잡았다는 것 자체가 극히 이례적이었다. 이 대통령은 기자회견장에 들어설 때나 떠날 때 부시 대통령의 등을 여러 번 치면서 친근감을 표시했다.지난 7월 일본 도야코에서 열린 G8 확대정상회의장에서도 두 사람은 서로 껴안고 등을 두드리며 친밀감을 과시했다. 이 대통령이 회의장에 들어서는 모습을 본 부시 대통령은 반갑게 다가가서 이 대통령의 팔을 이끌며 다른 정상들에게 일일이 소개했다. 이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세계 주요국 정상들과 한자리에서 보기는 처음이어서 부시 대통령이 ‘소개자’를 자처한 것이다. 8월 6일 청와대에서 가진 정상회담 때도 양 정상은 서로를 여러 차례 ‘나의 좋은 친구(My good friend)’라고 불렀다. 청와대 야외 잔디밭에 마련된 기자회견장으로 걸어오는 동안 두 정상은 서로 등을 토닥였으며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회견장을 떠날 때는 어깨동무한 채 한참 동안 걷기도 했다.지난 8월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과의 만남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연출됐다. 이 대통령은 후 주석에게 “오랜 지기처럼 친밀해졌음을 느낀다”며 분위기를 잡았다. 기자회견 후에는 서로 허리에 팔을 두른 채 악수했고, 등을 두드리며 ‘우의’를 보여줬다. 양 정상이 뚝섬 서울의 숲 방문 후 ‘이별’을 하며 뜨겁게 포옹하기도 했다. 감정 표현을 잘 하지 않는 중국 지도자가 포옹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이 대통령이 이렇게 스킨십에 적극 나선 것은 기업 최고경영자(CEO) 시절의 경험이 바탕에 깔려 있다. 한 핵심 참모는 “이 대통령이 CEO 시절 공사 수주를 따내는 과정에서 스킨십을 통한 인간적 신뢰가 얼마나 중요한지 터득했고, 외교에서도 적용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실제 이 대통령은 자서전 ‘신화는 없다’에서 스킨십의 중요성을 여러 차례 강조하고 있다. 이라크 시장 진출을 성사시키는 과정의 어려움을 설명하며 “혁명정부의 형제, 친구들의 우정도 한몫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마하티르 전 말레이시아 총리와는 실권이 없었던 부총리 시절부터 꾸준히 쌓아뒀던 ‘인간적 관계’가 나중에 큰 도움이 됐다고 밝혔다.1992년 현대건설 회장직을 그만두기 전 시베리아 개발 사업을 추진하면서도 러시아 친구들과의 우정이 사업에 ‘일조’가 됐음을 숨기지 않았다. 자서전엔 구소련 관계자와 “보드카를 마시며 인간적인 느낌을 주고받았다, 냉엄하고 살벌한 협상 속에서도 피가 흐르고 정이 흐르는 인간적인 만남이 있기에…”라고 적었다. 이번 한·러 정상회담 때도 “사업 협상을 하면서도 보드카를 마시며 정을 나누던 기억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취임 7개월여 만에 4강 외교를 마무리한 이 대통령이 남은 임기 중 이런 스킨십 외교가 어떤 결실을 볼 수 있을지 주목된다.홍영식·한국경제 정치부 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