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고 트렌드 읽기

최근 조승우 신민아 주연의 ‘고고70’이라는 영화를 보면서 영화 자체도 흥미롭지만 주인공들의 복고 스타일이 영화를 보는 내내 필자에게 웃음과 즐거움을 줬다. 주연 조승우는 촬영 후 한 인터뷰에서 영화 속 자신의 1970년대 스타일이 아직도 너무 어색하고 다시는 그런 스타일을 하고 싶지 않다고 농담처럼 말했다. 극중의 ‘상규’라는 인물이 국민 배우를 망가뜨릴 정도로 훌륭하게 1970년대로 포장됐기에 그를 보면서 필자도 실제로 살았던 그 추억의 시대로 돌아갈 수 있었다.영화계는 물론 한국 대중음악에서도 복고 바람은 매우 강력하다. ‘노바디’로 최근 컴백한 원더걸스는 1960~70년대의 복고풍으로 제작된 뮤직비디오와 의상으로 지금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 빅뱅 역시 조퍼스 팬츠(허벅지 부분은 여유 있게 넉넉하고 발목으로 내려갈수록 슬림하게 좁아지는 스타일의 팬츠)와 발목까지 올라오는 하이톱 슈즈, 다소 유치해 보일 수도 있는 형형색색의 안경테로 1970~80년대의 허슬과 디스코풍을 연상시키며 젊은 세대의 새로운 테크토닉과 힙합 패션을 이끌어가고 있다.왜 대중문화는 이처럼 복고를 지향하며 하위문화를 양산하고 있을까. 그리고 이러한 문화적 큰 파도에 나는 또 어디에 편승해야만, 혹은 어디까지 동참해야만 동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문화적이지 못하다는 오명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인간은 소위 자신이 가장 잘나갔던 화려했던 시절을 언제나 그리워하게 마련이다. ‘복고(Retro)’는 바로 그 시절과의 직간접적인 회귀를 통해 ‘노스탤지어’, 즉 ‘향수’를 되찾는 일일지도 모른다. 물론 내가 그리워하는 그 시간으로 되돌릴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그 시간을, 그 찬란하고도 아름다웠던 그 시간을 추억할 수는 있지 않은가 말이다. 물론 지갑을 열어야만 추억을 살 수 있는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 결국 복고의 유행과 미디어의 복고 문화는 인간의 과거에 대한 회귀본능을 잘 활용한 마케팅의 중요한 수단이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그렇다면 ‘복고’는 어떻게 우리에게 다가오는지 알아보자. 흔히 패션 평론가들은 유행이란 짧게는 10년, 길게는 30년 단위로 주기적으로 돌아온다고 말한다. 그러나 돌아오는 그 복고의 유행은 과거의 느낌과 특징만이 돌아올 뿐이지 그대로 재현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해두고 싶다. 그렇기 때문에 ‘고고70’이라는 영화는 복고 지향적인 영화이지만 배우들의 스타일은 복고 패션이 아니라 실제를 재현한 소품일 뿐 스타일이 아니다. 그래서 배우 조승우는 1970년대 인물을 연기하면서 자신의 스타일이 우스꽝스럽고 참기 어려웠을 것이다. 반면 빅뱅은 1980년대 룩의 스타일을 재창조한 까닭에 지금 바로 그 차림으로 클럽을 가도 2008년을 주도하는 1980년대 복고풍인 것이다.새로운 유행이 올 때에는 언제나 바로 전 시대를 풍미했던 유행의 잔상이 남는다. 즉, 유행은 특정 시대가 복고로 돌아온다고 해서 언제부터 언제까지 정확한 특정 기간이 정해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또 하나의 시대가 복고로 돌아오면 자연스럽게 그전 시대와 섞이게 마련이다. 명확한 경계선이 없이 여러 시대의 레트로가 자연스럽게 공존하듯 돌고 도는 것이다. 특히 2008년의 복고 트렌드는 유난히도 여러 시대가 오버랩되는 것이 많다. 예를 들어 젊은 세대의 트렌드를 이끌어 가고 있는 아이돌 스타들을 살펴보면 빅뱅, 샤이니, 2AM의 경우 모두 1980년대풍을 떠올리는 컬러 스키니 팬츠와 리복 같은 하이 톱 스니커즈를 입지만 그들의 안무는 1970년대 허슬을 연상시키는 ‘테크토닉’의 안무를 무대에서 펼친다. 원더걸스의 경우 의상은 기하학적 무늬와 미니스커트의 전형적인 1970년대인데 반해 메이크업과 헤어스타일은 전형적인 1960년대풍이며 부르는 노래는 드림걸즈가 불렀을 법한 1950년대풍을 2008년에 맞게 재해석한 것으로 보인다. 마치 원더걸스를 보면 1950, 60, 70년대가 함께 공존하고 있는 듯하다. 또한 극장가에서는 ‘고고70’이 1970년대를, ‘모던보이’가 1930년대를 배경으로 관객들을 다양한 시대로 타임머신을 태운다.이처럼 다양한 시대가 한꺼번에 오고 있는 복고의 바람이 정작 나와는 과연 무슨 상관이 있을까. 얼마 전 한 신문의 경제 섹션에서 ‘넥타이 푼 삼성’이라는 기사를 본 적이 있는가! 이제 삼성그룹이 넥타이를 풀고 ‘비즈니스 캐주얼’ 복장을 전격 도입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는 곧 많은 중소기업으로 전파될 것으로 보인다.비즈니스 캐주얼에서도 재킷은 기본이다. 재킷은 편안한 옷차림에도 불구하고 걸치는 것만으로도 디너가 가능한 분위기로 만들어 주는 편리한 아이템이다. 재킷은 주로 솔리드 색상이 대세였지만 올해는 유난히 ‘복고’의 영향으로 은은한 스트라이프나 체크무늬가 많이 등장했다. 이런 패턴이 있는 재킷은 클래식한 느낌은 물론 다양한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다.재킷이 기본이긴 하지만 재킷을 과감히 생략할 수 있는 것 또한 비즈니스 캐주얼의 묘미일지도 모른다. 와인 컬러의 브이넥 풀오버나 카디건도 재킷 대신에 비즈니스 캐주얼을 완성하는 좋은 무기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재킷 대신에 이러한 니트류를 선택할 경우에는 그 속에 반드시 칼라(Collar: 옷깃)가 있는 셔츠 상의를 준비해야만 한다. ‘비즈니스’ 캐주얼이기 때문이다.물론 날씨가 더 쌀쌀해지면 재킷을 또 그 위에 레이어드해서 덧입어도 무방하다. 다만 몸이 좀 뚱뚱해 보일 수 있으니 날씬한 사람만이 도전할 수 있는 룩임을 잊지 말자. 비즈니스 캐주얼뿐만 아니라 정장 슈트를 입을 경우에도 상의 속 와이셔츠가 몸통의 폭이 좁아 몸에 피트되는 슬림한 셔츠를 입는다거나 약간 과장된 듯한 와이드 깃의 셔츠를 선택하면 은근히 세련된 복고의 느낌으로 당신을 센스 있는 남성으로 보이게 해 줄 것이다.상의를 선택할 때에는 회색이나 베이지 같은 단정한 느낌의 컬러도 좋지만 복고의 느낌이 드는 바이올렛이나 오렌지, 와인 같은 컬러도 금요일 ‘캐주얼 데이’가 직장 내에서 허용된다면 과감히 시도해 보자. 당신의 생활에 활기를 불어넣어 줄 것이니 말이다. BON의 와인 컬러 V넥 카디건이나, 다소 난이도가 있지만 멋스러운 지크(SIEG)의 바이올렛 컬러 셔츠, 어느 곳에 매치해도 멋스러운 타임옴므의 베이직한 컬러 장식 니트를 참고하면 좋을 듯하다. 복고 패션을 연출하기 위해서는 위에 언급한 내셔널 브랜드 외에도 브랜드 자체를 ‘문화’라는 코드로 소비할 수 있는 명품 브랜드에서도 부담 없는 가격에 구입할 수 있는 기회도 이제는 많아졌다.새로운 세대에게는 다양한 시대가 한꺼번에 혼재하는 ‘멀티 복고 트렌드’가 신선하게 다가오고, 기성세대에게는 너무도 친숙한 느낌으로 향수를 불러일으키며 그들의 왕성한 소비 욕구를 자극하며 받아들여지고 있다. 어느새 ‘복고’는 다듬어지고 한층 진화된 모습으로 더욱 세련되고 멋있어 보이기까지 한다. 올해는 물론이거니와 2009년 봄 여름 뉴욕 패션 위크에서 나타난 추세 역시 ‘예전의 멋으로 돌아가되 촌스럽지 않게’ 라고 하니 당분간은 이 복고 열풍이 가라앉지 않을 듯하다.복고’는 단순히 과거의 것을 그대로 복사해 따라 하고 비슷하게 흉내 내는 것이 아니다. 그 한 시대를 응축하고 있는 문화적 산물로서 총체적인 문화의 이해가 뒷받침돼야만 진정한 ‘복고’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디지털 문명이 발전하면 발전할수록 아날로그적인 감성이 오히려 그리워지는 인간의 근본 감성 때문일까. 와인처럼 오래된 타임캡슐을 즐기는 고급문화를 이해하듯이 이제 멋스러움과 촌스러움의 경계에서 진정한 복고를 즐길 줄 아는 남성이 되자. 1994년 호주 매쿼리대학 졸업. 95~96년 닥터마틴·스톰 마케팅. 2001년 홍보대행사 오피스에이치 설립. 각종 패션지 지큐·앙앙·바자 등에 칼럼 기고. 저서에 샴페인 에세이 ‘250,000,000버블 by 샴페인맨’이 있음.황의건·오피스에이치 대표이사 h@office-h.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