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家 재산분할 본격화하나

신격호(86) 롯데그룹 회장과 신 회장의 셋째 부인인 미스롯데 출신의 서미경(49)씨, 그리고 서 씨가 낳은 신 회장의 막내딸 유미(25) 씨 등이 그룹 주력사인 롯데쇼핑 주식을 연일 사들여 그 배경에 재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롯데그룹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 등에 따르면 신 회장은 지난 10월 29일 롯데쇼핑 주식 3만 주를 사들였다. 전날 1만4260주에 이어 이틀 연속 장내에서 주식을 매입한 것이다. 서 씨와 유미 씨도 10월 29일 각각 6200주와 4700주를 매입했다. 서 씨 모녀가 사들인 롯데쇼핑 주식은 10월 20일 매입한 4960주와 서 씨가 최대 주주로 있는 유원실업을 통해 산 3000주, 전날 매입한 9769주를 합쳐 모두 2만8629주(지분율 0.1%)로 늘어났다.이들의 주식 매입 이후 롯데쇼핑의 주식은 10월 28일 상한가를 기록한 데 이어 29일에는 전일 대비 1만2500원(8.96%) 오른 15만2000원으로 마감되는 등 이틀째 오름세를 보였다.롯데그룹 측은 신 회장 등의 주식 매입에 대해 “최근 롯데쇼핑 주가가 너무 떨어져 있어 오너로서 주가를 부양하기 위한 목적으로 투자한 것”이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하지만 재계에서는 신 회장과 서 씨 모녀가 공동보조를 맞춰 롯데쇼핑의 주식을 매입한 것을 매우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일각에서는 지난해부터 시작된 신 회장의 ‘서 씨 모녀 챙기기’와 무관하지 않다는 관측이 솔솔 나오고 있다.이와 함께 그동안 철저하게 모습을 나타내지 않던 이들 모녀가 주식 매입을 통해 얼굴을 보이자 롯데그룹의 후계 구도에도 새로운 변수가 생길 수 있다는 시각도 나오는 상황이다.서 씨 모녀는 지난해 10월 세븐일레븐과 롯데슈퍼 등에 삼각김밥을 납품하는 롯데후레쉬델리카의 최대 주주에 오른 데 이어 롯데 계열사인 코리아세븐 지분도 매입하면서 롯데 오너 일가의 정식 일원으로 부상하고 있는 모습이다. 신 회장과 서 씨는 법률적으로 부부 관계는 아니지만 유미 씨는 지난 1988년 신 회장의 딸로 호적에 올랐고, 서씨가 친모라는 사실도 기재돼 있다.그동안 롯데그룹의 후계 구도는 신 회장의 장녀인 신영자 롯데쇼핑 사장, 장남인 신동주 일본롯데 부사장, 차남인 신동빈 롯데그룹 부회장 등 세 자녀로 압축되고 있는 상황이었다.신동주 부회장이 롯데쇼핑 지분 14.59%를 소유해 최대 주주이며 신동주 부사장은 14.58%, 신 회장이 1.37%를, 신영자 사장은 0.79%를 각각 소유하고 있다.서 씨의 갑작스러운 등장은 이러한 롯데그룹의 후계 구도에 가장 큰 변수가 될 것이라는 게 재계 관계자들의 중론이다.1959년생인 서 씨는 아역 탤런트 출신으로 안양예고 재학 시절이던 1977년 ‘미스 롯데’로 뽑히면서 롯데의 CF 모델로 활동하기 시작했다.‘서승희’라는 예명으로 불리기도 했던 서 씨는 빼어난 미모를 앞세워 모델과 탤런트 활동으로 인기를 모았으며 ‘방년 18세’ ‘단둘이서’ 등 10여 편의 영화에도 출연하며 당대 최고의 스타로 자리 잡았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이를 두고 “당시 서 씨의 인기는 지금의 김태희를 능가할 정도였으며 모든 젊은 남녀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다”고 말했다.그러나 잘나가던 서 씨는 1980년대 초반 돌연 종적을 감춘다. ‘유학을 떠난다’는 대외적인 이유를 앞세워 서 씨는 일체의 연예 활동을 접었다. 그러나 실상은 이때부터 신 회장의 숨겨둔 연인이 된 것으로 전해진다.오래지 않아 신 회장과의 비밀스러운 관계가 조금씩 언급되기 시작했다. 서 씨가 신 회장의 ‘영원한 샤롯데’였던 것. ‘샤롯데’는 ‘롯데’의 탄생 배경이 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여주인공 ‘샤롯데(샤로테)’와 같은 존재란 의미에서 붙여진 애칭이다. 이 같은 사실은 1980년대 영화계는 물론 언론인들 사이에서도 최고의 뉴스가 됐다.서 씨는 신영자 사장의 어머니인 고(故) 노순화 씨, 신동주 부사장과 신동빈 부회장을 낳은 시게마쓰 하쓰코 씨에 이은 신 회장의 세 번째 부인이 되었다.1980년대 이후 서 씨는 20여 년간 외부에 자신을 나타내지 않고 철저히 은둔 속에 살아 왔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영화계 몇몇 지인을 제외하고는 외부인과 전혀 접촉하지 않았다고 한다.이후 1988년 8월 신 회장과 서 씨 사이에 태어난 딸을 두고 ‘친생자 관계 확인소송’을 거치며 자신과 딸 유미 씨의 존재를 세간에 알리게 됐다. 당시 이 소송은 같은 해 9월 확정됐고 유미 씨는 신 회장에 호적에 올랐다. 그녀는 1983년생이지만 1988년에 비로소 호적에 이름을 올렸다. 외부와 차단된 채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서 씨 모녀가 롯데쇼핑 지분을 획득하고 나서자 후계 구도와 관련한 공식 활동에 나선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최근의 주식 매입 과정에서 또 하나 눈길을 끄는 것은 롯데시네마의 최대 주주인 유원실업의 지분을 100% 갖고 있는 사람이 바로 서 씨라는 사실이다.유원실업은 ‘시네마통상’과 함께 롯데시네마 사업부의 매점 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회사다. 현재 박성운(전 롯데전자 출신) 씨가 대표를 맡고 있지만 실질적인 주인은 서 씨다. 또 유원실업 이사로 등재돼 있는 서 씨의 오빠는 유기개발이라는 업체의 대표를 맡고 있다. 유기개발은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과 영등포점, 안양점, 잠실 롯데점에서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다.롯데시네마에 따르면 유원실업은 일산백화점관, 에비뉴엘관, 안양백화점관, 영등포백화점관, 노원백화점관 등 롯데시네마의 수도권 지역 8개 영화관의 매점을 임차하고 있다.시네마통상은 수도권을 제외한 롯데시네마가 직접 운영하는 지방 지역 10곳에서 매점 사업을 전담하고 있다. 시네마통상의 지난해 매출은 약 200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유원실업의 매출도 이에 못지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CGV와 메가박스 같은 대형 복합 상영관은 수익이 짭짤하기 때문에 매점을 직접 운영한다. 그런데 롯데시네마는 효자 사업인 매점 운영을 외주 업체인 유원실업에 맡기고 있는 것이다. 롯데시네마 관계자는 이에 대해 전체적으로 직접 관리하는 것보다 아웃소싱을 통해 좀 더 효율적으로 경영할 수 있는 업체에 맡기는 것이 나을 것으로 판단했다고 설명한다.롯데그룹은 서 씨가 지분을 100% 소유한 업체에 매점 운영권을 준 것에 대해 신 회장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고 주장한다. 유원실업으로부터 일정한 수수료를 받고 외주를 줬기 때문에 별다른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롯데시네마는 상장기업인 롯데쇼핑의 주요 사업 부문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주주의 이익을 생각해야 하는 주식회사가 엄청난 수익을 스스로 포기했다는 설명은 아무래도 설득력이 떨어져 보인다”고 말했다.이번 주식 매입과 관련해 롯데그룹의 한 관계자는 “최근 주가가 크게 떨어진 상황이어서 오너 입장에서는 충분히 추가 매수에 나설 시기였던 것으로 보인다”며 “서 씨 모녀도 사전에 신 회장의 허락을 얻어 롯데쇼핑의 지분을 취득했을 가능성은 높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지금 당장은 지분이 얼마 되지 않지만 향후 추가 매입을 통해 지분율을 높여갈 수도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현재 롯데가(家) 경영권 승계에 있어서는 신동빈 부회장과 신동주 부사장이 탄탄한 입지를 구축하고 있는 만큼 서 씨의 등장이 ‘경영권 승계’에 큰 영향을 끼치지 못하겠지만 유미 씨가 엄연히 신 회장의 딸로 호적에 올라 있는 만큼 향후 이들 모녀의 행보에 따라 ‘재산 분할 경쟁’도 예상된다.김재창 기자 changs@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