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 리스크 해법 찾기

중국이 지난 10월 29일 저녁 금리를 0.27%포인트 전격 인하했다. 지난 9월 15일 6년 만에 처음 금리를 내린 지 한 달 반 사이에 무려 세 차례나 금리를 낮춘 것이다. 소나기식 금리 인하는 중국의 경착륙을 저지하기 위한 총력전으로 해석된다. 중국의 경착륙은 한국 등 다른 나라의 경제성장도 동반 둔화시키는 차이나 리스크를 유발한다.하지만 중국이 작심한 듯 쏟아내고 있는 경기 부양책을 좇다 보면 차이나 리스크의 돌파구를 찾을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원자바오 중국 총리가 이번 금리 인하 직후 가진 중국 언론들과의 인터뷰에서 “내수를 진작시키기 위한 일련의 대형 프로젝트를 시작할 것”이라고 밝힌 것도 중국의 경기 둔화를 위기보다 기회로 보는 전향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분석에 힘을 실어준다.원 총리는 “중국은 4조 위안(1위안은 200원)의 저축과 1조9000억 달러의 외환보유액을 가지고 있다며 유동성 부족 문제가 없다”고 강조했다. 여기에다 올해 발행 규모가 600억 위안인 국채도 내년엔 2000억 위안으로 늘리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경기 부양을 위한 실탄이 넉넉한 것이다. 경기 부양의 흐름을 타면 벌어들일 수 있는 돈이 그만큼 크다는 얘기다.원 총리의 얘기대로 경기 부양의 핵심은 내수 진작이다. 유럽과 미국 등 주요 수출시장의 침체로 수출이 어려워지고 있는 만큼 13억 인구의 내수 시장을 부양하는 것만이 위기 돌파의 유일한 탈출구라는 인식이다. 하지만 증시와 부동산 시장의 침체, 그리고 잇단 기업 파산으로 거리로 내몰리는 근로자들이 급증하면서 중국의 소비자신뢰지수는 지난해 3분기 97을 기점으로 4분기 연속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강도 높은 내수 진작책이 필요하다는 주문이 나오는 이유다.중국 사회과학원 세계정치경제연구소 위융딩 소장은 “현재 중국의 내수는 해외 수요를 채울 만큼 탄탄하지 않다”며 “서민들의 소비가 좋지 않은 이유는 연금 의료 교육 노후 등에 대한 걱정이 많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내수 확대 여부는 농민들의 손에 달려 있다”며 “중국 정부가 최근 농민들의 소득 증대에 힘쓰는 것도 이런 이유”라고 설명했다. 7억5000만 명이 거주하는 농촌 시장을 겨냥하는 게 중국 내수 진작에 따른 수혜를 볼 수 있다는 얘기다.중국 정부는 최근 농민들이 토지경작권을 양도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한편 농민들의 1인당 소득을 2020년까지 2배로 늘리는 농촌육성안을 발표했다. 토지경작권 양도는 규모의 경제가 가능한 기업형 농장을 늘리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여기에다 농산물 최저 수매 가격도 대폭 올렸으며 농촌 소비를 자극하기 위해 농촌에 가전제품을 판매할 경우 판매가의 13%에 해당하는 금액을 정부가 보조금으로 지원하는 ‘가전하향(家電下鄕) 정책’도 12월부터 확대 실시하기로 했다.이미 일부 글로벌 기업들과 중국 기업들은 이 같은 흐름을 간파하고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세계 최대의 유통 체인 업체인 미국의 월마트가 중국의 오지에까지 판매망을 크게 확대하고 있는 게 대표적이다. 월마트가 지난해 중국에서 새로 문을 연 30개 점포 중 3개만이 상하이 베이징과 선전 등 대도시에 있을 뿐 나머지는 마오밍 우후 러우디 등 여행 가이드들에게나 익숙한 시골 도시에 위치하고 있다. 마오쩌둥의 고향 후난성 샤오산에 인접한 러우디는 주민 수가 400만 명에 달하지만 13억 인구의 중국에서는 작은 시장 축에 든다. 인구 230만의 중국 동부 우후, 680만의 남부 마오밍 역시 비슷하다. 월마트가 미국에서 설립될 당시 사용하던 시골 시장 진출 전략을 중국에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골드만삭스는 최근 2억~3억 달러를 투자해 중국의 양돈 중심지인 후난과 푸젠성에서 10여 곳의 전문 양돈농장을 인수했다고 중국 언론들이 전했다. 도이체방크도 최근 상하이의 한 양돈 업체와 투자 협상을 벌이고 있다고 현지 언론들은 전했다. 이는 세계 굴지의 투자 기관들이 중국의 농산품 시장에 눈독을 들이고 있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다.상품 투자의 귀재로 불리는 짐 로저스는 “중국에서 가장 투자 가치가 높은 것은 바로 농산품”이라고 강조해 왔다. 중국 최대 사료 업체 신시왕그룹의 왕항 부회장은 “최근 2년간 중국의 양돈업은 일반 농가의 돼지 사육에서 양돈 업체들의 전문적인 양돈업으로 발전하고 있다”며 “이 같은 추세가 외국 자본들의 시장 진입에 좋은 기회를 제공해 주고 있다”고 분석했다.신시왕그룹도 올해 10억 위안을 농촌 사업에 투자한 데 이어 내년에는 이를 더 늘리기로 하는 등 공격적인 투자 계획을 세웠다. 류융하오 신시왕그룹 회장은 “정부의 친농촌 정책을 활용해 돼지 닭 우유 생산을 크게 늘려 5년 내 연간 매출을 지금의 2배가 넘는 1000억 위안으로 끌어올릴 계획”이라고 말했다.신시왕그룹은 중국 정부가 대대적으로 육성하기로 한 농촌 금융시장에도 적극 진출할 계획이다. HSBC와 씨티그룹이 신시왕과 협력하는 데 관심을 보이고 있다. HSBC와 씨티그룹은 이미 지난해부터 중국 대도시에 집중된 지점을 시골도시로 확대하기 시작했다. 씨티그룹은 최소 10개 이상 지방은행을 설립한다는 계획이고 HSBC는 지난해 8월 이미 허베이성 쑤저우 지방에 지방은행 설립을 인가받은 바 있다.이치훈 국제금융센터 중국담당 연구위원은 “중국 전체 경제에서 내수가 차지하는 비중은 아직까지 40% 내외로 85% 내외인 미국에 비해 매우 낮다”며 “수출 부진을 내수가 떠받치기엔 역부족”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만큼 내수 시장을 키울 여력이 크다는 얘기도 된다.원 총리는 내수 진작과 함께 경기 부양을 위한 인프라 건설에도 박차를 가하겠다고 밝혔다. 모건스탠리는 “대지진 피해를 본 쓰촨성 복구 작업과 각종 대규모 토목공사에 들어가는 자금을 충당하기 위해 국채 발행 규모는 정부가 계획하는 규모의 3배 수준인 6000억 위안까지 늘어날 수 있다”고 전망했다.앞서 중국 국무원(중앙정부)은 2조 위안(400조 원)짜리 대규모 철도 건설 계획안을 승인했다. 당초 2006~10년 11차 5개년계획 기간 동안 1조2500억 위안을 투입하기로 했던 것을 대폭 늘렸다. 중국은 1998년 아시아 금융 위기 때 대대적인 고속도로 건설로 실물경제 유지에 성공한 경험이 있다. 당시 중국은 매년 1400억 위안을 들여 연평균 4000km의 고속도로를 건설했다. 철도 건설은 철강 시멘트 금속 전기전자 등 연관 산업에 미치는 영향이 큰 데다 최소 150만 명의 고용을 추가로 창출할 것으로 예상된다. 게다가 국제 원자재 가격이 크게 떨어진 상태여서 시기적으로도 적합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환경 보호를 위한 대대적인 투자도 예상된다. 환경 파괴 기업에 대출 제한, 상장 금지, 공장 폐쇄 등 강한 처벌을 내리고 있는 중국 정부는 한쪽으로는 친환경 에너지 사업 투자도 크게 늘리고 있다.오광진·한국경제 국제부 기자 kj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