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매 피아니스트 유수정 유수진

피아니스트 유수정 유수진 자매는 늘 완벽한 호흡을 자랑한다. 단지 피가 섞인 가족이어서가 아니다.음악적 토양과 감수성, 바라보는 삶의 지향점까지 닮았기 때문이다.자매가 아닌 완벽한 파트너로서 삶이란 이름의 음악을 함께 연주하는 그녀들을 만나보자.유수정(왼쪽) 1970년생. 독일 에센 폴크방(Essen Folkwang) 국립음대 졸업. 동 대학에서 최고연주자과정 졸업. 백낙호 교수, 도리스 콘라드 교수, 펠릭스 미셸 데이크만 교수에게 사사. 폴크방 오케스트라, 뷔르츠부르크 챔버 오케스트라와 협연. 2002년 예술의 전당 귀국독주회, Schloss Borbeck in Essen 독주회, 현재 추계예술대, 명지전문대, 수원여대 출강.유수진 1973년생. 독일 에센 폴크방(Essen Folkwang) 국립음대 졸업. 독일 뷔르츠부르크 국립음대 최고연주자과정 졸업. 백낙호 교수, 도리스 콘라드 교수, 펠릭스 미셸 데이크만 교수, 카를 베츠 교수에게 사사. 2003년 예술의 전당 귀국독주회, Essen B웦germeisterhaus 독주회, Rathaussaal Pfaffenhofen 독주회, 현재 전남대, 수원대, 경원대 출강.하나의 건반 위에서 네 개의 손, 즉 두 사람의 손이 현란하게 움직인다. 한 사람의 손이 자아내는 선율보다 더 화려하고 섬세한 선율들이 쏟아져 나온다. 때론 서로 마주 붙인 두 대의 피아노 위에서 네 개의 손이 호흡을 맞춰가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멜로디를 연주하고 화성을 연주한다. 이처럼 원 피아노 포 핸즈(one piano four hands), 혹은 투 피아노 포 핸즈 (two piano four hands) 공연을 선보이는 피아노 듀오 콘서트는 연주자들 간의 호흡이 관건이라고 할 수 있다. 서로의 재능을 살려주면서 각자의 기량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공연이니만큼 파트너에 따라 공연의 질이 달라지기 때문이다.하지만 유수정 유수진 자매 피아니스트는 파트너에 대한 걱정이 없다. 서로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서로를 가장 빛낼 수 있는, 가장 완벽한 호흡을 자랑하는 파트너와 언제나 함께하기 때문이다. “둘 다 아직 시집을 못 가서(웃음) 같은 집에 살기도 하고 또 출강하는 학교 중에 같은 학교도 있기 때문에 유독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아요.”(유수정) 듀오 콘서트를 앞두고 있을 때면 평상시보다 더 많이 붙어 다닌다. 함께 프로그램을 짜고 함께 공연을 구성하고 함께 머리를 맞대어 더 감동을 선사할 수 있는 공연을 만들기 위한 시간들을 갖는다. “어떤 분들은 그러세요. ‘그만 좀 붙어 다녀라, 그러니깐 시집을 못 가는 거다’라고요.(웃음)”(유수진)어려서부터 유난히 사이가 좋은 자매였다. 성격과 생김새는 각기 다르지만 유난히 닮은 점이 많은 자매였다. 세 살 터울의 자매는 두 사람 모두 다섯 살 때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고 두 사람 모두 어렸을 때부터 피아노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다. “맨 위의 오빠가 바이올린을 해요. 그래서 제가 첼로를 선택했다면 피아노 트리오(바이올린 피아노 첼로의 3중주)가 가능했을 텐데, 제가 피아노에 빠지는 바람에 피아노 트리오의 꿈이 무산됐죠.(웃음)”(유수진)부모님이 음악을 하신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자매의 어머니는 어려서부터 이들 자매를 음악가로 키우고 싶었을 정도로 음악을 사랑하는 분이다. 넉넉지 않은 형편에도 자식 셋 모두를 독일로 유학보냈고, 두 자매가 독일로 유학을 가 있을 때도 좋은 공연들을 보러 다니며 그 감상을 들려주셨던 것도 바로 어머니였다.“어머니는 음악 테크닉은 없으셔도 선천적으로 음악적 감각이 뛰어나신 분이라고 할 수 있어요.”(유수정) “그래서 따지고 보면 우리의 음악적 재능은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라고 할 수 있죠.”(유수진) 자매 모두 어머니 덕분에 어려서부터 음악을 접했고 음악가의 길을 꿈꿨다. 하지만 두 사람이 함께 공연을 펼치는 듀오 피아니스트가 되리라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왜냐하면 우리는 너무 달랐거든요. 음악 스타일도 전혀 달라요. 제가 모차르트나 바흐 쪽이라면 동생은 브람스나 러시아 작곡가 쪽이라고 할 수 있죠.”(유수정)“언니가 섬세한 멜로디 표현에 강한 반면 저는 전체적인 흐름을 더 중시하거든요. 이렇게 서로 다르다 보니 함께 연주하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어요.”(유수진)두 사람의 생각이 바뀌게 된 것은 독일 유학 시절이다. 먼저 유학길에 오른 것은 언니 유수정 씨였다.“고등학교 다닐 때 독일에서 오신 교수님 앞에서 오디션을 볼 기회가 있었어요. 그 교수님이 더 넓은 곳에서 공부해 보지 않겠느냐며 독일로 유학 갈 것을 권해 주셨죠.”(유수정)그리고 3년 후 동생 유수진 씨 역시 언니와 똑같은 절차를 밟아 독일로 유학을 가게 됐다. “그때 우리를 이끌어 주신 도리스 콘라드(Doris Konrad) 교수님을 우리는 ‘독일 엄마’라 불렀어요. 그만큼 우리에게 애정을 쏟아주신 분이거든요. 2년 전에 작고하셨는데 평생 그분의 은혜를 잊지 못할 거예요.”(유수진)3년의 시간차를 두고 두 사람은 독일 에센 폴크방(Essen Folkwang) 국립음대에서 공부했다. 유학 시절은 넉넉지 않았지만 아껴주는 이들이 있어, 그리고 서로가 있어 외롭지 않았다. 언니와 동생은 각각 서로의 매니저가 되어 주기도 했고 서로의 스승이 되어 주기도 했고 서로의 비평가가 되어 주기도 했다. 서로에게 두 사람은 각자 가장 친한 벗이었고 든든한 후원자였다.“그때 우리를 가르쳐 주시던 교수님께서 듀오 공연을 권해 주셨어요. 우리는 ‘우리가 자매이긴 하지만 절대 안 어울린다’고 했죠.”(유수진)“물론 자라면서 집에서는 종종 놀이처럼 연탄(連彈, 한 대의 피아노로 두 사람의 연주자가 연주하는 2중주)을 하곤 했죠. 하지만 공식적인 듀오 공연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죠.”(유수정) 하지만 두 사람보다 두 사람을 더 잘 아는 스승의 권유였기에 결국 자매는 듀오 연주를 시작했다. “그때가 아마 1994년이었을 거예요. 지역 노인들을 모시고 자원봉사로 피아노 연주를 들려드리는 봉사 연주회였는데 거기서 처음 동생과 함께 듀오 연주를 펼쳤죠.”(유수정)“너무 신기하게도 현장에서 더 호흡이 잘 맞는 거예요. 게다가 관객들의 반응도 너무 좋았고요. ‘어, 우리가 이렇게 잘 맞았나?’싶어 새삼 공연에 흥이 나더군요.”(유수진) 그 공연 이후 두 사람은 서로가 다르기 때문에 오히려 더 잘 맞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서로가 다르기에 오히려 더욱 풍성한 음악을 선보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두 사람은 각자 솔리스트로서 왕성한 활동을 함과 동시에 듀오 연주자로서도 호흡을 맞춰 나갔다. “특히 듀오 콘서트는 준비하는 기간이 더 재미있어요. 귀국한 후 서로 각자의 솔로 활동으로 바쁘면서도 매년 한 차례씩 듀오 콘서트를 여는 것도 바로 그 ‘재미’ 때문이라고 할 수 있죠. 우리가 느끼는 그 즐거움을 여러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기도 하고요.”(유수정)“실제로 우리는 그저 단순히 잘할 수 있는 레퍼토리만을 연주하지 않아요. 이번에는 어떤 이야기를 들려드릴까, 어떤 이야기를 음악 속에 녹여서 보여드릴까를 고심하면서 연주 프로그램을 짜곤 하죠. 우리가 준비하는 과정에 느끼는 그 ‘재미’들을 함께 나누고 싶어서예요.”(유수진) 그래서 이들 자매의 피아노 듀오 콘서트는 유독 실험적인 시도들이 많다. 일례로 작년에 있었던 듀오 콘서트에서는 전체의 프로그램을 ‘신데렐라’라는 테마에 맞춰 구성했다. 콘서트 준비를 위해 발레 공연도 보고 감상평을 나누며 함께 프로그램을 짰다. 어떤 때는 클래식 공연 연주자로서는 파격적이라고 할 수 있는 ‘바지’ 차림의 무대복으로 공연하기도 했다. 단순히 피아노에 앉아 연주하는 것만이 아니라 무대를 누비며 역동적인 움직임까지 가미한 공연이었기에 드레스가 아닌 바지 차림이 연주에 더 편할 것이라는 계산에서였다. 이 때문에 유수정 유수진 자매의 피아노 듀오 콘서트는 완벽한 호흡 외에 신선한 프로그램과 재기발랄한 곡 구성으로 평단은 물론 대중에게도 그 인기가 높다.“그래서 듀오 콘서트는 할 수만 있다면 평생 계속하고 싶어요. 음악을 시작할 때의 초심과 열정을 잃지 않고, 스승님들께 배운 것들을 학생들과 함께 나누면서요. 그래서 우리의 목표는 같아요. 음악을, 그리고 음악을 통해 느끼는 이 행복함을 더 많은 이들과 더 오랫동안 나누고 싶다는 것이죠.”김성주 객원기자 helieta@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