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 위기와 국제적 정책 공조가 시장에 미치는 영향에 온통 관심이 쏠려 있지만 새해에는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있다. 자본시장통합법(자통법)이 그것이다. 물론 투자은행(IB)의 대표 격인 미국 IB들이 몰락했으니 IB 모델 자체가 실패한 것 아니냐, 규제 완화가 시장 붕괴를 불러 일으켰으니 자통법이 발효되더라도 규제를 강화해야 하지 않느냐 하는 등의 주장도 있다. 이들 의견이 일리 있는 측면도 있지만 자통법의 근본 취지, 금융 산업에 대한 인식에 있어서는 다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우선 자통법이 나오게 된 배경 중에서 가장 의미 있는 것은 금융 산업, 특히 자본시장에 대한 인식 전환이라고 본다. 부가가치를 만들고 국제적 경쟁력을 높이려면 다양하고 창의적인 금융 상품을 개발해야 하는데, 현재 법 규정은 포지티브 시스템으로 상품 개발 혁신에 제한을 주고 있는 게 현실이다. 금융 산업도 제조업처럼 부가가치와 경쟁력이 생명인 산업이라면 이런 제약부터 풀어야 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자통법의 인식 전환은 높이 평가돼야 한다.또 미국 IB가 몰락했다고 해서 IB 비즈니스 모델이 의미 없다는 것은 너무 지나치다. 오히려 전 세계 금융시장과 경제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금같은 때야말로 글로벌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키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아닐까. 사실 과거 선진 IB들은 이럴 때 싼값에 자본을 투자한다든지 부실 여신(NPL), 부실채권(distressed bond) 투자, 국경 간 거래(cross-border) 인수·합병(M&A) 등을 통해 미래 수익과 시장을 확보해 왔다.또 리스크 관리에 문제가 생긴 것을 규제 완화의 결과로 지적하고 있지만 반드시 법 규정 규제가 약해서만은 아닐 것이다. 국내 대형 증권회사들의 영업순자본비율은 500~600%로 선진 IB보다 훨씬 높고 대형 은행들의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도 10~12%로 건전하지만 현재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새로운 비즈니스 영역 확대에 맞춰 리스크 관리 기법의 개발 및 선진화를 진전시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무엇보다 국내 금융시장의 역할 및 기능을 균형적 관점에서 짚어볼 필요가 있다. 한국 주식시장은 한때 외국인 시가총액 비중이 40%일 정도로 글로벌화됐고 그만큼 외국인이 선호했던 시장이다. 기업 펀더멘털이 좋았기도 하지만 주식선물, 옵션 등 위험을 헤지하고 탈출할 수 있는 다양한 수단이 있기 때문이다.반면 채권시장과 외환시장은 어떤가. 국채시장은 꽤 발달됐지만 채권시장 전반적으로 아직 국제화가 되어 있지 않고 외국인 참여를 적극 유도할 수 있는 다양한 상품 개발이 여전히 미흡하다.외환시장은 훨씬 더하다. 이미 충분한 외환보유액에도 불구하고 원·달러 환율 급등, 외화 차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실물경제의 높은 위상을 고려하면 원화의 국제화가 이처럼 미흡한 것은 몹시 안타까운 일이다.이러한 문제를 어디서부터 어떤 순서로 어떤 방법으로 풀어야 할까. 자통법으로 새로운 채권, 외환 상품 개발을 유도, 시장을 키우고 국제화해 실물경제와의 불균형, 주식시장과의 불균형을 완화해야 하지 않을까. 자통법은 이러한 측면에서 오히려 시기에 맞고 필수적인 제도다.이번 위기는 우리에게는 기회다. 자통법으로 제도를 갖추고 금융회사들의 경쟁력과 사고방식(mindset) 등의 강화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금융회사 간 M&A, 특히 어려워진 외국계 IB로부터 글로벌 인력을 적극적으로 수입해야 한다.어려움 속에서도 미국, 유럽 IB들이 M&A로 덩치를 키우고 있다. 그렇게 보수적이던 일본에서도 노무라증권이 리먼브러더스 유럽과 아시아를 인수하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금융 산업이 국제 경쟁력을 갖출 때다.한국스탠다드차타드증권 사장약력: 1959년생. 83년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97년 펜실베이니아대 경영대학원(와튼스쿨) MBA. 85년 대우경제연구소 애널리스트. 99년 대우증권 채권부장. 2008년 SC제일은행 부행장. SC증권 대표(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