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통신

청와대엔 대표적 ‘은밀한 장소’가 두 곳 있다. 청와대 지하벙커와 서별관이다. 이 두 곳이 최근 경제 위기 상황과 관련해 주목을 받고 있다.지하벙커는 청와대 내 비서동 지하에 있으며 하루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다. 이곳엔 국가정보원, 군, 경찰 등과 화상 교신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진 국가위기상황팀이 있다. 전국 각지에서 발생하는 안보·재난 관련 상황을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비상사태가 발생하면 즉각적인 조치를 취하도록 하고 있다.지난 6일 이 지하벙커에 비상경제상황실이 꾸려졌다. 일명 ‘워룸(War Room·전시작전상황실)’이다. 워룸이란 전시에 상응하는 국면으로 규정하고 실시간으로 상황을 파악, 범정부적 대책을 수립하는 기능을 한다. 8일엔 지하벙커에서 이명박 대통령 주재의 첫 비상경제대책회의가 소집됐다. 비상경제상황실이 지하벙커에 온 이유에 대해 청와대는 경내에서 사무실 구하기가 마땅찮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청와대 참모들의 업무 공간인 비서동엔 사무실이 부족해 홍보기획관실을 비롯해 일부 조직이 청와대 인근으로 나가 있는 실정이다.그러나 다른 의도도 엿보인다. 올해 상반기 최악의 경제 위기 국면을 맞을 수 있는 만큼 전 공직자들에게 긴박감을 심어 주고 마음가짐을 다잡으려는 뜻이 있다. 또 국민들로 하여금 위기의식을 불어넣는 동시에 경제난 극복을 위해 정부가 비장한 각오로 임하고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려는 의미도 함축하고 있다.이에 걸맞게 청와대는 경제 위기가 ‘준전시 상황’임을 공공연하게 내세운다. 군사 용어들이 넘쳐난다. 지하벙커나 워룸, 비상뿐만 아니라 속도전, 진두지휘, 행군 대열 등 전시에나 있을 법한 단어들이 지난해 연말부터 쏟아지고 있다. ‘일사불란’한 자세로 경제 위기 상황을 신속하고 과감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이 대통령의 인식이 깔려 있다.비상경제정부 체제, 비상경제대책회의, 비상경제상황실 등 온통 ‘비상’이란 말이 수식어로 붙는다. 경제 살리기, 일자리 창출 뒤에는 으레 ‘속도전’이란 말이 따른다. 이 대통령은 연초 국무회의에서 “비상시에 하급직 공무원까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교육이 있어야 한다”고 지시하기도 했다. 공직자들의 군기를 잡으려는 의지를 읽을 수 있다.또 하나의 은밀한 곳인 서별관은 청와대 영빈관 옆 다소 외진 곳에 있다. 역대 정권에서 뭔가 비밀스러운 국가 중대사를 논의하곤 했다. 국민의 정부 때부터 주요 경제 정책 책임자들이 이곳에 모여 굵직굵직한 경제 현안들을 협의했는데 일명 ‘서별관 회의’로 불렸다. 서별관 회의는 국민의 정부에서 기업 금융 공공 노사 등 4대 부문 구조조정에 대한 대책 마련을 위해 처음 만들어졌다. 경제부총리, 금감위원장, 청와대 경제수석 등이 고정 멤버로 참석했다. 2002년 10월 국회 청문회에서 당시 엄호성 한나라당 의원이 대북 자금 지원 문제를 비밀리에 논의했던 곳이라고 밝히면서 유명해졌다. 국민의 정부에선 또 이 회의를 통해 대우자동차 부도, 대형 은행 매각, 하이닉스 반도체 문제 등 핵심 경제 현안에 대해 의견을 조율하고 처리 방향을 결정했다.참여정부 땐 국무회의의 주요 안건과 이슈는 서별관회의에서 미리 손발이 맞춰졌다. 특히 참여정부의 당·정·청 주요 인사들이 참석한 ‘11인 회의’가 서별관에서 자주 열려 야당과의 연정, 개헌 문제 등 ‘극비 사항’의 정치 현안을 협의하기도 했다.현 정부 들어선 기획재정부 장관과 한국은행 총재, 금융위원장, 청와대 경제수석·국정기획수석 등이 매주 화요일 점심때 이곳에 모여 주요 경제·금융 현안을 조율하고 대책을 세웠다. 정부 부처에서도 할 수 있는 회의를 서별관에서 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국가 중대사를 논의하기에 안성맞춤이기 때문이다. 청와대 내에 있기 때문에 보안을 유지하기가 수월하다. 특히 서별관은 청와대 직원들이 근무하는 비서동에서도 한참 떨어진 곳에 있어서 핵심 관계자 이외엔 회의 자체가 열리는지조차 좀체 알 수 없다. 부처 회의실이나 시내 호텔 등을 이용하면 아무래도 ‘노출’위험이 크다. 도청 우려도 있다.지하벙커나 서별관 모두 음험한 분위기가 물씬 풍기지만 ‘경제 컨트롤 타워’로서 손색이 없다는 평가를 받아야 국민이 보다 편안해질 것이다.홍영식·한국경제 정치부 기자 yshong@hankyung.com